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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6 시칠리아

3월 5일 (목) : 시라쿠사의 푸른 밤

어제처럼 14~18도의 기온이 예보된 오늘.

구름 많은 아침, 세탁기를 부지런히 돌리고 오전 9시10분 오르티지아 산책을 시작한다.

 

아르키메데 광장, 디아나분수 앞 카페
광장의 디아나분수
카페

디아나 분수를 매일 지나쳐가기만 하다가 분수가 잘 보이는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았다.

카푸치노 2잔과 번역 앱을 비추지도 않고 메뉴판 맨위 디저트 2가지를 주문했는데 의외의 비주얼이다.

디아나 분수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카푸치노는 아주 좋았다.

 

아폴로 신전 (로마식 명칭)
아폴로 신전
신전 옆 선인장 화분들

늘 지나던 아폴로 신전 앞을, 무너진 그곳을 또 응시하며 지나간다.

삶의 흥망성쇠와 인생 무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신전 터는 늘상 쓸쓸하고 안쓰럽다.

 

시라쿠사 시장

오르티지아 동쪽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오래된 시장엘 들렀다.

여길 또 언제 다시 올까 싶어서, 시장 끝자락에 담긴 바다부터 마음에 다 담아내고 싶어서.

시장 끝자락에서부터 남쪽 해안을 따라가면서 마주한 이오니아해, 오르티지아 동쪽 바다는 한없이 넓고 길다.

 

시라쿠사 : 남쪽- 오르티지아섬 (출처: 구글맵)
오르티지아섬 동쪽 전망대
오르티지아섬 동쪽바다

느닷없이 이탈리아 화장품 로드샵 KIKO-쇼핑을 즐기지 않는 편-에 들렀고, 숙소로 돌아오니 정오다. 

식사 후 누워서 쉬는데 에어비앤비앱 속 카타니아 숙소 문제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내일부터 숙박인데.

카타니아 숙소의 호스트 아니, 운영 법인의 직원과 숙소 실무 담당자는 내 질문에 서로 상반되는 메시지를 쏟아놓고 있다.

앱에 명시된 건 비대면체크인인데, 법인 직원은 스마트락을 통한 셀프체크인이라 하고 숙소 담당자는 대면체크인이란다.

숙박세 인상분을 납부한 후 숙소 체크인에 대해 안내한다더니, 아무 연락이 없다가 아침에 던진 내 질문에 엇박자 답변만 하고 있는 것이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
트리나크리아 Trinacria

오후 4시, 온전히 혼자서 오르티지아를 즐길 차례다.

시라쿠사를 비롯한 시칠리아 여러 도시에는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독특한 문양 트리나크리아(Trinacria)를 많이 볼 수 있다.

트리나크리아는 원래 세 개의 다리 또는 세 개의 곶을 뜻하는데, 이 문양에서 얼굴은 벽사를 의미하는 메두사머리로 표현했고

머리에 달린 날개는 영원성을, 밀 이삭 장식은 풍요를 상징한다. 세 다리는 시칠리아 삼각형 지형과 끝에 위치한 세 곶을 상징한다.

트리나크리아는 시칠리아 자치 주의 공식 깃발에도 그려져 있으며 시칠리아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일부터 숙박할 카타니아 숙소는 연락이 뜸한 채 아직도 체크인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

오르티지아 골목길에 멈춰서서, 자기네들끼리도 손발 안 맞고 소통 안되는 법인 직원과 숙소 담당자에게, 메시지창으로 질문을

여러 번 던졌고 결국 대면체크인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렇게 시작 전부터 엉망진창인 여행 숙소는 정말 처음 겪는다.

다음날 숙소에 직접 가서 보니, 원래 이 숙소는 스마트락과 열쇠보관함으로 비대면 셀프체크인을 하는 숙소인데, 집 앞 스마트락이

완전히 부서져서 대면 체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대면체크인까지는 확인했으나 담당자는 만나는 장소와 방법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연이어 아파트에 있겠다-번역 문제는 아님-고만

답했다. 퇴근 시간-오후 5시쯤-이 지나자 담당자의 메시지가 멈췄기에, 접선 장소가 10층짜리 아파트 건물 앞인지 아니면

2층(우리식3층)에 있는 해당 아파트 앞인지, 해당 아파트 앞이라면 공동출입문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남겼다. 

