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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5 리스본·세비야·마드리드

11월 5일 (수) : 잊혀진 프라도미술관

숙소 근처 버스정류장

온통 흐린 아침, 대구조림과 감자조림과 볶음김치로 아침을 챙기고, 스타벅스캡슐커피와 요거트까지 살뜰하게 챙겨먹었다.

오전 9시, 14번 버스를 타고 대망의 프라도미술관으로 향한다.

 

프라도미술관 외관 : 서편
프라도미술관 앞 벨라스케스 동상
벨라스케스 동상

2017년 1월, 달랑 1시간반만 머물렀던 프라도미술관, 그 앞 벨라스케스 동상마저 가물가물하다니.

프라도미술관 정면 기둥 안쪽 벽면엔 벨라스케스를 비롯하여 고야, 무리요, 수르바란, 엘그레코 등 스페인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이름이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져있다.

 

맨 위쪽 이름 : 엘그레코, 벨라스케스, 무리요, 고야
맨 위쪽 이름 : 무리요, 수르바란, 고야
여신 조각상 : 가운데는 FAMA

미술관 앞 잔디와 맞닿은 벽감마다 여신의 조각상이 채워져 있다.

가운데 자리를 지키는 파마FAMA-영어 fame-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소문과 명성의 여신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소문을

의인화한 것이다. 

 

고야 동상
프라도미술관 동편 : 티켓판매소 및 입구
프라도미술관 : 티켓판매소 및 입구

프라도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사람들은 미술관 건물 동편으로 돌아들어와서 티켓판매소 줄이 아닌 히에로니무스문으로 입장한다.

히에로니무스문은 산헤로니모-히에로니무스-성당이 잘 보이는 쪽에 자리해 있으며, 프라도미술관 관람 후 산헤로니모성당에

꼭 들어가고 싶었으나, 체력이 다했고 시간이 맞지 않아서 결국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테오 판 리셀베르허, 해질녘의 소나무, 1896
산헤로니모 성당

프라도미술관은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스페인 대표 미술관이다. 

1819년에 개관했으며 인접한 레이나소피아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과 함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린다.

 

히에로니무스 문

히에로니무스문 앞 인터넷 예약자 대기줄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입장시각인 10시가 되자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 내부에 관람객들은 많았으나 미어터질만큼은 아니고, 우리도 오후1시까지 3시간만 머물렀으니 굉장히 빠른 관람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관 안에서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흘러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우리가 이 큰 규모의 미술관에서

완전 후딱(?) 관람을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모든 전시실에서 사진 촬영이 절대 불가했기 때문이다. 

 

난 미술관을 둘러볼 때, 전시작을 일단 보고 두번째는 촬영하고 마지막엔 다시 바라보는 3단계(?) 감상을 한다.

그런데 관심작이든 유명작이든 모든 작품을 촬영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보니 관람 시간이 반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크고 작은 모든 전시실에는 감시 직원이 배치되어있고, 혹시라도 촬영하는 관람객이 발견되면 직원이 관람객 곁으로 다가가서

저주받은 스페인어로 크고 무섭게 화를 내면서 소리치고 다그친다. 어떠한 미술관에서도 볼 수 없는, 가혹하고 끔찍한 광경이다. 

 

프라도미술관이 촬영불가 방침을 고수하는 이유는 빠른 관람을 유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쏟아져들어오는 관람객을 빠른 시간에 이동시키고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미술관 측은 관람객 단속에는 이렇듯 열을 올렸으나 전시실 관리와 관람객 안전엔 별로 관심이 없다.

많은 전시실 바닥 타일이 깨져서 발 밑이 덜컹거렸고 방치된 타일엔 빈틈이 생겨 휘청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전시실엔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의 단체관람과 체험학습이 많았는데, 그들은 그리스신화 관련 회화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촬영 없이 3시간 만에 후딱 그림을 관람하고 나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안 보았는지 관람 직후에도 기억이 가물거렸다.

물론 가장 많이 알려진 '시녀들, 쾌락의 정원,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사투르누스, 5월2일과 5월 3일'

등 마스터피스는 기억할 수 있으나 이곳에서 보고 기억해야 할 회화가 어찌 이것뿐이리.

 

티치아노, 황금비를 받는 다나에, 1565, 130x181cm (그림 출처 :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카라바조,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1600, 110x91cm (그림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320x279cm (그림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벨라스케스, 아라크네의 우화, 1660, 220x289cm (그림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고야, 카를 4세의 가족, 1800, 280x336cm (그림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페데리코 데 마드라조, 아말리아 데 야노 이 도트레스,빌체스 백작부인, 1853, 126x89cm (그림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회화 중 미술관에서 직접 감상한 게 확실한 회화 중 몇 작품을 골라보았다.

숙소로 돌아온 후, 어제에 이어 "프라도미술관에서 꼭 봐야할 그림 100가지'"를 펼쳐놓고는 '이걸 봤든가 아닌가'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아주 한심할 지경이다.

 

프라도미술관 0층 카페
프라도미술관 앞

오후 1시, 미술관을 나오니 흐린 하늘에선 비가 떨어지고 있다.

아침에 이어 다시 14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새우와 양파를 넣은 맛난 라면을 먹고는 푹 쉰다.

그리고 숙소 호스트에게, 체크아웃 전에 재활용품과 일반쓰레기 배출에 관한 내용을 질문했는데 그녀가 보내온 메시지엔

두 가지를 내놓는 시간과 장소가 각각 다 달라서 좀 짜증스러웠다.

설명 없이 출입문만 열어주는 영어불가 관리인-셀프체크인이 나을듯-과 매뉴얼 파일 하나 없는 이곳은 진짜 관리가 필요하다.

 

시벨레스 궁전 : 현재 시청사
시벨레스 궁전 : 현재 시청사
시벨레스 분수

오후 5시, Lidl에 들렀다가 오후 6시에 밖을 나섰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도심의 저녁 풍경을 보기 위해 구시가로 가는 길, 10번 버스에 승차했고 시벨레스광장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우산을 받쳐든 채, 시벨리스광장에서부터 그란비아를 향해 걷는다.

 

그란비아 부근
지하철역 그란비아역 앞

조도 낮은 구시가의 저녁비는 많이 내리다가 덜 내리다가, 완전 제멋대로다.

빗줄기와 빗방울 속에서 30분간의 산책을 마치고, 그란비아역에서 지하철 1호선에 올랐다. 

 

그란비아역
숙소 근처

숙소 근처 피자리아에서 맛있는 마르게리타와 디아블로를 포장했다.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요리사가 화덕에서 구운 나폴리스타일 피자를 따뜻하게 건네주었다.

 

숙소 근처 피자리아
숙소 근처 피자리아
마르게리타와 디아블로 피자

27박29일의 여정이 이제 끝자락을 만지작거린다.

새삼, 시간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