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에서의 첫 아침, 새벽 4시반 기상이 당연한 듯 자연스럽다.
오늘 에든버러 일출 시각은 오전 4시41분이고 일몰은 오후 9시39분, 낮이 아주 길어서 여행하기 최적이다.
미리 예약한 에든버러캐슬만 예외고 날씨나 상황에 여정을 맞추기로 했으니 오늘은 에든버러 올드타운부터 둘러본다.


오전 7시반, 김치찜을 메인 삼은 아침식사를 한 후 9시40분, 숙소 복도에서 에든버러캐슬을 조망하며 밖으로 향했다.
숙소 바로 옆 그라스마켓 초입에서도 보이는, 언덕 바위산 위 높이 솟은 에든버러캐슬의 위용와 기세가 참으로 대단하다.


구름이 오락가락하기는 해도 다행히 맑은 날.
예쁜 그라스마켓 끝은 경사진 길을 따라 빅토리아스트릿으로 이어진다.
곡선 도로 모양대로 건물들도 곡선으로 지어져서 그 정경이 압도적으로 정중하고 멋스럽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빅토리아 스트릿의 정취, 너무 멋지고 아주 마음에 든다.
비탈을 따라가면 만나는 계단, 그곳을 오르면 빅토리아스트릿이 한눈에 들어오는 빅토리아테라스다.
이 매력적인 빅토리아테라스는 같은 고도에 자리한, 다른 아름다운 거리들로 연결된다.



큰길에서 골목을 따라들어가면 등장하는 Makars Court, 여기 분위기 정말 멋스럽다.
이곳엔 작가박물관이 있는데, 입장하진 않았다. Makar는 스코틀랜드어로 작가라는 뜻이라 한다.
이어지는 로열마일Royal Mile은 에든버러캐슬부터 홀리루드궁전까지의 고풍스러운 거리로, 에든버러에서 인파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아 동네, 사암으로 지은 건축물이 자아내는 멋과 분위기가 놀랍도록 대단하다.
이 로열마일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은 단연 St.Giles' Cathedral이고 그 앞 광장에는 메르카트 크로스Mercat Cross가 있다.
메르카트 크로스는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터로, 왕실이나 의회의 중요한 공적 발표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St.Giles' Cathedral에는 특별할 것 없는 성당 치고는 꽤 비싼 입장료가 정해져 있으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는데,
직원의 안내에 의하면 어떤 화폐든 얼마든 도네이션 형태로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지불하면 대성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린 입구에서 입장료 상자에 유로를 넣고, 예정에 없던 세인트자일스대성당으로 입장했다.
로마카톨릭교회일 때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 대성당은 12세기에 건립되었고 고딕양식으로 지었지만 천장이 높지는 않다.
외관과 구조가 독특했고, 내부엔 국기와 문장기 장식이 넘쳐났으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Close, 곳곳에 수없이 많은 클로스를 걸어 지나면 뜻하지 않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클로스 끝에 크지 않은 마당이나 광장이 등장하기도 하고 오래된 상점이나 예쁜 카페가 나타나기도 했다.
Mary King's Close는 건물 지하에 만든 골목길-스토리 있는-로, 가이드투어만 가능하다고 한다.



빅토리아스트릿에도 사람이 많았으나 로열마일을 오가는 인파는 비교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특히 거리마다 광장마다 대기 중이거나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단체투어객들이, 로열마일이 터져나갈 듯 많았다.



Kirk 커크는 스코틀랜드어로 교회이고, Tron Kirk Market는 옛 교회에 만든 아담한 마켓이다.
이곳에선 주로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강아지용품 앞에 서니 막내녀석이 떠올라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후 1시반, 숙소로 들어가 떡계란라면-유럽여행 최고음식-을 먹은 후 알차게 쉬다 말고 오후 3시10분, 다시 바깥이다.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폐관시각을 18시로 알고 있었는데 뒤늦게 확인하니 17시라, 예정보다 1시간 먼저 후다닥 뛰쳐나가야 했던 것.
이상하리만큼 보안검색 전혀 없는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온 이유는 복제양 돌리를 보기 위해서다.



