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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5 리스본·세비야·마드리드

10월 26일 (일) : 스페인광장과 세비야대성당

유럽의 서머타임이 해제된 10월 마지막 일요일.

어제까진 일출이 오전 8시40분대였으나 오늘 예정된 일출은 7시42분 그리고 일몰시각은 오후 6시32분이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여러 세대가 생활하는 숙소 건물은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고요하다.

 

살바도르 광장
카페&빵집 Domi Velez

오전 9시반, 오전 여정을 시작한다.

2km 떨어진 스페인광장으로 가는 중, 많은 볼거리들이 뜻하지 않게 줄줄이 나타나준다.

 

Nueva누에바 광장
세비야대성당
Cabildo카빌도 광장

누에바광장을 밟아 세비야대성당 곁을 지나고 나니, 나중에 들를 예정이었던 카빌도광장이 출현했다.

고운 반원형 건물로 둘러싸인 아리따운 광장에 아침부터 여행객들이 바글바글하다.

이 아담하고 독특한 공간엔 며칠 후 작정하고 꼭 다시 들러야 할 듯하다.

 

플라멩코 공연

쉬어가는 시간, 어느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았다.

강렬한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옆 벤치에서 거리 공연 준비를 하던 중 우리에게 강렬한 미소를 보낸다.

배경음악을 재생시키고는 플라멩코 단독 공연 시작하는 여인, 그 세찬 포스에 이끌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세비야대학
세비야대학

가물가물했던 세비야대학 앞을 서성인 다음 20분쯤 걸었을까.

먹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세비야에서 보기 쉽지 않은 빛깔을 띤 스페인광장이 수로를 잃은 채 등장했다.

 

세비야 스페인광장

세비야 스페인광장은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1928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여러 양식이 혼재된 반원형 건축물이 있고 수로엔 4개의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들은 스페인 고대 왕국을 상징한다.

또한 건축물 하단에는 스페인 각 지역의 역사를 벤치 공간과 함께 화려한 타일로 표현하여, 여행객에겐 완벽한 포토스팟이다.

 

스페인광장 : 그라나다

드넓은 광장에 먹장구름과 흰구름이 오가고 더운 기운도 합세한다.

광장을 둘러싼 수로에는 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갈 곳 없는 수로의 오리들은 물이 찔끔 있는 곳에 모여 떠있다.

물을 인위적으로 뺀 것이든 날씨 때문에 물이 증발한 것이든 동물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페인광장

반원형 건축물 위층에 오르니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과 광장에는 볼만한 공연이 많았는데, 압권은 광장 한켠에서 펼쳐진 수십명의 아마추어 플라멩코 군무였다.

다른 공연을 오래 보는 바람에, 검은 옷을 맞춰입고 칼군무를 추는 장관을 잠시밖에 못봐서 아쉬울 뿐이었다.

 

플라멩코 공연
플라멩코 군무공연 후

주말이라 광장이나 거리에 인파가 넘치다 못해 터질 지경이고 한국인들 역시 아주 많다.

숙소로 들어가는 전, 쿠쿠추로에서 따끈따끈한 롱추로스를 포장했는데 핫초코 없이 설탕만 살짝 뿌려먹어도 아주 맛있다.

 

세비야대성당 히랄다탑 (105m)
세비야대성당 중앙제대
세비야대성당 중앙제대

오후 4시, 대성당 히랄다탑 옆 입구에 줄을 선다.

세비야대성당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반부터 무료입장할 수 있으며, 당연히 사전예약은 필수다. 

4시반이 되자, 예약 티켓의 큐알코드를 확인한 후 여권-신분증-까지 검사한 다음 관람객을 성당으로 들여보낸다.

 

세비야대성당은 12세기에 지은 직사각형 모스크 자리에 1401년경부터 건립하여 1506년에 완공하였다.

이베리아 반도는 8세기부터 무어인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포르투갈은 13세기, 스페인은 15세기에야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특히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에 이슬람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또한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하거나

모스크 자리에 그대로 성당을 건립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사방 사면에 문이 있는 세비야대성당은 히랄다탑 근처 동문으로 관람객들을 입장시킨다.

이곳은, 성당 출입구인 서쪽 문으로 입장해서 신랑과 측랑, 내진으로 들어오는 통상적 순서를 택하고 있지 않다.

성당에서 내진과 중앙제대가 있는 동쪽-방향이 다른 경우도 있으나 주출입구와 중앙제대는 맞은편-은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근처에 출입문이 없지만, 세비야대성당에서는 찬란한 금빛-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으로 장식한 중앙제대

-성화스크린-를, 출입문에 들어선 후 바로 마주할 수 있다.

이슬람 양식도 남아있으나 여기저기 잔뜩 익숙한 고딕 양식-리브볼트,다발기둥,첨두아치,첨탑,공중부벽 등- 투성인데도

대성당 내부는 아주 거대할 뿐 낯설고 어수선하다.

 

성크리스토퍼 벽화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묘
프란치스코 수르바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1640
프란치스코 고야, 산타후스타와 루피아, 1817

대성당에서 큰 관심을 받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은 레온, 아라곤, 카스티야 등 스페인왕국 왕들의 동상이 떠받쳐들고 있는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관 옆 벽면에는 성 크리스토퍼 벽화가 있다.

별 준비도 하지 않았고 성당 구조도 눈에 익지 않이서 걸음 가는 대로 내부를 걷다보니 스페인화가 수르바란과 고야의 종교화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스페인 성당마다 카톨릭 종교화보다 조형물-인형-들이 넘쳐나더니 여긴 성화가 많다. 

 

성구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산린드로, 1655

성구실은 성당의 성스러운 보물을 보관 전시하는 공간으로, 상시 무료입장인 성당에서도 입장료를 받거나 개방이 제한된 곳이다.

세비야대성당은 무료입장 시각을 제외하고는 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성당이라 성구실은 물론 히랄다탑까지 다 입장할 수 있다.

 

성구실을 나와서 다다른 저편 어느 채플 앞, 특별한 미사가 진행 중인지 그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그런데 막혀있는 건 그 길만이 아니다. 모든 채플마다 튼실한 철문이 있고 관람객은 철문에 난 쪽문으로만 채플에 드나들 수 있다.

중요한 보물이 많아서인지 치안과 보안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성당과 철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중앙제대(왼쪽)
채플마다 철문

일정이 힘에 부쳐서 히랄다탑-예전에 2번 오름-엔 오르지 않겠다고 하자, 남편은 성당 안이 너무 더웠다고 말한다.

진작 말했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당을 후딱 탈출했을텐데, 왜 이제서야 말하냐고~

오렌지 정원-북쪽-을 통해서 성당 밖으로 나온 오후 6시, 빗줄기가 쏟아지고 우린 문 앞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오렌지정원
살바도르광장 앞

비가 거의 그친 다음 잽싸게 움직여서 살바도르광장에 이르렀으나 이번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폭우가 매몰차게 퍼붓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가던 길을 멈춘 채 비를 피했고, 오픈하지 않은 가게 앞에서 20분동안 비 내리는 거리를 보고 있었다.

 

라자냐와 오징어튀김을 먹으며, 낮에 본 6화에 이어 '너목들' 7화-참 슬픈 엔딩-에 열중했다. 

그리고는 조속히 누웠으나 이상스레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