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화) 2 : 상드마르스에서 프티팔레까지
생쉴피스 성당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움직인다.
사이요궁전 아닌 다른 방향에서 에펠탑을 보기 위해 다다른 상드마르스 공원, 4월이 무색하게 한여름같이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에펠탑은 프랑스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1889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건립되었다.
명칭처럼 구스타프 에펠-또는 회사-이 설계헸고, 높이는 301m-현재 324m-로 당시로서는 가장 높은 탑이었다고 한다.
건축 당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던, 지극히 현대적인 이 조형물 앞 공원에 철망으로 된 바리케이트가 줄줄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까 긴 공원의 저편 멀리 잔디에서 에펠탑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 상드마르스 쪽으론 20년 만-빈에 살던 때, 초딩아들과
함께 가족여행-에 왔는데 이런 사테라니. 상드마르스 끝까지 가지 못한 채 중간 도로에서 에펠탑을 담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버스를 승하차하여 샹젤리제 서쪽 Porte Maillot에 있는 홍합요리 체인음식점 Léon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 50분, 정갈한 중국어를 사용-본토인 아닌 듯-하는 6~7명만이 내부를 메우고 있다.
벨기에 체인점인, 브뤼셀 추억이 깃든 Léon엔 파리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된다.
우린 전식+본식+음료 또는 본식+후식+음료로 구성된 Menu Léon 중 전자를 선택했고, 전식으로 엔초비 튀김과 치즈튀김을,
본식은 홍합요리와 피시앤칩스깔라마리, 그리고 1664맥주 250ml를 주문했는데 모두 다 맛있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자 서버가 매우 친절했고 식당을 나설 때는 물론 식당 앞에 서 있던 순간까지 작별 인사를 건네주었다.
Porte Maillot에서 M1로 1정거장 이동하면 Charles de Gaulle Étoile역이다.
샤를드골에투알역은 2km에 이르는 샹젤리제 거리의 맨 서쪽역으로, 여러 노선의 지하철M과 Rer가 지난다.
샹젤리제 서쪽 끝에 자리한 에투알 개선문엔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만 본다.
물론 개선문 전체 모습은 도로 건너 멀리서만 잡히지만, 개선문의 조각과 부조를 보기 위해 가까이 가는 수고를 하진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836년에 세워진 50m 높이의 에투알-별-개선문 아래엔
당시 프랑스의 모든 승전보와 지휘관의 이름이 양각되어 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샤를드골에투알역에서 샹젤리제를 따라 M1으로 3정거장 움직이면 Champs-Élysées–Clemenceau샹젤리제클레망소역이다.
이곳엔 현재 박물관로 사용되고 있는 그랑팔레-큰궁전-와 미술관인 프티팔레-작은궁전-이 있고 우리 목적지는 프티팔레다.
그랑팔레와 프티팔레 모두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를 위해 세워졌으니 그 역사가 120년 쯤으로 길지는 않다.
프티팔레는 현재 파리 시립미술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시민과 여행객들에게 무료 공개되고 있다.
입구에 줄을 서서 가방 검사와 검색대를 거쳤는데, 의외로 입구 근처와 아래층 홀에 사람들이 아주 많다.
시립미술관엔 아래층과 위층에 30개 전시실이 있으며, 중세 미술과 16세기 르네상스, 17~18세기 풍경화와 역사화, 초상화 및
19세기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 많은 작품이 전시 중이라 한다.
홈피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알브레히트 뒤러, 렘브란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자크 루이 다비드, 외젠 들라크루아, 테오도르 제리코,
귀스타브 쿠르베, 까미유 코로, 끌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폴 고갱, 폴 세잔 등의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하니 정말 기대가 컸다.
아래층 전시실에서 제일 먼저 만난 화가는 19세기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다.
대형 전시실의 거대한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모두 그의 회화들이었다.
'센 강변의 숙녀들'은 젊은 여인들이 센 강변에 누워있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상적인 고전주의를 추구했던 19세기 아카데미즘에
부합하지 않은 이 그림은 드레스를 벗어 베고 있는 모습과 여인들의 음침한 눈빛 등 외설적 분위기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쿠르베의 친한 친구인 철학자 피에르 조셉 푸르동이 1865년 1월에 사망한 후, 푸르동 그리고 그의 자녀 캐서린과 마르셀-그릴 당시
이미 그전에 콜레라로 사망-의 행복했던 일상을 그린 '1853년의 피에르 조셉 푸르동과 그의 자녀들'.
