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금) 1 : 우피치미술관 전반부
시원한 새벽 공기 속에 눈을 떴다.
낡고 오래된 거실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7시 20분, 우피치미술관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성 라우렌시오-석쇠 위 순교-를 명명한 산로렌초성당 앞을 거닐고 랜드마크인 산타마리아델피오레-두오모-대성당 옆을 지난다.
그리고 시야를 완벽히 트이게 하는 곳, 베키오궁전-시청사-이 있는 멋스러운 시뇨리아 광장도 소요한다.
구시가를 걷다보니 피렌체에 온 실감이 난다. 나는 작년에 이어 4번째지만, 남편은 무려 17년만에 맞이하는 피렌체다.


아르노강변에 자리잡은 우피치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우린 8시 15분 오픈런타임으로 예약을 했다.
예약은 했으나 명소이니 긴 줄은 피할 수 없다. 예약시간 10분전부터 미술관 앞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뒤 일본인 가족 4명 중
20대로 보이는 두 딸들이 밖에서는 물론 미술관 들어가서까지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꽤 짜증스러웠다.
보안 검색을 거쳐 8시 25분 드디어 입장했고, 우린 두 개층을 올라 2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컬렉션을 자랑하는 우피치미술관은 2층에 A전시실이, 1층에 B~E전시실이 배치되어 있다.
코시모 1세-코시모,로렌초의 방계-때 메디치가 집무실로 사용한 우피치 건물은 조르조 바사리와 제자들에 의해 1581년 건립되었다.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작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500여점의 가문 소장
예술품을 기증한 것이 우피치미술관의 시작이며, 1765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나는 피렌체를 2번째 여행했던 2020년 1월, 가이드투어를 통해 우피치미술관을 관람한 적이 있으나 가이드투어-투어 자체는
재미있고 좋았음- 특성상 한정된 작품밖에 볼 수 없어서 굉장히 아쉬웠다.
여러 명이 함께한 여행이었고 게다가 투어 직후 식당 예약까지 해둔 상황이라 미술관에 더 머물 수 없었다.


2층에서 먼저 만나는 대작은 치마부에와 조토의 작품이고, 다음 전시실에서 마주친 작품은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성모영보'-다.
'수태고지'는 가장 사랑받는 성화 소재로, 마리아가 구세주 어머니가 될 것을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계시받는 장면을 표현한다.
가브리엘의 망토와 날개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었으며 천사들로 둘러싸인 비둘기는 성령을,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기뻐하소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요철된 라틴어가, 가브리엘의 입으로부터 마리아에게 향하고 있다.



산타트리니타성당 스트로치예배당의 제대화였던 젠틸레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스트로치가문에서 주문한 작품이다.
긴 여정 끝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새로 태어난 메시아 앞에 도착하고, 성가족 앞에 무릎을 꿇고 귀중한 선물을 바치고 있다.
동방박사 3인은 매우 호화롭고 세련된 옷을 입고 있으며 따라온 다민족 행렬로 미루어 그들이 동방에서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멋스러운 프레임이 있는 이 제대화는 예수의 어린 시절 장면을 보여주는 하단의 프레델라-탄생,이집트로의 도피, 성전봉헌-로 완성된다.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회화-노벨라성당 '성삼위일체'-를 그린 천재화가 마사초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시기로 인한 독살설-한다.
마사초처럼 초기 르네상스 시기인 15세기 초반에 활동한 화가 마솔리노. 마사초와 마솔리노가 함께 그린 '성모자와 성안나'는
다섯 천사에 둘러싸인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리고 성모마리아의 어머니인 성안나를 표현했다.
우피치에 있는 '산로마노의 전투'는 연작 3점 중 중앙에 위치했던 작품으로, 2점은 파리 루브르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피렌체 지휘관 니콜로 다 로렌티노가 시에나 지휘관 베르나디도 델라 치아르다를 말에서 떨어뜨리는 전투 장면을 묘사했다.
연작 중 유일하게 우첼로의 서명-왼쪽 하단-이 있는 그림이다.



