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5시에 깨어 휴대폰 사진 정리를 하던 중 6시10분-한국시각 14시10분-, 아시아나항공에서 카톡이 날아왔다.
올 가을에 탑승할 항공권 변경 관련 내용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임의로 다음날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우린 이스탄불에 도착한 후 다음날 바로 다른 도시로 항공-분리발권,예약완료,환불불가- 이동하는 일정이라,
임의 변경된 항공편으로는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약 당시 출도착 항공권이 저렴했던 이스탄불은 여행의 경유지일 뿐이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수십번 유럽을 오갔으나 지연 출발과 연착만 겪어보았을 뿐 결항을 겪은 것은 단 한 번.
2018년 선배들과의 여행에서, 귀국하는 날 체크인까지 마친 후 면세구역에 들어간 시각에 발생한 느닷없는 결항이었고
바로 대체 항공을 제공받았다. 물론 공항직원의 실수로 하루 늦게 귀국-보상 받음-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족 여행이나 남편과의 여행에서 여행 시작 전부터 문제-여행 가능 여부가 걸린-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선 아시아나항공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원래 항공편이 안되면 전날이나 며칠 전에라도 이스탄불에 가야 한다고 하니
임의 변경된 항공편에는 우리 항공 좌석이 확보되어있으나 전 주의 다른 운항일엔 비즈니스석이 모두 만석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시아나 공홈에서 항공권을 구입한 게 아니니 구입처로 문의해야 한다는 전언까지 받았다. 그건 그렇지, 참.
예상치 못한 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었으나, 에든버러 여행에서 유일하게 예약 일정이 있는 날이니 시간을 맞춰야 했다.
오전 9시15분, 숙소 밖으로 나섰으나 OZ사태로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깜빡 잊은 약을 복용하기 위해 다시 숙소로 가야 했다.



오늘 오전 일정은 숙소 복도에서 늘 올려다보던 에든버러캐슬.
성(城)은 언덕 바위산 위에 있으니 그 앞까지 가기 위해선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에든버러캐슬 입구에서 긴 대열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모두 예약자들이고, 이날 입장 티켓은 모두 매진이었다.
에든버러캐슬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중 하나다.
요새이자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17세기 이후엔 군사들의 주둔지나 감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에든버러캐슬로 들어선 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4파운드-가 있는 게 반가웠는지 줄까지 서서 1개를 받아왔다.
여행을 다니면서 거의 한번도 안하던 일을 즉흥적으로 느닷없이 한 셈인데, 미어터지는 인파 속에서 오디오가이드를 손에 든 채
너무나 장황하고 긴 설명을 듣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이드 설명을 듣는 동안은 사진 촬영을 전혀 할 수 없어서
참으로 불편했기에, 결론적으로 오디오가이드는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캐슬 입구 안쪽 아가일 포대 앞에서 굳이 혼자 대기줄에 합류하여 전망대에 올랐으나 서쪽 성벽으로 가보니 그곳 조망이 더 좋다.
성벽 쪽엔 과거에 사용했던 The one o'clock gun과 더 오래된 타임건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에든버러 타임건은 에든버러 시민들과
항구에 정박한 선원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Lang-스코틀랜드어로 '긴'- Stairs는 수 세기동안 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통로였고 70개의 가파른 계단이 있다.
오른편에 완만한 경삿길도 있다고 하는데 우린 기꺼이 돌로 된 벽면을 바라보면서 계단을 힘차게 걸어올라갔다.


긴 계단 끝에서 만나는 아가일타워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고 근처엔 군견 묘지가 묘비와 함께 조성되어있다.
이른 아침엔 맑았던 하늘이 잿빛 구름에 덮여 점차 흐려지고 있다.



에든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성마가렛 채플 앞, 단체나 개인 할 것 없이 관람객이 너무너무 많다.
1100년대초에 건립한 이 채플은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왕실 성인-성마가렛-에게 헌정된, 매우 작은 예배당이다.
채플 근처에 전시된 Mons Meg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성 대포로, 15세기에 제작되었다.
당대 최고의 대량 살상 무기인 몬스멕은 6톤의 몸체를 활용하여 150kg 돌덩이를 3.2km까지 발사했다고 한다.
흐리디흐린 날, 조금 전부터는 세찬 바람까지 불고 있다.