 

두오모광장 : 공사 중인 시라쿠사 대성당과 남쪽 끝 정면의 산타루치아 알라바디아성당
두오모광장

귀찮은 카타니아 숙소 문제는 이 사랑스러운 광장을 본 순간, 모두 망각했나 보다.

긴 두오모 광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영화 속 '말레나'의 시선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두오모 광장은 걸어가면서 보아야 광장의 참맛과 참뜻을 새길 수 있다.

 

시칠리아는 알려진(?) 유럽의 여행지 중 아마 한국인 여행자가 가장 적은 곳이 아닐까 한다. 

시칠리아 여행 9일째, 한국인 여행자를 본 건 몬레알레가 유일했는데, 지금 두오모광장에서 한국어-커플-가 들리니 반갑고도 어색하다.

 

대성당 외관 측면
대성당 외관 측면
대성당 옆 미네르바광장

두오모광장 시라쿠사 대성당의 아름다운 바로크식 정면 파사드를 못 본 아쉬움을 어디에 비길까.

대성당 외관 측면을 둘러보니 내부에서처럼 고대 그리스 아테나 신전의 흔적이 도리아 기둥으로 잘 드러난다. 

이 신전에 감기던 시간은 얼마만큼이었을까. 상상하지 못하는 거대한 시간이 이 건축물을 휘돌고 있다.

 

트리나크리아 Trinacria (위)
시칠리아 전설 속 머리 화분
디저트

시칠리아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머리 형태를 본따 만든 화분이나 기념품을 흔히 볼 수 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또는 어느 도시-에서 한 무어인 청년이 화초를 돌보던 아름다운 시칠리아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북아프리카에 자식과 아내를 두고온 유부남이었고 여성은 청년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밤에 그의 목을 잘라

베란다에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청년 머리의 윗부분을 파내고 화초와 바질을 심었는데, 여성은 죄책감과 추억의 눈물을 자주 흘렸고

눈물을 머금은 바질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웃주민들은 세라믹으로 무어인의 머리 모양을 만들고 화초를 가꾸기 시작했으며, 여성이 살인죄로 참수되어 처형된 후

시칠리아 여인의 머리 모양도 만들어서 무어인의 머리 화분과 나란히 놓았다고 한다.

 

시칠리아 특산품인 세라믹-도자기-의 홍보를 위해 이렇듯 슬프고 섬뜩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대단한 스토리텔링이다,

우리도 이 스토리에 현혹되어 팔레르모 Capo시장에서 남자 화분 모양의 기념품을 구입했는데, 일반기념품점보다 시장이 훨씬 저렴했다. 

 

아레투사 전망대
아레투사샘

오후 6시가 넘은 시각.

남편과 함께 시라쿠사 오르티지아의 마지막 야경을 맞으러 나섰다.

그런데 아레투사 전망대에서였을까. 하나둘셋하는 한국어가 들리고, 활기찬 한국여인들의 웃음이 퍼진다. 

밤 마실의 마지막 코스는 멋스러운 두오모광장과 시라쿠사대성당 측면 옆 미네르바-로마신화 속 아테나-광장이다.

 

두오모광장
미네르바광장

오후 7시20분, 숙소와 같은 골목에 있는 피자리아에 피자 포장을 하러 간다.

처음엔 피자리아 안에서 먹으려 했으나 리뷰를 보고는 포장으로 변경했는데, 기다리다보니 리뷰처럼 음악 소리가 꽤 크다.

 

숙소가 있는 골목, 피자리아
디아볼라와 마르게리타

디아볼라 피자와 마르게리타 피자는 흠없이 맛있다.

그런데 중동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이란의 전쟁 상황이 심상치 않다. 

환승할 이스탄불에 대한 염려를 살짝이 내비치면서 시라쿠사의 마지막 밤이 아련히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