1996년 7월에 태어난 돌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양으로, 성체 세포에서 복제된 최초의 포유류다.
2003년 2월에 사망한 후 박제되어 전시 중인데, 줄기세포 및 난치병 연구를 촉진시키기도 했으나 생명 윤리에 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돌리는 말년에 중증 관절염과 폐질환을 앓았고 일반적인 양의 수명의 절반 정도인 6년 7개월만에 결국 연구진에 의해 안락사되었는데,
유전자가 제공된 원본 양의 나이-6살-가 돌리에게 유전되어 조기 노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돌리와 동일한 세포로 태어난 다른 복제양 4자매는 모두 9살 이상 건강하게 살았기에 복제기술의 결함은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 막내가 떠난 후 슬픔과 그리움에 사무친 어느 날, 홀연 떠오른 건 복제양 돌리였다.
막내와 쌍둥이처럼 똑같은 녀석이 있다면 막내는 처음부터 아예 떠나지 않고 곁에 쭉 함께 했던 거니까.
윤리적으로는 말도 안되지만 이런 슬픈 상상만으로도 위안이 됐던 때였다.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메리 여왕은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군주다.
한 전시실엔 스코틀랜트 여왕 메리 초상화(1558)와 메리 여왕이 지인인 메리 세튼에게 주었다는 목걸이(17세기)-사진 왼쪽-
그리고 메리 여왕이 소유했거나 메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보석들-사진 오른쪽-이 전시되어 있다.
다른 전시실에 있는 영국 왕실 문장 새겨진 깃발-유니콘과 사자-은 에든버러 공식 연회장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루이스 섬에 묻혀있던 대규모 보물 중 일부인 체스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체스말은 1200년경, 노르웨이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루이스섬은 노르웨이-게일 왕국의 일부였다고 한다.
체스말은 대부분 바다코끼리 상아로 제작되었고 10개 중 둘은 향유고래 이빨로 제작되었다.



뷰가 좋다는 평에 따라 오른 국립박물관 7층 옥상 테라스, 그러나 모퉁이마다 화단들이 시야에 걸려 조망은 기대 이하다.
국립박물관을 훑은 후 에든버러대학 앞을 지나 다다른 곳은 아까 스쳐지났던 강아지 보비-이 동네 발음대로- 동상이다.



이 어여쁜 보비는 에든버러경찰 야간경비원인 존 그레이가 키우던 스카이테리어로, 둘은 2년 동안 늘 함께 지냈으나
1858년 2월, 그레이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레이프라이어스 관리인들은 그레이의 무덤을 지키던 보비를 쫓아냈으나 결국 쉼터를 지어주고 먹이도 챙겨주었으며,
이후엔 시의회에서 보비를 보살펴주었다. 그레이보다 14년을 더 산 보비는 주인 무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보비는 궂은 날씨에도 무덤을 떠나지 않았고, 1872년 세상을 떠난 보비는 그레이프라이어스 수도사묘지 입구 안쪽 근처에 묻혔다.
한편 Greyfriars 묘지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작가가 이곳 묘비명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곳인데,
영화든 책이든 해리포터-집에 아들용 DVD는 있음-를 접한 적도 없고 흥미를 갖고 있지도 않기에 묘지를 둘러보지는 않았다.
다만 강아지 보비 묘지를 못 봐서 아쉽다. 머릿속 여정엔 잘 넣어두었으나 깜빡 잊고 보러가지 않았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테스코에서 돌아오다 마주한 거리마다 인파가 넘쳐난다.
에든버러가 이렇게 인기 많은 여행지인 걸 우리만 몰랐던 걸까, 이곳 시민들이 몽땅 구시가로 모여든 걸까.
햇살 가득한 서향 숙소에 들어오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여행 오느라 결말을 못본 드라마 '허수아비' 중 11회를 보다말고 약속이나 한 듯 둘이 같이 졸고 있다.
시차를 버텨내기 위해 딱 1시간만 자기로 했으나 난 2시간 넘게 자버렸고 남편은 더 깊이 더 오래 잠에 취했다.
오후 9시반, 라자냐와 코울슬로 그리고 메쉬드포테이토로 저녁을 살뜰히 챙겨먹은 후 '허수아비' 11회를 마저 시청했다.
떠난 생명체는 쓸쓸하고, 지켜내는 시간은 아프고 서글프다.
돌리도, 보비도, '허수아비' 속 인물들도 기다리고 견디어낸 세월은 그저 참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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