파올로 우첼로의 회화가 있는 A9 전시실에는 피에트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필리포 리피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있다.
피에트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공작부부의 초상'은 책처럼 펼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경첩을 달아 제작한 작품이다.
앞면엔 문무를 겸비한 용병대장 출신으로 우르비노 공작이 된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25세에 7번째 아이를 낳고 사망한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데, 창백한 얼굴의 바티스타에게는 목걸이와 장식품을 그려넣어 입체감을 부여했고
마상 경기에서 오른쪽 눈을 잃은 페데리코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자신의 콧대를 자른, 강인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앞면에 이어 뒷면에도 배경엔 페데리코의 영지가 묘사되어 있으며 계곡과 언덕, 길과 호수를 따라 시야가 확장된다.
바티스타는 에로스가 마부인, 순결을 상징하는 한 쌍의 유니콘이 끄는 마차 위에서 의인화된 믿음, 소망, 사랑의 호위를 받고 있고
승리의 관을 쓴 페데리코는 분별, 정의, 절제, 강건과 동행하고 있다.
보티첼리 스승인 필리포 리피가 그린 '성모자와 두 천사'에서 성모마리아의 모델은 화가가 사랑한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다.
난잡한 수도사였던 필리포 리피는 수녀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었고 재능을 이어받은 아들 필리피노 리피도 화가가 된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성모의 자태를 더할수없이 아름답고 온화하게 또 참하고 곱게 묘사했다.
산드로 보티첼리와 필리포 리피의 그림이 닮은 면이 꽤 있는데, 나는 선이 곱고 우아한 필리포 리피의 그림들이 더 좋았다.



A10 전시실엔 시뇨리아광장 상공 법원-상인,길드 분쟁 해결-에 있던, '7가지 덕목'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된 여인들이 걸려 있다.
맨 왼편에 전시된, 옥좌를 장식적으로 표현한 '용기'만 보티첼리가 그린 것이고 나머지 6개 작품은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의 것이다.
맨 왼쪽의 '용기'는 갑옷과 지휘봉을 들고 있고, 두번째 그림인 '절제'로 비유된 여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주전자의 물을 항아리에 붓고 있다.
영성체의 잔과 십자가를 든 세번째 그림은 '신앙', 불꽃을 든 채 젖먹이는 네번째 여인은 '자선', 기도하는 판도라는 '희망'을 표현했다.
다리 위에 지구본, 오른손엔 칼을 든 여섯번째 여인은 '정의'를 뜻하며 뱀과 거울 뒷면을 묘사한 일곱번째 그림은 '신중'이다.


르네상스의 보고 우피치의 대표 화가는 A11-12 전시실을 차지한 산드로 보티첼리, 대표작은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이다.
메디치가 별장 응접실에 걸려있던 '프리마베라(봄)'에는 비너스와 에로스를 중심으로 왼쪽엔 헤르메스와 삼미신(사랑,순결,아름다움)이,
오른편엔 제피로스와 플로라가 등장하는데, 플로라로 묘사된 여인의 모습이 보티첼리가 평생 사랑한 시모네타 베스푸치다.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한 시모네타는 보티첼리를 후원한 메디치가문 로렌초 동생 줄리아노의 연인이었기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이 거대한 회화에는 500여종의 식물과 180여종의 꽃이 등장하여 만발한 피렌체의 봄-위대한 자 로렌초의 시대-을 표현했다.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 탄생을 소재로 한 '비너스의 탄생' 속 비너스도 시모네타 모습이다.
바다 위 비너스, 서풍의 신 제피로스, 미풍의 신 아우라, 계절의 여신 호라이(오른쪽)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피렌체 최초의 캔버스화이다.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성모자 앞 검은옷을 입은 코시모, 가운데 붉은망토의 피에로, 피에로의 장남 로렌초 등 메디치가
인물들을 동방박사로 표현했으며 보티첼리 자신의 모습도 오른쪽 맨앞에 그려넣었다.
'모함에 빠진 아펠리스(또는 비방)'는 보티첼리에게 비난과 고발이 들어온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15세기말 피렌체에서 메디치가문이 추방된 후 시민들이 사보나롤라에게 귀 기울이던,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대를 대변한 작품으로
고대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모함 받은 당대 최고 화가-의 작품을 재현하였다.
아펠레스를 끌고 가는 푸른 의상의 여인은 중상모략을 뜻하고 그 곁의 인물들은 질투, 간계, 속임수를 의미한다.
오른쪽 단상의 미다스왕은 아둔한 당나귀 귀를 하고 있고, 왕의 좌우에서 떠들고 있는 시녀들은 무지와 불신을 뜻한다.
왕의 귀를 막는 시녀들로 인하여 왕은 그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왼쪽에 검은옷을 입은 '양심'이 바라보는 나체의 여인은 '진실'로, 하늘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전시실에는 플랑드르화가 휘호 반 데르 후스의 '포르티나리 삼면화'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브뤼헤의 포르티나리 가문에서 주문한 이 작품은 중앙 패널엔 아기예수를 둘러싼 성모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동들과 천사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묘사했으며 양쪽 패널에는 포르티나리가문 인물들과 성인들이 그려져 있다.
밖에서만 감상해야 하는 Tribuna는 자연의 4원소인 땅, 불, 물, 공기로 공간을 구성했고 중앙엔 메디치의 비너스가 있다.
약간 흐린 하늘, 우피치미술관의 2층 복도에서 보이는 베키오다리와 아르노강이 은은한 정취를 자아낸다.