푸르동은 1853년말부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기에 작품에 묘사된 것처럼 평온했던 시기는 실제론 길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 여동생인 '줄리엣 쿠르베'는 자주 그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프랑슈콩테-쿠르베 고향, 프랑슈콩테주 오르낭시-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건초철의 낮잠'은 고요한 농촌의 정경을 표현하였다.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들'은 파리의 어느 밤 거리에서 발생한 화재를 묘사했는데,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화재 경보를 울리고
시민들은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주고 있다.
쿠르베는 소방관들이 횃불로 모의 화재를 연출했던 푸아시 소방서에서 이 대형 그림을 그렸으나, 1851년 12월 소방서에서 모반이
일어나면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이 그림은 네덜란드 회화 특히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쿠르베의 회화로 장식된 거대한 왼쪽 벽면 끝 중앙에 '메두사호의 뗏목'으로 유명한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가 등장한다.
감성과 직관을 따르는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는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후 아침, 정오, 저녁을 주제로 한 3점의 풍경화를 그렸고
이 그림은 그 중 정오의 풍경을 표현한 그림-나머지 그림은 뮌헨 노이에피나코텍과 뉴욕 메트로폴리타미술관 소장-이다.
'정오 무덤 근처의 이탈리아 풍경'의 배경으로는 폭풍을 예고하는 듯한 산 위 어두운 구름을 묘사했고 바위에 세워진 원형 건물은
로마 외곽 아피아가도에 있는 체칠리아 메텔라의 로마 무덤을 본뜬 것이라 한다. 강 위의 배는 스튁스강을 건너 망자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카론의 배를 연상시킨다.
구획 없이 커다랗기만 한 전시실의 끝자락엔 에케 호모Ecce Homo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나란히 걸려있다.
'에케 호모'는 총독 빌라도가, 가시관을 쓰고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를 가리키면서 군중들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에케 호모-며
조롱하는 예수의 수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조각가 장 폴 오베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단테'의 지옥 조각상으로 살롱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파리시에서는 조각상을 청동상으로 제작했는데, 조각상과 동일한 형태의 청동상은 파리 판테옹 근처의 콜레주 드 프랑스-파리대학-
앞 마르셀렝 베르틀로 광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다른 전시실은 없지, 위층으로 가는 길은 어디지.
알고 보니, 내부공사로 인해 아래층의 한두 개 큰 전시실만 오픈하고 있을 뿐 알짜 같은 나머지 전시실은 모두 입장 불가라고 한다.
그러나 전시실이나 주변 모두가 공사 중은 아니었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말짱한 전시실도 많았는데, 동선 문제인지 다른 이유인지
이렇게 다 전시실을 폐쇄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대부분의 전시실을 닫아놓을 바에야 미술관 문을 닫고 공지를 띄워놓는 게 낫지 않나.
아니면 그림 몇 점이라도 보여주는 게, 일부 겉핥기라도 할 수 있게 해둔 게 나은 건가.
암튼 기대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아쉬움을 안고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넌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이 다리는 높이가 6m에 이르는 정교한 건축물로 러시아 황제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파리 구시가의 쭉 뻗은 도로와 대칭적인 건축물들은 19세기 중반 위생적이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정비되었기에 당시에 만든 도로에 늘어선 건물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걷다보니 나오라는 Rer역은 나타나지 않고 뙤약볕 아래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다 건너고 말았다.
2005년 여름 처음 파리에 왔을 땐 관람했던 앵발리드가 가깝게 보이는 곳까지 와버렸으니 Rer역을 찾아 다리를 다시 건너야 할 터.
그러나 Rer역 표식은 보이지 않고 구글맵은 여전히 모르쇠, 혹시나 하여 다리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그곳에 Rer역이 있다.
Rer로 다다른 숙소 근처 인터막쉐 앞, 같은 종이 아닌데도 작년 10월에 떠난 막내녀석을 닮은 강아지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난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았고 그 녀석을 쓰다듬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강아지를 데려온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유를 묻고는 자기가 장보고 올 동안 강아지와 함께 있으라 한다.
감사했지만 눈물이 더 쏟아질까봐 정중히 거절했고, 이후엔 우리 막내와 닮은 강아지를 보더라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오후 7시반, 쇠고기 스테이크와 구운 양파와 호박 그리고 쌈장과 오이, 샐러드로 상차림을 하고 맥주까지 곁들였다.
오후 9시가 넘어도 환한 도시, 선물 같은 볼 거리와 아쉬움을 함께 안겨준 도시, 따스한 견주의 마음이 깊이 전해진 도시.
드라마 '괴물' 6회를 시청한 후, 늦은 오늘의 취침 시각은 새벽 1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