반달 포대 Half Moon Battery는 성으로 향하는 적들에게 포격을 퍼붓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멋스러운 전망대다.
포대 근처 34m 깊이의 우물은 물 14만L를 저장할 수 있는데, 물은 샘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빗물을 모아서 썼다고 하며
14세기 후반 완공된 David's타워는 16세기 후반에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지하 공간만 남아있다.



크라운광장을 둘러싸고 전쟁기념관과 왕궁, 그레이트홀이 자리해 있다.
왕궁 앞에 긴 대기줄이 있고 그 줄에 합류하여 입장을 기다리면서, 남편이 직원에게 '운명의 돌'에 대해 물어보니 다른 데로 옮겼다고 한다.
왕궁 첫 전시실엔 왕의 대관식에 사용하던 호화로운 스코틀랜드 왕관이 화려한 검과 함께 전시되어있으나 촬영불가다.



왕궁 건물과 연결된 그레이트홀은 16세기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연회를 개최하는 성대한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병영과 군 병원으로 쓰이다가 1887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크라운광장 쪽을 드나들 수 있는 푸그 문 Foog's Gate은 153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주둔했던 수비대에, 적극적인 임무를 할 수 없었던 노령 또는 장애 군인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왕궁으로 입장하기 전에 대충 관람한 전쟁기념관에 이어 드래곤가드연대박물관과 스코틀랜드연대박물관도 후딱 둘러본다.
이곳이 요새에, 과거 군대 주둔지라서 전쟁과 군인과 군대와 관련된 건축물, 전시물, 스토리텔링이 많다.



일요일을 제외한 오후 1시, 시민들과 선원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타임건-The one o'clock gun-이 여전히 발포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타임건 근처로 일찌감치 몰려들어 자리잡고 있고 우린 멀리 뒤쪽에 있었는데, 1시 정각이 되자 들려오는 '팡'하는 소리.
허, 수줍게 울리는 단 1방의 타임건이라니. 뮌헨시청사나 프라하천문시계에서 매시 정각에 돌아가는 인형보다 더 황당하고 허무하여
멍하니 서있는데, 허탈한 웃음이 사방에 퍼지더니 '이게 다야'하는 한국어가 들린다.
에든버러캐슬은 에든버러에서 여행객이 가장,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치이며 관람한 곳이다.
단체 관람객들, 특히 백인 실버 단체 관람객이 정말 많았고 중국인 단체 여행객도 매우 많았다.
에든버러캐슬은 요새지만 왕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라, 흩어져있는 건물마다 규모가 크지 않고 내부엔 볼거리들이 많지 않았으며,
거의 유일한 보물인 '왕관과 검'은 촬영마저 불가했다. 그리하여 이곳은 굳이 입장하지 않고 멀리서 외관만 봐도 충분할 듯하다.



오후 1시20분, 빅토리아스트릿에 자리한 Bertie's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예약했기에 금세 자리를 안내 받았고, 내부는 매우 넓었으며 Pub만큼은 아니었으나 내부소음이 상당히 컸다.
우린 맥주와 스카치에그 2개, 피시앤칩스 레귤러 1개를 주문했고, 예쁘고 친절한 서버가 개인 접시를 세팅해 주었다.
음식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맥주도, 음식도 다 무난히 맛있었으며 특히 서버들이 정말 친절했다.
레스토랑을 나와서보니 아래층 입구에 테이크아웃 손님도 많았는데, 포장은 20%이상 저렴하니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5월말의 오후,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연회색 구름에 덮여있다.
점심식사 후 걸어내려오는 빅토리아스트릿, 늘상 그랬듯 여기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숙소에서 사진을 정리하다 오후 4시, 또 낮잠에 빠졌고 또 3시간 넘게 자버렸으니 이로써 3일째 반복이다.
오후 8시반, 한식 된장찌개로 정신을 챙기고 주말 여정을 논의했다.
내일은 어제 오늘 같지 않기를,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기대어 절실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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