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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5 리스본·세비야·마드리드

10월 18일 (토) : 테주강이 지는 자리

알파마

이제야 시차 적응이 완료된, 여행 시작한지  딱 1주일 되는 날이다.

내일 갈 알부페이라 숙소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오전 10시 20분, 알파마 바로 서쪽의 산타클라라시장으로 간다.

 

산타클라라 시장
지구를 들고 있는 아틀라스(티탄족 신)와 지구본
산타클라라 시장

산타클라라 시장은 상설장도 있고,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을 비롯하여 더 큰 장이 열린다.

어느 상점 앞, 오래된 지구본 옆에 자리한 '지구를 들고 있는 아틀라스'가 아주 재미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티탄족 신 프로메테우스와 형제인 아틀라스는 티탄족 신과 올림피아 신들-제우스 중심-과의 싸움에서

티탄 신 편에 섰다-같은 티탄이니 당연함-는 이유로, 제우스로부터 머리와 손으로 지구와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된다.

 

산타클라라 시장
산타클라라 시장
산타클라라시장 옆 보토마차도정원

규모 크고 정신없는 산타클라라 시장을 대충 둘러본 우리는 시장 옆 보토마차도정원으로 들어갔다.

정원 입구 울타리 안쪽엔 무명화가들이 그림을 걸고 있고, 우린 2023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짧은 산책을 했다.

2년반 전처럼, 공원 한켠엔 강아지공원이 그대로 있었고 손에 잡힐 듯한 테주강의 수평선도 그대로였다.

 

보토마차도 정원
마차도정원에서 본 판테온과 시장
보토마차도정원과 테주강 전망

알파마로 가는 길, 수도원도 함께 있는 상빈센트성당에 입장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이곳엔 아줄레주 대신 '미카엘대천사' 조형물이 있다.

 

3대 대천사 중 바쁘게 열일하는 미카엘대천사는 발 아래 용을 제압한 채 방패를 들고 불칼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이곳의 대천사는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은 최후의 심판 때 죽은 영혼의 죄를 판단하기 위한, 죄의 무게를 재기 위한 것이다.

한편,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 그리고 '이삭의 희생' 에피소드에서 신의 뜻을 전한 천사도 바로 미카엘대천사다.

 

상빈센트 성당
상빈센트 성당
미카앨대천사

오늘도 안 들를 수 없는 알파마도스 빵집에서, 오늘 내일 먹을 빵을 왕창 구입했다.

리스본을 떠나는 내일은 알파마도스가 휴무하는 일요일이라, 내일 버스에서 먹을 빵까지 미리 확보해두었다.

 

알파마도스 빵집
알파마도스

빵과 주스를 간식으로, 오징어버터구이와 라자냐를 점심으로 먹으면서 KBO플레이오프 1차전 하이라이트를 시청했다.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내 꿈이었던 야구는 한결 같이,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아침에 알부페이라 숙소 호스트에게 보낸 답이 오후에야 도착했다.

그런데, 친절한 호스트가 보낸 숙소 사진은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사진도, 주소지 아파트 사진도 아니었다.

숙소는 4개층-0층 주차공간. 아파트는 1층부터 4층까지-아파트의 1층이 아닌, 0층 주차공간 옆 지상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알부페이라 아파트는 에어비앤비 한국어 번역-늘 자동번역됨-에 분명히 1층으로 쓰여있다.

유럽 기준으로 1층은 0층이나 지상층이 아니기에, 당연히 4층 중 1층의 베란다 없는 아파트가 숙소인 줄 알았다. 

호스트와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지상층임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고, 호스트가 올린 영어 원문에도 지상층-Ground Floor-으로

되어있음을 확인했다.

 

세상에나, 정신이 멍해지고 영혼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리뷰도 꼼꼼히 읽었는데, 평점도 매우 높고 지상층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를 어쩌지, 여기 어떻게 하지.

이곳은 알부페이라 숙소의 평균 비용에 근접했고, 예약 당시-여행 10개월전- 비슷한 가격대의 숙소가 상당히 많았는데

난 하필 왜 이곳을 예약-물론 남편은 괜찮다고-했는지 약한 자책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알파마지구
상미구엘 성당 : 규모는 작아도 동쪽으로 난 성당문 3개
상미구엘 성당

알부페이라 숙소 문제는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리스본의 마지막 어스름을 지키러 밖을 향한다.

숙소 근처 상미구엘 성당 앞 계단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내내 닫혀있던 성당 출입문이 주말이라 그런지 살짝 열려있다.

 

코메르시우 광장
테주강과 코메르시우광장
테주강과 과거 부두자리

코메르시우 광장과 테주강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대서양과 이어닿은 테주강에 바다처럼 갯내가 퍼지고 또 파도가 치고, 바다 갈매기들은 자유로운 비행을 한다. 

 

알파마와 리스본대성당
카페 상미구엘의집
알파마지구 광장

테주강을 만나고 숙소로 향하는 길, 알파마 언덕에 자리한 집들이 리스본대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낮은 어둠 속의 알파마, 작은 불빛 퍼지는 카페도 담소하는 사람들을 품은 광장도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산투에스테반 성당(왼쪽)과 산투에스테반 전망대 앞
산투에스테반 성당(왼쪽)과 산투에스테반 전망대

전경 근사한 여기는 어딜까.

2년반 전엔 1주일을, 이번엔 8일을 머물렀는데, 이 길 앞쪽으론 여러 번 오갔으나 안쪽엔 처음 와보았다.

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큰 십자가가 테주강과 눈맞추고 있는 이곳은 산투에스테반 전망대라고 한다.

리스본의 마지막 밤, 이 호젓한 곳에서 또다른 정취의 테주강을 볼 수 있으니 그저 즐겁고 벅차다.

 

산투에스테반 전망대
산투에스테반 전망대
알파마 숙소 앞

밤 거리가 온통 황금빛이다. 

테주강을 안은 알파마에 낭만이 쉴 새 없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