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다.
아침 메뉴인 된장찌개와 리코타치즈샐러드가 의외로 아주 잘 어울린다.


숙소를 나와 14번 버스를 탄 오전 10시반, 그런데 5~10분쯤 갔을까.
버스 뒷문이 닫히지 않아서 버스 기사는 운행을 중단했고 승객은 전부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5분 후 이번엔 14번 아닌 10번 버스-추가요금 없음-에 올랐고 우린 시벨리스 버스정류장에 하차했다.
시벨레스 광장 중심엔 시벨리스 분수가 있고 뒤편엔 시벨리스 궁전이 자리해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시벨레스 분수는 아나톨리아-소아시아,터키-지역 대지의 여신인 시벨레-키벨레-를 표현한 것이고
마드리드를 여행한 2008년과 2017년에 우체국이었던 시벨리스 궁전은 이제는 마드리드시청사-아마도-가 되어있다.



시벨리스광장에서 300m쯤 움직이면 오늘 행선지인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이 있다.
월요일엔 12시부터 16시까지만 운영하는 티센보르네미사는 매주 월요일 모든 관람객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별도의 예약 없이
미술관 앞에 줄을 서면 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입장 시각까지는 40분이상 남아있었으나 철문 앞엔 이미 100m 이상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정오가 되자 검색대를 통과하여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국립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의 뿌리는 티센보르네미사 가문의 컬렉션이다.
컬렉션 규모가 커지자 스위스 루가노의 전시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고, 한스 하인리히 남작은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장소를 구한다.
스페인의 지원을 통해 1992년 대여 형태로 마드리드에 미술관을 개관하였고, 이듬해 스페인 정부는 주요 컬렉션을 매입하게 된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은 3개층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 걸려있는 전시작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작품들로,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 회화들이 주를 이룬다.
1층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의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작품이, 0층에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등 현대미술작이 전시되어있다.
미술관 출입문에 들어서서 처음 만난 그림은 0층 메인홀에 걸려있는 틴토레토의 '천국'이다.
베네치아 두칼레궁전 대회의실에는 9m*22m가 넘는 틴토레토의 '천국'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데, 티센 메인홀의 그림은
두칼레궁전 '천국'의 최종 밑그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림이 두칼레 '천국'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은 근거가 있던 셈이다.
이 그림은 중앙 상단에 그려진 '성모의 대관식' 장면이 중심이고, 성인들과 복자들, 천사들이 중심을 향해 역동적으로 배치되어있다.
완전한 마이너는 아니었으나 상당히 마이너스러운 틴토레토를 나는 참 좋아한다.
같이 활동한 베네치아화파 티치아노나 베로네세와는 달리 짙은 어둠과 가느다란 빛에 역동성과 간절함을 담아냈기 때문일까.
곧 2층으로 이동하였고, 회화들을 시대순으로 감상해보려 한다.



중세 끝자락을 담아낸 시모네 마르티니와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금빛 그림에 이어 르네상스 회화들이 등장한다.
수태고자 속 성미카엘 대천사와 성모마리아를 각각 동일한 작은 크기로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낸 얀 반 에이크의 그림은 압권이다.




마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와 요절한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초상화도 살구빛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헨리 8세 초상화는 한스 홀바인이 그렸다. 헨리 8세는 6번 결혼하는 과정 중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분리시킨, 피의 역사를 지닌 왕이다. 헨리 8세와 두번째 왕비 앤 볼린의 이야기는 영화 '천알의 앤'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14세기에 태동되고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개한 르네상스는 16세기앤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흐름을 이어간다,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인 조반니 벨리니를 비롯하여 '회화의 군주'라 칭하는 티치아노, 그의 제자 베로네세가 그린 그림들이
벽면 가득 아련하게 걸려있다.



베네치아 초기 르네상스를 채운 비토레 카르파초는 커다란 화폭 가득 열정적인 인물과 재미있고 활동적인 배경을 채워냈고,
브론치노는 화살형을 받고도 살아난 성세스찬를 화사하게 그렸다. 야콥과 한스가 묘사한 '방문'에서는 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자 성모마리아의 사촌언니 엘리사벳의 만남을 표현했는데, 이는 요한과 예수의 태중 만남을 의미한다.


멀리서도 시야에 확 드는 그림은 역시 카라바조다.
카라바조의 액자그림 치고는 큰 편으로, 쇠갈퀴 바퀴형에서도 죽지 않은 성카타리나는 자신이 참수당한 칼을 든 채 바퀴 곁에 앉아있다.
카라바조 회화 오른쪽에 놓여있는, 베르니니의 성세바스찬 조각상은 그 진가가 살짝이 묻히는 듯하다.



아버지 잠바티스타 티에폴로와 아들 도메니코 티에폴로는 선과 색채 모두 곱고 화사하게 묘사했다.
그리스신화 속 아폴론의 연인 히아신토스와 포에니전쟁에서 활약한 장군의 딸 소포니스바는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아름다워야했고,
스스로를 태운 신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불사의 신이 되는 과정도 곱디곱게 표현하였다.



베네치아 풍광을 그린 카날레토의 그림은 베네치아에 대한 화가의 애정이 묻어나고, 베네치아에 대한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8세기 후반에 잠시 등장한 로코코 미술, 부스스한 장식성이 가득한 프라고나르의 그림은 로코코를 아주 잘 보여준다.



17세기 플랑드르 거장인 프란스 할스는 서양미술사를 처음 공부할 때 처음 접한 화가다.
1인 초상화와 집단 초상화 등을 주로 그렸고, 플랑드르 거장의 맥은 렘브란트 그리고 베르메르로 이어진다.


19세기초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와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은 크기가 작은 것들만 걸려 있다.
18세기 말에야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프랑스 미술은 로코코와 신고전주의에 이어, 감정적이고 직관적이며 주관적인 낭만주의 회화를
벽면에 걸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의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고, 고야의 '피케테 삼촌'에게도 즐겁게 눈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2세기를 거슬러 등장한 렘브란트, 수많은 자화상 중 하나인 이 그림은 30대 화가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걸까.
명예와 재산 그리고 가족마저 잃게 되는 미래의 자신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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