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막내가 강아지별로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두 핸드폰에 저장된 막내 사진을 나란히 띄워놓고 녀석이 좋아하던 바나나와 사과를 접시에 담았다.
부디 강아지별에서 행복하기를, 그곳에서 우릴 내려다보면서 활짝 웃고 있기를.
하늘 푸른 오전 9시반, 숙소를 나선다.
28번 트램을 타고 마르팀모니즈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한 후 도착한 곳은 Campo Grande역이고,
지하철역 근처 Rápida Verde 버스터미널에서 약갼의 기다림 끝에 11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승차했다.
오비두스까지 가는 버스요금은 1인 편도 9.25유로-2025년 10월 기준-였고, 다른 대중교통 요금에 비해 비싼 편이다,


에어컨이 작동되는 버스 내부는 시원했고 1시간쯤 달려 12시 5분, 오비두스에 도착했다.
'성채'의 뜻을 지닌 오비두스는 성벽 안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성벽 안 오비두스의 정문 Porta da Vila 포르타빌라에 들어섰다.
이중 돌문이 만든 공간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리고, 위쪽 벽면엔 예수의 수난을 묘사한 아줄레주 장식-1740년 제작-이 있다.
문 안쪽 왼편으로는 성벽이 시작되고, 직진하면 오비두스의 메인거리인 Rua Direita루아 디레이타가 펼쳐진다.



중심 거리 Rua Direita는 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에 들어선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샵, 소품샵, 옷가게 등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동네, 생각보다 더 상업적인 느낌인데.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한 포르투갈 어느 왕이 왕비에게 선물한 연유로, '왕비의 도시'라는 별칭을 지닌 오비두스는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고, 그러다보니 중심 거리는 지나치게 관광객 맞춤형이다.



메인 거리에서 좀더 안쪽으로, 좁은 길로 가면 이곳의 진짜 매력에 다가갈 수 있을까.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예수의 아줄레주를 만나고, 집들 사이에 자리잡은 성벽의 한 자락을 만난다.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여, 롱기누스가 만든 성흔을 눌러대던 성토마스도 만난다. 12사도 중 하나인, 목수 출신인 그는 직각자를 들었다.


다시 메인 거리로 돌아와 거리 끄트머리 직전의 소박한 빵집에 앉았다.
딱 동네 빵집 같이 생겼으나 여행자들만 오가는 이곳, 초리초가 든 빵과 옥수수빵은 괜찮은 요기가 되어주었다.


거리의 끝을 향해 가는 중 나타난 예쁜 두 갈래 길, 하나를 골라서 가야 한다면 두 길의 종착지는 어떠할까.
같은 곳일까, 또는 서로 가까운 인접지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일까.
가을이 오지 않은 Rua Direita를 연보라, 진분홍꽃들이 채우고 있고, 예전엔 성당이었으나 지금은 서점인 건축물이 거리 끝에 등장했다.



외관 어디를 보든 성당일 수밖에 없는 이 서점의 옛 이름은 '산티아고성당'.
12세기에 처음 건립된 후 재건되었다가 1755년 리스본대지진으로 거의 파괴된 후 1772년에 성당이 완공되었다.
1989년부터는 마을의 문화행사 장소로 사용되다가 이후 서점이 되었다고 하는데, 내부엔 성당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신자들 수가 가파르게 줄어드는 유럽 카톨릭국가의 도시마다, 남아도는 성당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도 예외가 아닌가보다.



오비두스에 왔으니 성벽에 난 길을 걸으며 성벽 안팎의 풍경을 봐야 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우리는 계단을 밟아 성벽에는 올라갔으나 예상대로, 성벽을 따라 딱 몇 걸음 걸었을 뿐 더이상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폭이 좁은, 어떤 구간은 좁아도 너무 좁은 성벽 길, 그런데도 안전 장치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 길을 도저히 갈 수 없었다. .
바람마저 강한 높은 성벽,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도 있었다면 성벽에서 잠시 본 멋진 전망을 오래 누릴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성벽에서 내려와,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을 마음 가는 대로 걸어본다.
성벽이 주는 정경 못지 않은, 평온하고 멋스러운 풍경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 아까는 닫혀있던 성모마리아성당 출입문이 열려있다.
양쪽 측랑과 뒤쪽 벽면이 온통 푸른 아줄레주로 장식된 이곳, 성안토니오 조형물 앞 붉은 초에 소원의 불을 붙였다.
2년반 전 리스본을 처음 여행했을 때는 신트라와 호카곳, 카스카이스를 다녀왔기에 이번엔 다른 곳을 가고자 했다.
리스본 근교의 오비두스와 에보라 중 시각적으로 끌린 오비두스를 선택했는데, 오늘 오비두스를 걷는 내내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놓친 것은 무엇일까. 두 갈래 길 중 고른 이곳에서 찾지 못한 것을, 에보라에 갔다면 찾을 수 있었을까.


성벽 밖 버스 정류장에 열대여섯쯤 된 여학생 십수명이 모여 영어로 떠들고 있다.
여학생들의 깊고 긴 수다-인간 무리의 시끄러운 수다는 두렵고 위험함-속에서 우린 무사히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래도 숙제 하나 해치운 날.
저녁 오븐에는 버터 오징어와 버터 감자 그리고 바칼라우 크로켓이 익어가고 있다.
테주강 산타아폴리니아역 앞에 정박한 크루즈에선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고 있었다.
'표류 [여행일기] > 2025 리스본·세비야·마드리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0월 18일 (토) : 테주강이 지는 자리 (1) | 2025.12.15 |
|---|---|
| 10월 17일 (금) : 리스본대성당 그리고 파두 (1) | 2025.12.12 |
| 10월 15일 (수) : 아줄레주와 세뇨라두몬테 (1) | 2025.12.10 |
| 10월 14일 (화) : 테주강 물결 따라 (1) | 2025.12.08 |
| 10월 13일 (월) : 광장과 성당 사이 (0) |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