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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5 리스본·세비야·마드리드

11월 3일 (월) 2 :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2

이젠 1층으로 이동해서 19세기와 20세기 작품들을 마주할 시간이다.

카메라가 발명된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아카데미즘-고전적,이상적,사진같은-미술은 인기를 잃게 되고 사실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미술이 세상에 등장한다.

 

존 싱어 사전트, 밀리센트 서덜랜드 공작부인의 초상화, 1904 / 윌리엄 메릿 체이스,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성, 1887

이탈리아, 독일, 플랑드르 중심의 르네상스 미술은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쳐 18세기말~19세기초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로 흘러간다.

이때부터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20세기 이후 현대 미술은 다각화된다.

초상화를 주로 그린 존 싱어 서전트(1856~1925)와 인상주의 스타일의 회화를 많이 그린 윌리엄 메릿 체이스(1849~1916)는

19세기말부터 활동한 미국화가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정원에서 양산을 쓴 여자. 1875
까미유 피사로,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 1897

19세기말부터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마네 등이다.

까미유 피사로(1830~1903)는 인상주의 화가 중 가장 나이 많았는데 그의 성품처럼 온유하고 평화로운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발레 무용수를 많이 그린, 부유층이었던 에드가 드가(1834~1917)는 말년에 거의 시력을 상실하자 촉각을 이용한 조각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전에 어느 미술관에서 드가의 조각을 몬 적이 있는데, 조각 또한 발레리나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에드가 드가, 몸을 기울이는 무용수(초록옷 입은 무용수), 1879 (64x36cm)
에두아르 마네, 말을 탄 여인,정면, 1882

후기 인상주의는 19세기의 완연한 끝자락에 이어지는데 고흐, 고갱, 쇠라, 세잔 등이 활동했다.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풍경화는시선을 오래 끌었고 석판화-소묘인 줄-도 정말 독특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노동자들, 1888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까미유 코로(1796~1875)는 인상주의 아닌 사실주의 화가다.

그가 그린 풍경화는 대충 인상과 느낌만 뭉뚱그려놓은 인상주의 회화와는 달리 제대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장밥티스트 까미유 코로, 포트말리의 사자 공원. 1872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흰 블라우스를 입은 빨간머리 여자, 1889

2권짜리 미술사 책에서 처음 본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은 유서 깊은 프랑스 귀족 출신이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허약-부모가 서로 사촌-했고 다리를 다친 후엔 성장이 멈춰버렸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미워하고 조롱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미술 공부를 하게 되고, 독창적인 그의 그림은 포스터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앙리 마티스, 노란 꽃들, 1902
폴 세잔, 앉아있는 남자, 1906

야수파인 앙리 마티스(1869~1954)는 강렬한 선과 색채를 단순화시켜 풀어놓았고, 내 기준으로 참 재미없는 그림만 남긴 폴 세잔

(1839~1904)은 근대 미술의 아버지-명명의 이유는 알지만-라 불린다고 한다.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요절한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는 애절하고 짙은 색채로 가족의 공간인 집들을 그려냈다.

 

에곤 실레, 강변의 집들, 1914
마크 샤갈, 회색집, 1917

이제 진짜 현대 미술이 시야에 걸리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1872~1944)은 선 분할과 색 분할을 통해 3차원 이상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1863)'과 흡사한 장면에 초현실적 대상을 덧붙여 초현실적 제목을 붙였다. 

 

피트 몬드리안, 뉴욕3(미완성), 1941
살바도르 달리, 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위를 맴도는 별의 비행으로 인해 생긴 꿈, 1944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가장 많이 알려진 '호텔 룸'은 그림 크기가 예상보다 컸다. 

그는 도시의 일상적 공간이나 장면을 많이 그렸는데, '호텔 룸'은 낡은 화면의 정지 장면처럼 느껴져서 마치 정물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 호텔 룸, 1931 (152x166cm)
에드워드 호퍼, 호텔 룸, 1931 (152x166cm)
에드워드 호퍼, 제봉틀 앞에 있는 소녀, 1921

요상한 조형물이 있어서 확인해 보니 이탈리아계 스위스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제작한 작품이라 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만화 같은 팝아트작도 전시실을 채우고 있었는데, 이 그림이 고가의 미술품-작품이라기보다

미술품이란 말이 어울리는-인 것은 힘있는 국가의 거대한 자본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엄청난 예술적 가치가 있기 때문인지.

