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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6 시칠리아

2월 27일 (금) : 시네마천국, 체팔루

오전 8시반, 조금 일찍 길을 나선다.

101번 버스로 중앙역에 닿은 후 티켓머신에서 오전 9시 36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발권했고

기차 왼쪽 좌석에 앉아 지중해 보기를 40분, 다다른 체팔루Cefalu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덮여 흐리다.

 

체팔루 대성당
체팔루 대성당

체팔루 중앙역으로부터 낯설지 않은 오래된 길을 따라 15분쯤 걸어가면 체팔루 대성당을 만날 수 있다.

본당 건물이 수십 개의 계단과 철문 안에 갇혀있는 구조는, 시칠리아 많은 도시에서 보았듯 이 섬 성당들의 특징인가 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는 11세기부터에는 유럽 북방 노르만족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즈음 시칠리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노르만 양식이라 한다. 체팔루 대성당 역시 12~13세기에 노르만 양식으로 건립된 성당이다.

 

노르만 양식이라는 명칭은 낯설고 그 생김새는 딱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의아했는데, 노르만 정복지에서는 로마네스크가 노르만이다.

로마네스크 건축물은 10~12세기에 주로 지어졌고 대칭, 높지 않은 첨탑, 연속성 지닌 아치, 두꺼운 벽, 작은 창문 등의 특성을 지닌다.

집에 있는 건축 관련 도서 중 조나단 글랜시가 쓴 '건축의 역사'에도 노르만 양식에 관해 비슷한 맥락의 내용이 담겨있다.

 

체팔루 대성당
대성당 앞 광장

계단과 철문을 뒤로하고 꽤 넓은 마당-아트리움-을 지나면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성당 현관-나르텍스-이 나타난다.

나르텍스의 관문인 3개 아치는 초기 로마네스크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기둥 위에 올려져 있고, 3아치 중 가운데는 일반 아치지만

양쪽 둘은 덜 모난 첨두아치인 걸 보면 후기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다.

 

체팔루 대성당은 팔레르모 대성당처럼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단단한 벽체를 통과해서 사뿐히 대성당 신랑으로 들어서면, 신랑과 측랑을 가르는 투박한 벽과 기둥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신랑과 측랑 사이 벽면엔 창문과 완만한 첨두아치가 뚫려있고 그 아래에는 나르텍스에서처럼 코린트 기둥이 등장하는데,

온통 두꺼운 벽으로 지은 초중기 로마네스크 건물에 비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체팔루대성당 : 신랑,측랑,중앙제대,앱스
중앙제대

거칠고 묵직한 외관과는 달리 중앙 제대와 앱스는 금빛 모자이크, 조각과 부조, 종교화들로 장식되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중앙 제대 뒤 반원형 앱스의 천장과 위쪽은 황금빛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으며 중앙 돔 안쪽에 '판토 크라토르'를 새겨넣었다.

전지전능한 분 또는 존엄한 우주의 지배자를 의미하는 '판토 크라토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고

오른손을 올려 축복하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표현한 비잔틴의 특징이다. 

'판토 크라토르'만 놓고 보면, 훨씬 화려한 몬레알레 대성당보다 이곳의 예수 모자이크가 더 예쁘고 정감있게 표현되었다.

 

중앙제대

비잔틴 금빛 모자이크는 아름답긴 하지만 표현 대상이나 스토리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늘상 등장하는 구약의 인물들 및 몇몇 사도나 성인만 보일 뿐, 나머지 인물들은 그 도상조차 구별이 어렵다.

마침 앱스 아래쪽에 반가운 조각상이 있었으니 성바르톨로메오, 성안드레아, 성안토니오-하늘색 선-가 그들이다.

 

영화 '시네마천국' 배경
영화 '시네마천국'

여전히 뿌연 체팔루 지중해는 영화 '시네마천국'의 촬영지다.

마을 극장의 화재로 영사기사인 알프레도가 시각장애인이 된 후, 어린 나이에도 정식으로 영사기사가 된 토토.

청소년이 돼서도 토토는 학교를 다니면서 여전히 영사 일을 하고 있고 바닷가에서 심야 상영을 하던 심드렁한 날,

그리운 엘레나가 토토를 찾아오는데, 바닷가에서의 영화 상영 신과 빗속의 키스 신 모두 체팔루 바다가 배경이다.

 

이 감동적인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토토의 어린 시절과 마을 극장은 '팔라초 아드리아노'라는 마을에서 촬영되었다.

이곳은 팔레르모에서 남쪽으로 불과(?) 100km 정도 떨어져있으나 대중교통으로는 당일치기 접근이 어렵기에 가고픈 마음은

굴뚝 같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빨래터

메인 거리를 걷다가 담수가 흐르는 오래된 옛 빨래터를 한참동안 살펴보고,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포르타 페스카라를 바라본다.

빨래터에 냠겨진 여러 개의 아치도, 포르타 페스카라의 첨두 아치도 운치 있고 멋스럽다.

 

포르타 페스카라

체팔루 성벽을 따라 나있던 4개의 문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포르타 페스카라 Porta Pescara는 1570년에 재건되었다.

구시가 해변과 옛 항구 근처에 위치한 이 문은 고딕 양식의 첨두 아치를 통해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레스토랑 Liberty
지중해가 보이는 체팔루 레스토랑

점심식사는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했다.

실내와 이어진 발코니 좌석 중 조망 좋은 자리에서 맥주와 탄산수 그리고 까르보나라와 새우파스타를 주문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쉽게 주문한 음식이 아주 맛있다.

 

어느 새 하늘 한쪽의 구름이 걷혔다.

찬찬히 바닷길을 걷고 느긋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느릿한 체팔루를 여념없이 즐긴다.

 

체팔루 앞 지중해

체팔루 당일치기 계획을 세울 때, 로카에 올라 도시를 조망할 예정이었으나 오늘은 날이 흐려 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힘을 내어 힘든 높은 곳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었기에 가지 않기로 했다.   

이미 많이 낡은 우리에겐 아직도 여행지와 여행 기간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바다 전망대 (오른쪽)
체팔루 앞 지중해 : 전망대에서
영화 '시네마천국' 배경

'시네마천국' 속 바다는 이곳에 머무는 내내 구름밭이다.

아쉬운 마음 담아, 잔잔한 바다 위에 비치는 반영까지 눈에, 또 가슴에 차곡히 담아넣는다.

 

체팔루 기차역
팔레르모 숙소 근처 빵집

체팔루에서 오후 3시 22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돌아온 팔레르모.

팔레르모 중앙역에서 숙소 가는 버스는 경적을 울리면서 난폭운전을 하고, 오토바이와 전동킥보드는 도로 중앙선 위를 곡예하듯 달린다.

세상 모든 인종이 뒤섞인 이 도시는 질서도 마구 뒤섞인 걸까. 

 

브레이크타임 후 오후 5시에 오픈하는 숙소 근처 빵집에 갔으나 5시10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기다리다 돌아서는 우리 뒤로 10명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던데, 시간 개념 버린 그 빵집은 언제 문을 열었을까. 

 

파밀라Famila에서 빵과 치즈, 요거트를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오니 카타니아 숙소 호스트가 보낸 메시지가 들어와있다.

숙소 입실 72시간 전까지 작성해야 할 양식에 맞추어 정보를 기재한 후, 갑자기 통보한 도시세 인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체팔루는 진실로 좋았으나 팔레르모는 참으로 고단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