창(窓) 2010. 2. 21. 16:19

 

''이란 이름을 가진, 명절이란 명사를 지닌 행사가 지나갔다.

이번엔 처음으로, 독일 출장 중인 남편 없이, 아들녀석과 단 둘이 시집과 친정을 오갔다.

다행히 시집과 친정이 모두 서울이라, 단거리 운전 포함 간소하지 않은 음식 장만과 기타 일거리들만 임무로 주어졌다.

 

수 년 동안의, 짧지 않은 명절 답습의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4년의 공백과 4년 동안의 새 문화에 대한 고찰이 있어서인지, 

겪을수록 문화와 세대의 벽을 실감케 할 뿐인 '설과 추석'-제사도 물론-이 내겐 반갑지 않다.

규율과 인습에 밀려 일시적 대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삼엄한 노동의 의무만 주어지는 이 시절이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다. 

물질적 가치는 현대지만, 정신적 가치는 근세이기를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는 한, 정신적 가치의 획기적 혁신이 있지

않은 한, 즐거운 명절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고의 초석이 다져지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유럽에서 보낸 아들 녀석도 설이 즐겁지 않단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명절 주방 임무(?)를 수행하는 내 모습이 가련하다고 한다.

남편도 앉아 편히 놀면서도 -놀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과연-  마음이 불편하고 내 눈치가 따갑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책 없는 인습-명절과 제사-과 내 자아의 치열한 싸움은 사실 5-6년 전에 끝났다.

처절히 싸워도 피 흘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남편 탓은 아님-을 알고 난 후엔 명절엔 나를 접기로 스스로 다짐했었다.

해결책은 '길고 긴 시간'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매번 쉽게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고 다음 번도 그럴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 시선을 비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