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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6 시칠리아

2월 26일 (목) : 팔레르모 구시가

숙소 침실 뷰

팔레르모 구시가로부터 2km 정도 떨어진 이 숙소의 장점은 공간의 크기와 청결이다.

거실과 주방이 넓고, 역시 좁지 않은 2개의 침실마다 더블침대-혹은 퀸침대-가 있어서 각자 침실 하나씩 차지하고 숙면을 취했다.

서울 집에서 슈퍼싱글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살다보니 여행지 숙소의 더블침대는 좁디좁다. 퀸이나 킹침대라면 모를까.

 

시칠리아 섬 (출처:구글맵)
프레토리아 분수

커피캡슐 아닌 커피패드를 넣어 머신으로 내린 커피까지 챙겨먹고, 타바키 Tabacchi부터 들른 아침.

팔레르모 교통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한 대로 3일권과 90분권을 구입하려 했으나 타바키에는 3일권-8유로-이 없었기에

3.5유로짜리 1일권 4장과 1.4유로인 90분권 6장을 구입했다. 시칠리아 대부분의 도시에서 1일권 유효기간은 24시간이 아닌

티켓 펀칭한 당일 자정까지다.

 

푸르른 날, 101번 버스를 타고 팔레르모 구시가로 간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지중해 최대 섬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아랍, 노르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이탈리아 땅이 되었는데, 그 다양한 문명들이 혼합되어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고약한 향취가 진동하는 프레토리아 분수는 일부 공사 중이고 주변은 막혀 있다.

피렌체에서 가져왔다는 이 분수는 피렌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조각들은 예술적이지 않고 더군다나 관리 상태도 좋지 않았다.

 

콰트로 칸티

분수에서 멀지 않은 콰트로 칸티에서 남성 성악가의 음성이 힘차고 곱게 울려퍼진다.

'네 모퉁이'라는 뜻을 지닌 콰트로 칸티는 실제로는 팔각형 광장이고 모퉁이마다 3단으로 구성된 곡면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아래는 사계절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중간엔 시칠리아를 지배한 스페인 왕들이, 상단엔 팔레르모 수호성인들의 조각상이 있다.

그러나 세밀하지 않은 조각상들은 세월의 때로 마모되고 뭉그러지다보니 여신이나 성인들의 도상을 알아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한참을 이곳에 머물다 돌아서는 순간, 이어서 들려오는 여성 성악가의 노랫소리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산타마리아 델라미라글리오성당(왼쪽)과 산 카탈도성당(오른쪽)
산타마리아 델라미라글리오성당 앞에서

벨리니 광장에는 산타마리아델라미라글리오 성당과 산카탈도 성당이 나란히 접해있는데, 내부에 관심이 없어서 입장료를 내지는 않았다.

시칠리아에서는, 일부 성당만 입장료를 징수하는 이탈리아 본토와는 달리 웬만한 성당은 대체로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수도원 회랑
신티카타리나수도원 내 I Segreti del Chiostro (수도원의 비밀)

신타카타리나수도원에 있는 'I Segreti del Chiostro'-수도원의 비밀-에서는 구전되던 제과 레시피대로 만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수도원 회랑을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제과점,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는 까놀로-까놀리는 복수-다. 

오전 11시, 리코타 치즈 양쪽에 피스타치오와 초콜릿 묻힌 까놀로를 들고 수도원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하나씩 입에 문 까놀로는

달디 달고, 안뜰엔 체험학습 나온 듯한 유치원생 꼬마들이 곳곳을 살짝이 뛰어다니고 있다.

 

수도원 안뜰
까놀로 (2개니까 까놀리)
수도원 세탁실

이 도시의 상징인 팔레르모 대성당은 형태와 빛깔이 스페인 성당을 많이 닮았다.

12세기말부터 짓기 시작한 대성당은 바로크스러운 돔이 있고 로마네스크스러운 첨탑과 종탑들이 눈길을 끈다.

 

팔레르모대성당

예쁜 남문으로 성당 안에 들어서면 장엄한 외관에 비해 내부-무료 입장-는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다. 

특히 신랑 기둥마다 카톨릭 성서 속 성인들의 조각상이 있는데, 시칠리아의 성인 아가타와 산타루치아를 비롯하여

아기예수를 어깨에 올려 강을 건넌 성크리스토퍼 그리고 성아녜스, 성카타리나, 마리아막달레나 등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팔레르모대성당 신랑
산타아가타(왼쪽)와 산 크리스토퍼(오른쪽) 조각상
산아녜스(왼쪽)와 산타루치아(오른쪽) 조각상

중앙제대 앞에는 서방교회 4대 교부인 그레고리우스, 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조각상이 있고

본당을 사선으로 지른 바닥면엔 과거 태양 관측 장소였던 자오선이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서방교회 4대교부 중 그레고리우스(왼쪽)와 암브로시우스(오른쪽) 조각
자오선 : 태양관측장소

대성당엔 이름난 회화나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이 있지 않고,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 아닌데도 그 안에서의 시간은 길었다.

Capo시장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멋지고 근사한 포르타 누오바가 눈을 기쁘게 해 준다.

 

과학박물관(왼쪽)과 포르타누오바(오른쪽)
포르타 누오바

104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Capo 시장은 여행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Ballaro 시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

길게 늘어선 카포시장의 맨끝, 청년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멋들어진 노래 솜씨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수완이 탁월했는데, 오징어튀김과 추천받은 시칠리아 가지요리 모두 맛있었다.

 

Capo시장
오징어튀김과 가지요리

오랫동안 쏘다녔으니 쉬어야 할 시간이다.

숙소에서 1분컷인 Famila 마트에 들렀다가 아파트에 들어오니 오후 3시반, 허리가 아파온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0층부터 8층까지 9개층이 있는 아파트 건물로, 숙소는 3층(우리식 4층)에 있다.

그런데 지상층이 아닌데도 집 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유가 창틀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과 높은 층고 때문인가 했으나,

겪어보니 앞뒤 건물과 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향인지 종일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집이다. 

 

콰트로 칸티
팔레르모수호성인 로살리아와 팔레르모대성당
숙소 부근 대로 : 버스정류장

잠을 이기지 못해 1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오후 6시, 얼른 떡라면으로 속을 채웠다.

저녁 8시, 고요하고 잠잠한 콰트로 칸티를 서성이고, 철문으로 닫혀있어 더욱 적막한 대성당 앞을 가만 지난다.

 

팔레르모의 늦겨울 밤은 쓸쓸하고 아주 스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