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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여행일기]/2026 시칠리아

3월 9일 (월) : 라구사의 Ibla

라구사 버스터미널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이른 오전 8시에 숙소를 나서는 날, 지하철로 2정거장 이동하여 기차역 앞에 도착했다.

사흘 전 구글맵에 터미널 위치를 표시해둔 걸 깜빡하고 잠시 헤맸으나 기차역 근처 인터버스터미널로 무사히 이동하여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라구사행 인터버스에 승차한다. 9시반, 카타니아공항에 이르자 20명쯤 되는 승객들이 버스에 올랐고

이후에도 버스는 두번 더 정차했는데, 번잡한 와중에 버스 안에서 큰소리로 영상 통화하는 여인이 있다.

라구사Ragusa 가는 길, 점차 공사 구간이 많아지고 정체는 피할 수 없다.

 

카타니아에서 남서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라구사까지, 인터버스로 2시간 걸린다고 하였으나 도로 정체 등의 이유로

실제로는 왕복 모두 2시간30분 소요되었다. 지도를 보면 라구사까지, 카타니아에서보다 시라쿠사에서 조금 더 가깝지만

그건 승용차 이동시 해당하는것이고 버스로 이동할 땐 카타니아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시라쿠사~라구사 이동이 더 멀다.

 

라구사의 수페리오레와 이블라 (출처 : 구글맵)
버스터미널에서 산조반니대성당 가는 길
세례자 산조반니 대성당
세례자 산조반니-성요한-대성당

오전 11시반, 잔뜩 흐린 라구사 버스터미널에 이르렀다.

터미널은 수페리오레Superiore에 있고 그곳에서부터 구시가인 이블라Ibla까지 걸어간 후, 버스를 타고 수페리오레로 돌아올 예정이다.

 

수페리오레 버스터미널에서 세례자 산조반니대성당-카테드랄-까지는 850m 떨어져있다.

시칠리아 성당들은 특이하게도 브레이크타임-시에스타인가-이 있어서 당일치기의 경우 원하는 성당을 못볼 수도 있다.

수페리오레의 산조반니대성당도 12시반부터 15시까지 문을 닫는데 오전에 방문했기에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나

이블라의 산조르조대성당-두오모-은 12시반에서 16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라 시간이 맞지 않아 내부 관람 불가다.

 

세례자 산조반니 대성당
세례실

1693년 시칠리아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진 라구사는 바로크 건축과 미술이 융성하던 18세기에 재건이 이루어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세례자 산조반니대성당은 외관과 내부 모두 화려하고 화사하며 입체적이고 역동적이다.

 

예수 탄생 채플
성체성사 채플
성요한의 참수 채플

산조반니대성당은 신랑은 물론 익랑과 측랑 채플들도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예수 탄생 채플의 제대엔 파티마 성모가 금빛으로 조각되어있고, 제대화인  목자들의 경배 프레임엔 스투코 장식이 멋스럽다. 

성체성사 채플, 성요한 참수 채플, 성요셉 채플 등 하나같이 다 곱고 화사하면서도 꿈틀대는 듯하다.

 

세례자 산조반니 대성당
세례자 산조반니 대성당

측면 출입구에서 돌아나와 산조반니대성당 정면 파사드로 향했다.

시칠리아 바로크 성당들은 수십 개 계단 위에 지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이 대성당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인 12시반, 여정에 들어온 레스토랑에 앉았다.

시칠리아 기준으로 이른 점심이라, 손님이 별로 없는 식당에서 남편은 치킨 가지요리를, 난 토마토소스파스타를 요청했다.

벽면마다 그림이 걸린 내부는 갤리리처럼 따스하고 편안했는데 주인장이 매우 친절했으며 음식은 무난히 맛있었다.

 

환상적인 정경의 시작

라구사 여행의 백미는 구도심인 이블라Ibla, 특히 이블라가 보이는 전망은 단연 압권이다.

수페리오레와 이블라를 연결하는 길목인 '계단의 성모마리아성당' 앞은 놀랄만큼 대단한 최고의 정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계단의 성모마리아 성당
계단의 성모마리아 성당에서 본 전망
계단의 성모마리아 성당에서 본 전망 : 오후 1시반

보아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풍경,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제대로 담을 수 없는 풍경에 다다랐다.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정경, 눈빛과 발걸음을 뗄 수 없는 정경, 푸른 날이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은 욕심일까.