라파엘로 스승인 페루지노의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는 예수 수난의 시작을, 질서와 균형을 담아 표현한 작품이다.
애끓는 기도에 마친 예수는 죽음 예고의 잔을 건네는 천사를 맞이하고 아래쪽엔 사도 요한, 베드로, 야고보가 잠들어있다.
그림 양편에는 예수를 체포하려는 로마군인들이 도착하고 배신자 유다는 왼쪽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다.
필리포 리피의 아들이며 보티첼리 제자인 필리피노 리피의 그림도 대화가인 그들 못지 않다.
'세례요한과 성모자' 속 인물과 배경의 선과 색감, 그리고 디테일이 형언할 수 없이 화사하고 곱다.
전시실 아닌 복도 벽면에서 빛을 받으며 걸려 있어서 놀란, 아니 반가웠던 안드레아 만테냐의 삼면화.
왼쪽은 '그리스도의 승천', 중앙 패널의 주제는 '동방박사의 경배', 오른쪽은 '그리스도의 할례'다.



보티첼리 전시실만큼 인기 있는 곳은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이 전시된 A35, A38 전시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세에 그린 '수태고지'에서 성모마리아의 지나치게 긴 오른팔은 균형감-오른쪽에서 봐도 마찬가지-이 모호하고
미완성작인 '동방박사의 경배'은 스케치만 다빈치가 한 것일 뿐 부분적 색칠은 다른 사람의 산물이라 한다.
최고의 르네상스형 인물인 다빈치는 다재다능한 천재이자 창의적인 완벽주의자라 의외로 완성작은 20여점에 불과하다.



미켈란젤로의 '톤도 도니'는 그의 유일한 판넬 회화작이며 원형 액자도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 한다.
예수, 성모마리아, 성요셉은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되었는데, 이러한 구성과 뚜렷한 명암 표현으로 인해 조각적인 양감이 돋보인다.
전시된 라파엘로의 많은 그림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방울새의 성모'이다.
라파엘로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세례요한을 삼각형 구도로 배치했고 인물들의 윤곽을 흐릿하고 은은하게 묘사했다.
그림 속 아기예수는 방울새를 사랑스럽게 또는 애처롭게 쓰다듬고 있는데, 방울새가 좋아하는 카르둔이라는 식물의 가시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예수에게 씌워졌던 가시관을 의미하고 방울새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한다.



모든 작품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미술관 2층 관람을 대략 마치고 나니 온몸에 고단함이 쏟아진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선 지 벌써 3시간, 우피치미술관에 들어와서 관람하기 시작한 지는 2시간쯤 지났나 보다.
쉬어줘야 할 시간, 우피치미술관 야외카페에 앉아 아이스카푸치노와 시원한 탄산수를 주문했다.
독특하게도, 카푸치노를 얼려서 분쇄한 아이스카푸치노가 참 맛있다.
건축과 미술사, 그리스신화와 카톨릭 성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미술관이나 성당 등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미리 공부하여 준비해온
자료들-서적, 백과사전, 블로그, 전문가동영상, 공식홈페이지 참조-을 체크하고 확인하며 관람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예전에 두어번 경험해본 가이드투어도 괜찮았지만, 직접 부딪쳐 작품을 마주하는 기쁨이 크고 작품 선택의 폭 또한 훨씬 더 넓다.
이제 우피치미술관 1층의 작품들을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