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니 에어비앤비엡에 고객센터로부터 답변이 들어와있다.
숙박세 징수는 호스트 재량이라 에어비앤비측에서 관여할 수 없는 사항이고 인상분 징수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 한다.
3월 6일부터 5박을 머물 카타니아 숙소는 수개월전에 예약한 아파트-모든 게 마음에 들었으나 내부에 취사,난방을 위한 lpg가스통이
있다고-를 취소하고 1월에 새로 예약한 아파트다. 며칠 전에 갑자기 안내된 올해부터 인상되었다는 숙박세는, 1월에 예약했으니
숙박요금에 포함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숙소 측에 의견을 제시했으나 업데이트되지 않은 요금이라 납부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오전 10시, 밖으로 나선다.
아폴로신전 앞 타바끼에서 오늘 사용할 1일권-3유로-버스티켓 2매와 시라쿠사를 떠나는 날 사용할 1회권-1.2유로-2매를 구입했고
드디어 오르티지아의 북쪽으로, 섬의 구시가를 벗어나 육지로 달려간다.


버스를 1번 환승하여 다다른 곳은 오르티지아에서 2km 떨어진 Santuario di Santa Lucia al Sepolcro산타루치아 알세폴크로 성당이다.
해석하자면 산타루치아 영묘 성당으로, 산타루치아가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한적한 광장에 자리한 이 성당을 찾은 목적은 중앙 제대에 걸린 카라바조의 '산타루치아의 매장'이다.


산타루치아 알세폴크로 성당 내부는 두어명의 관람객이 있을 뿐 성당 앞 광장만큼 한가롭고 고요하다.
카라바조의 바로크 회화는 자연 채광으로도 키아로스쿠로-테네브리즘,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와 역동성이 드러나는데
중앙제대 그림은 지나치게 어두워서 배경과 대상을 제대로 분별할 수가 없다.



다행인지 1~2유로 동전을 넣으면 조명을 통해 카라바조를 환히 쳐다볼 수 있다.
1유로 어치의 인위적인 조명을 받은 카라바조의 종교화는 예상보다 대형 회화-408*300cm-였고 로마에서 그린 그림들과는 달리
어둠이 더 강렬했으며, 대상을 그리지 않은 어두운 배경 공간이 그림의 2/3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크회화의 문을 연 천재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1601년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자 신세기 된다.
그는 몰타를 거쳐 1608년에 시칠리아로 오게 되는데, 메시나와 팔레르모와 시라쿠사에서 1년 동안 4개의 명화를 그렸다.
'산타루치아의 매장'은 이 회화들 중 가장 먼저 그린 그림으로, 시라쿠사 수호성인 산타루치아에 대한 주민들의 염원을 표현했다.
도굴되어 떠돌다가 베네치아 산티제레미아에루치아 성당에 안치된 유해를 다시 모셔오는 것, 그들의 희망이고 소망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이 그림의 주인공은 산타루치아도, 뒤쪽에 선 주민들도 아닌
삽을 들고 땅-희망-을 파는 두 인부일지로 모른다.



약속된 5분-1유로의 조명-이 끝나고 제대 왼쪽에 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제의실이다.
이곳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의 제의와 미사에 사용하는 성물을 보관하고 신부가 미사를 준비하는 장소라고 한다.
성당 관련자인 듯한 할아버지가 있어서 얼른 돌아나오려는데, 제의실의 제의장과 '산타루치아의 매장'이 각각 찍힌 엽서 2장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라오라더니 1유로를 함에 넣어서 그림을 밝혀준다. 이미 보았다고 계속 마다했음에도.
이번에는 사진을 찍지 않고 그림 왼편에서, 그리고 신자석에서 온전히 한참동안 카라바조 회화를 감상했다.
조명이 꺼지고 남편이 성당 밖으로 나간 후 나도 성당을 나서려는데 그림을 향해 다시 조명이 켜지니,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이번엔 신자석에 앉아서 산타루치아를 기다리는 시라쿠사 주민이 되어 절절하게 중앙 제대를 응시했다.



성당 옆에는 팔각형으로 지어진 Sepolcro di Santa Lucia산타루치아 영묘가 있다.
바깥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면 아무도 없이 적막만이 흐르는 공간에 산타루치아의 빈 석묘가 설치되어 있는데,
카라바조 그림에서 묘사한 것처럼 산타루치아의 유해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시라쿠사 주민들의 희망이 느껴졌다.


산타루치아 알세폴크로성당을 떠날 시간, 고요한 외관을 둘러보면서 슬픈 소망의 실현을 기대해본다.
다음 행선지인 눈물의 성모대성당까지는 이곳으로부터 700m, 걷기에 멀지는 않은 거리인데 마침 가는 버스도 없다.


안팎이 모두 독특한 '눈물의 성모대성당'은 국제공모전을 통해 프랑스 건축가의 설계로 1994년에 완공되었다.
거대한 외관은 작은 성모상이 흘린 '눈물 한 방울'을 형상화한 것으로, 103m 높이라 도시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내부의 사방에 설치된 16개 채플을 제외한 성당 안의 지름은 71.4m라고 한다.



눈물의 성모대성당이 세워진 이유는 1953년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라 한다.
1953년 8월29일부터 9월1일까지, 시라쿠사의 어느 부부의 집 침대 머리맡에 있던 작은 석고 성모상에서 인간의 눈물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는데, 당시 의료진과 과학자들이 이 액체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눈물과 동일한 성분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교황청에 의해 성모의 기적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중앙 제대의 액자 속 성모상이 그 기적을 발현한 성모상인지는 모르겠다.


원래 오늘 가려했던 네아폴리스 고고학공원은 가지 않기로 이미 며칠 전 계획을 수정했다.
고대 유적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방치되듯 관리가 덜 된 그리스 유적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인터버스 터미널 부스를 찾았으나 다음날 티켓까지만 예매할 수 있다고 한다.
카타니아행 인터버스는 배차가 30분으로 짧은 편이니, 버스 티켓은 출발하는 날 바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육지로 온 김에, 남편이 고른 Deco마트-내가 픽한 데코마트는 다른-에 갔으나 휴가인지 폐업인지 문이 닫혀있다.
오늘 참, 이 육지는 가는 곳마다 거부권을 행사하니, 시간 잘 지키고 우릴 거부하지 않는 110번 버스로 집에나 가야겠다.


근처 빵집에서 구입한 빵들은 별맛 없이 평이했고, 어제 시장에서 산 블러드오렌지가 환상적으로 달고 맛있다.
적당히 쉬었고 1일권 버스표도 있으니 또 나가자고. 육지 가는 110번 버스-한 방향으로만 운행-는 오르티지아 해안을 드라이브한다.
도보로 보는 오르티지아 바다도 좋지만, 버스 안에서 풍광을 아우르면서 펼쳐지는 연속적인 바다는 그에 못지 않게 더 근사했다.


아주 크진 않지만 다행히 운영 중인 육지의 Deco마트
계란, 대구, 생선오징어튀김, 해산물믹스, 햄, 치즈 등 오르티지아의 작은 쿱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포함하여 잔뜩 장을 봐왔다.



오후 8시, 늦은 산책의 행선지는 단연 두오모 광장이다.
늘 보고 또 보고 자꾸 보아도 좋은 곳, 두오모는 사랑이고 추억이고 더없는 환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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