 

알베르토 자코메티, 공터, 1950
로이 리히텐슈타인, 목용하는 여자, 1963 (173x173cm)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니, 다른 공간에 짙은 노란색으로 채색된 벽면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베를린으로부터 날아온 파블로 피카소와 파울 클레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 파울 클레 : 베르그루엔박물관 및 베를린신국립미술관 소장품 전시
파블로 피카소, 루카스 크라나흐 2세의 작품을 본뜬 젊은 여인의 초상, 1958 / 루카스 크라나흐 2세, 여인의 초상, 1539
파블로 피카소, 노란 스웨터, 1939

파블로 피카소(1882~1973)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을 모방하여 재구성한 '젊은 여인의 초상'은 한마디로, 별로다.

피카소는 이전 시대 화가의 그림 속 대상을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큐비즘으로 재탄생시킨 작업을 많이 했는데, 오마주인지 재미인지

아니면 혁신적 시도인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만인지 알 수 없으나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거울 보는 할리퀸'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수없이 가득-미술관마다 넘쳐나는-한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이 물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블로 피카소, 창가의 정물 생라파엘, 1919
파블로 피카소, 거울 보는 할리퀸, 1923 (100x81cm)

현대 추상 회화의 시조라 칭하는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1879~1904)의 작품이 이렇게 많이 전시된 것은 처음 본다.

미대 교수이기도 했던 클레는 수많은 느낌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정리해야 했고,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작품화했다고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노력이 배제된 듯한 추상 회화는 다가가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파울 클레, 북쪽의 한 장소, 1923 (오른쪽 두번째) / 네크로폴리스:대규모묘지, 1929 (맨오른쪽)
파울 클레, 봉인된 여인, 1930 / R부인 남부여행, 1924
파울 클레, 회전하는 집, 1921 / 지나가는 궁전, 1928

2층과 1층 전시실을 다 관람했으나 무언가 허전했다. 분명 뭐가 더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알고보니 0층에도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이 여럿 있었는데, 혹여 빼먹었다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작품이 많았다.

 

가운데 : 로댕의 조각
빈센트 반 고흐, 제네프의 물레방아, 1884 (85x151cm)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작품이라 여겨지지 않는 '제네프의 물레방아'는 선과 톤이 수채화 같다.

1872년 '인상, 해돋이'로 인상주의 시대를 연 클로드 모네(1840~1926)의 '바렌지빌의 썰물'은 덜 인상적이라 좋다.

 

루앙미술관에서부터 매료된 알프레드 시슬레(1839~1899)의 인상주의 회화는 여전히 멋지다.

야외 풍경화를 많이 그린 시슬레는 보불전쟁 후 아버지의 사업이 몰락했으나 미술에 대한 열정만은 놓지 않았다.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에, 자신만의 독특한 한 방이 없던 그는 평생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 바렌지빌의 썰물, 1882
알프레드 시슬레, 10월말 모레Moret의 오후, 1888
외젠 부댕, 에트르타 아발 절벽, 1890

이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화가별로 두셋, 많아야 너덧인데 폴 고갱(1838~1903)의 그림은 정말 많았다.

'타히티의 화가'라 불리는 고갱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덕에 추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으니 그것도 복이고 운이라 해야 하나.

 

폴 고갱, 마타 무아, 1892 (91x69cm)
폴 고갱, 초원에서 달리는 개들, 1888

처음 접한 막시밀리앙 뤼스(1853~1941), 점묘인 듯 아닌 듯 밤하늘 달빛을 참 멋스럽게 묘사했다.

루앙미술관에서 많이 본 라울 뒤피(1877~1953), 자주 사용한 밝은 색채 대신 차분한 분위기로 표현한 이 작품도 새로워서 좋았다.

 

막시밀리앙 뤼스, 달빛 속의 공장, 1898
라울 뒤피, 마르세유 수산시장, 1903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정오에 오픈런을 해서 문 닫기 30분 전인 오후 3시반까지 티센보르네미사를 관람했다.

대기까지 포함하면 4시간 이상을 서있고 걸어다녔던 셈이니 힘들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 피곤하고 노곤하다.

미술관 정원 벤치에 잠시 앉아있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600m 거리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넓지 않은 레스토랑 안, 점심 때가 많이 지나서 붐비지 않으니 좋다.

맥주와 탄산수를 요청하고 스페인식 오믈렛과 해물파에야 2인분을 주문했는데, 1인분 팬에 각기 조리되어 나온 파에야 양이 아주 많았다.

 

스페니시 오믈렛
해물파에야

지하철 Martin역에서 멀티카드 10회권을 충전했고 Pacifico역에 내렸다.

Dia와 Carrefour에 들러 치즈만 달랑 구입한 후 숙소에 들어오니 오후 5시반, 나른하다.

 

고단하나 쉬이 잘 수 없는 밤.

새벽 1시-한국시각으로 오전 9시-에, 12월에 수강할 인문학 강의를 오픈런하여 신청했다.

오늘의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이라는 선물처럼 내일도 기쁜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를 축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