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 [여행일기]/2026 시칠리아

3월 12일 (목) : 서울 가는 하늘

새벽 4시, 호텔 객실 홑창 사이로 항공기 비행 소리가 여과 없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어차피 깬 잠, 우연히 다운로드한 이스탄불 대중교통앱에선 오호, H-6버스 노선과 운행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다시 눈을 붙였다가 오전 7시반, H-6버스 운행 시각이 활성화되어있는지 확인했으니 이 앱 따라 이따가 공항으로 가면 된다.

 

아침식사 : 카푸치노 맛있음
아침식사

이스탄불 공항 근처 동네라 할 일도 없고 오후 공항 이동 외엔 일정도 없다.

느긋이 오전 8시반, 식사하러 0층 조식당으로 가니, 같은 처지의 꽤 많은 숙박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보름 전에 묵은 탁심 호텔보다는 부족하지만 비수기 호텔 요금을 고려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다. 

 

빵집
시미트
버스정류장 맞은편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오븐에서 막 나온 빵집 시미트를 구입했는데 시미트는 역시 빵집에서 만들어야 더 맛있다.

오랜 휴식 후 오전 11시40분에 체크아웃을 했고, 호텔 로비에서 교통앱을 보며 기다리다가 정오 무렵 정류장으로 향했다.

12시10분 호텔 앞 정류장에 도착한 H-6버스는 20분만에 우리를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주었다.

 

이스탄불공항
패스트트랙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타 공항에선 거의 볼 수 없는 1차 검색대가 있다.

항공기 탑승을 하든 안하든 공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데,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상당히 귀찮다.

 

아시아나항공 체크인카운터는 출발 3시간전인 오후 2시가 넘어야 오픈하니 K카운터 앞에서 편히 멍때리고 있으면 된다.

한국인들은 오픈 1시간 전부터 캐리어로 줄을 세우고 있고, 50개가 넘는 캐리어들은 주인 대신 묵묵히 대기줄에 서 있다.

 

오후 2시20분에 오픈한 아시아나카운터 5개중 이코노미는 3개이고 스얼골드,다이아몬드,다플은 1개, 비즈니스는 겨우 1개다.

비즈니스 체크인카운터는 생각보다 줄이 길었고 카운터 남자직원은 친절했으나 손이 느렸기에 대기와 수속에 20분 이상 걸렸다.

패스트트랙 덕분에 출국 보안검사는 5분도 안 걸렸으니 그나마 고단함이 줄었다.

 

터키항공비즈니스라운지
터키항공비즈니스라운지

터키항공 비즈니스라운지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으며 한국어도 많이 들렸다.

이곳에는 글로벌 요리는 물론 피데, 쾨프테, 괴즐레메, 만티, 바클라바, 시미트 등 터키 전통 음식과 디저트가 준비되어있는데,

나는 맛있는 피데와 바클라바 및 아이란과 직접 만들어주는 카페라테를 즐겼으며 남편이 가져온 쾨프테도 맛있게 먹었다.

특히 어제 카타니아 출발 이스탄불행 항공기 대기줄에서 우리 앞에 서 있던 호주 커플-둘 다 키가 매우 커서 기억-을,

우리 자리 근처에서 목격한 것은 새삼 세상 좁음과 신기함을, 그러니 매사 조심하고 신중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터키항공 비즈니스

오후 4시반에 라운지를 나와 딱 탑승시각인 15분후 게이트에 도착했으나 이유 없이 탑승이 늦어지고 있다.

오후 5시가 훨씬 넘어서야 탑승이 시작되었으나 인천공항에 이어 이것도 탑승교가 하나-경비 절감인 듯-다.

입장 라인은 달랐으나 탑승이 늦어져서인지 비즈니스클래스와 이코노미클래스 승객들을 동시에 입장시키고 있고

탑승교가 하나라, 빨리 걷는 십수명의 승객들은 천천히 걷는 나를 앞지르고 있었다.

 

비즈 이코 승객이 뒤섞여, 항공기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입구에 대기하는 승객들이 너무 많았다.