형언할 수 없이 정말 진심으로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본 이블라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본 이블라 : 오후 1시50분

바로 근처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보이는 이블라는 성당 앞과는 약간 다른 조망이다.

각도와 방향이 달라서 눈에 보이는 풍경은 조금 다르지만, 믿을 수 없이 멋진 풍경인 것은 매한가지다.

 

연옥의 성스러운 영혼들 성당 (18세기)
지나온 수페리오레
지나온 수페리오레

지대 높은 수페리오레에서 이블라까지는 대체로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많다.

쭉 하산한 후 어느 지점부터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오르락내리락은 물론이고 내려가는 계단도 쉽지 않다.

버스-배차 긺-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서 한두 곳만 보는 방법도 있으나, 걸어서 가야만 볼 수 있는 전망과 정경을 제대로 보았으니

라구사 도보 여행은 잘한 선택이었다. 짧은 당일치기라 동네를 상세히 못본 것이 아쉬울 뿐.

 

멋스러운 돌담
오후 2시반

드디어 이블라의 중심 산조르조대성당으로 가는 길이니 최종 목표점에 근접한 셈.

이곳까지 오는 내내 우리처럼 길 따라 걷는 여행객은 의외로 몇 명 없었는데, 2월 비수기에 평일인 월요일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계단의 성모마리아성당'에서 이블라 전망만 보고 훅 돌아가는 건지 알 수는 없다.

 

산조르조 대성당 뒤편 계단 : 오후 2시40분
산조르조 대성당 : 수십 개의 계단과 철문

1775년에 완공된 이블라 산조르조대성당 외관은 수페리오레 산조반니대성당보다 더 화려하고 바로크스럽다.

정면 파사드에 장식된 두 개 또는 세 개의 기둥이 같은 선상 아닌 앞뒤-입체적-로 배치된 것은 바로크 건축부터다.

쌍기둥은 르네상스 건축에서 처음 등장했으나 그 기둥들을 입체적으로 살아움직이게 배치한 것은 바로크 건축인 것이다.

 

외관 조각상에도, 철문 맨위에도 대성당 이름처럼 산조르조 장식이 있다.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로 순교한 산조르조-성조지,성게오르기우스-는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병사였다.

주로 칼이나 창, 방패를 들고 용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괴수를 퇴치하고 공주를 구하는 영웅담이 첨가되면서

말을 탄 채 칼이나 창으로 악룡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회화에서는 공주나 양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산조르조 대성당
철문의 산조르조(성조지,성게오르기우스)
산조르조 대성당

산조르조대성당은 10시부터 12시반까지, 16시부터 18시반까지만 문을 열기에 처음부터 대성당 입장은 포기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머물지 않는 한, 브레이크타임 있는 성당들을 다 둘러보는 건 당일치기 여행객에게 무리다.

 

붐비지 않는 산조르조대성당 앞 광장과 한적한 이블레오정원의 분위기가 참 좋다.

이블라에 좀 더 머물면 좋을텐데 우린 오후 3시10분, 이블레오정원 앞에서 라구사 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수페리오레부터 이블라까지 걸어내려오면서 전망을 즐기고, 이후 버스를 타고 수페리오레 터미널로 이동하는 방법은 AI가 추천했다.

 

이블레오 정원 : 오후 3시
이블레오 정원

오전 11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3시간쯤 라구사 계단을 걸었나 보다.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그건 곧 회복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흐린 날씨와 부족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 정경을 보여준 라구사, 정취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라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블레오 정원 맞은편
산조르조의 고대 문 (15세기)

 

40여명쯤 되는 한국 패키지팀을 뒤로 한 채 이블레오 정원 앞에 정류장에서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라구사 버스터미널 가는 15분 동안, 아까 걸으면서 보고 느낀 풍경들이 눈에 다시 담을 새도 없이 빠르게 스친다. 

 

오후 4시에 라구사를 출발한 인터버스는 카타니아까지 또 2시간반이나 걸렸다.

아쉽기만 한 당일치기, 숙박하지 않는 여행-그래도 1~2박하는건 싫음-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듯하다.

온몸이 고단하고 다리와 무릎이 아픈 날, 얼른 곧장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