항공 클래스는 탑승 좌석과 탑승 중의 서비스 뿐만 아니라 항공기 탑승 전후의 모든 서비스를 포함한다. 비즈 탑승객이라면

카운터 별도 운영, 위탁수화물,  패스트트랙, 공항 라운지, 우선 탑승 등 및 우선 하기, 짐 우선 수취 등까지 포함되는 것인데

이는 고가의 탑승권을 구입한 탑승객의 시간 절약, 편의성 등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오늘처럼 광동체에서 모든 클래스의 승객을 같이 입장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즈 승객과 착석이 오래 걸리는 이코 승객을

동시에 들여보내지 말고, 20명 남짓한 비즈 승객을 3분만 먼저 입장시켰으면 승객들의 전체 탑승 시간이 줄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이제 사라질 아시아나, 출입국 두 번의 항공 운영이 더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었다.

 

아시아나항공 B777-200er : 3E,3F좌석

우리는 인천-이스탄불 출입국 왕복 모두 중앙에 붙어있는 3E,3F 좌석에 앉았다.

기체가 낡은 B777-200인 것조차 인천에서 출발할 때와 같은데, 그때와는 달리 두어 곳 빈 자리가 보인다.

 

첫번째 기내식 : 한식 전식
첫번째 기내식 : 한식 주요리
첫번째 기내식 : 양식 주요리

오후 6시 20분, 첫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나는 비빔반상, 남편은 농어요리를 요청했는데, 별다른 기록이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평범했나 보다.

 

첫번째 기내식 : 한식 후식1
첫번째 기내식 : 한식 후식2
첫번째 기내식 : 양식 후식2

식사하면서 그리고 식사 후까지 본 영화는 한국영화 '소울메이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주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렸으나 끝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그건 동기와 계기였다.

 

이스탄불 기준 오후 9시, 자려고 누웠으나 앞좌석 60대 남자-카운터에서 우리 바로 앞에 체크인한-의 코골이가 심상치 않다.

앞 좌석은 두 자리가 서로 떨어져 복도로 붙은 자리이고, 아시아나 비즈는 누우면 소리가 상체로 모이는 구조라 앉아있을 때보다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코골이 소리는 자리에 모여 극대화되었고 가장 가까운 내 자리의 상체 쪽으로 넘어와 폭음이 되었다.

23년 동안 수십 번 유럽을 오가고 비즈니스석을 10년 탔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영화 '소울메이트'

 

결국 2시간쯤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와인 좀 마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소리의 크기를 테스트해 본다.

그러더니 만류하는 내 의사에 반하여, 라면을 가져온 승무원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빈 자리로 옮겨주겠다고 하였고,

기골 장대한 코콜이 아저씨는 세상 모르고 누워서 비행기 날아가라 코골며 자고 있다.

이미 난 잠이 완벽하게 깬 상황, 빈 자리를 마다하고 헤드셋을 낀 채 주문한 라면을 먹고 나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여행 마무리를 망친 코골이에게 나중에 상황을 말할까 했으나 뭐 그렇게까지, 알아도 그게 고쳐지진 않으니까.

다만, 한잠도 못자고 억울했던 나는 테이블을 강하게 접으면서 쿵 소리를 냈고 그 옆을 한 번 치기-소심한 복수-도 했다. 

이 일이 짜증스럽긴 했으나 무겁지 않은 에피소드로 남을 거라 생각하면서. 적어도 다음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상황과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소리-와인 서너잔 마시더만-를 해대며 버럭 화를 낸다.

이제는, 여행의 마무리를 방해한 코골이 할배보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바보 같은 인간에게 더 분노가 치밀었다.

공용 공간에서 큰소리로 싸울 수 없으니 몇 마디 오가다가 눈길도 단절하고 둘 다 입도 닫아버렸다.

그 상황을 상기하려니, 그때 감정이 북받쳐올라 언짢고 화나며 소름이 돋고 몸서리가 쳐진다.

 

두번째 기내식 : 양식 전식
두번째 기내식 : 양식 주요리

3월 13일 금요일.

오전 7시, 두번째 기내식 버섯크레페와 과일이 제공되었고 오전 9시반, 인천공항에 정시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에 승차했으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귀가해서 짐을 풀면서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18일 여행하는 동안 전에 없이, 3번이나 싸웠다.

2번은 별탈없이 지나갔으나 마지막은 달랐다. 자기만의 언어가 나오면 명분은 무너지고 방책은 사라지니까.

 

고단하고 고되고 고달픈 존재가 되어가는 건 누굴까.

인간은 성악설에 부합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건 진리다.

체득하고 못 체득하고, 깨닫고 못 깨닫고, 공감하고 못 공감하고에 따라 옅거나 짙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