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 서너시경 두 시간쯤 깨어있었고, 기상한 오전 8시에도 여전히 약한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 10시반, 딱 정오까지 4시간만 영업하는 Churreria San Pablo로 간다.
Churros Y Patatas간판이 걸린 가게엔 잘 보이는 주방 벽에 Churreria San Pablo desde 1960란 타일이 붙어있다.
우리는 세로줄 문양이 있는 가는 것과 쿠쿠추로와 같은 굵은 추로스 두 가지를 믹스해서 주문하고 핫초코도 요청했다.
따뜻하게 내준 추로스, 먹고 갈 수 있냐 물었더니 벽면에 미니선반을 설치해 준다. 안쪽에 테이블 공간이 있다고 하던데 아닌가.
암튼 날씬한 줄무늬 추로스는 바삭했고 굵은 추로스는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추로스 가게 바로 옆, 바로 산타 마리아막달레나 성당이 있다.
이곳은 세비야 아니 스페인에서 흔치 않은, 성당 내부 전체를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성당이라고 한다.



조명은 있으나 날씨 탓인지 상당히 어두운 산타 마리아막달레나 성당에 들어섰다.
스페인 다른 성당들처럼 중앙제대와 채플은 금빛으로 장식되어있고 여기저기 조형물-조각아님.인형임-이 있다.
그러나 타 성당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점은 벽면과 기둥, 천장에 프레스코화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 성당처럼.



중앙제대 좌우 벽면엔 세상 바쁜 성미카엘 대천사가 '최후의 심판' 때 영혼들의 죄를 측정하기 위해 저울을 들고 있고,
측랑엔 '레판토 해전'을 묘사한 회화가 걸려있다. 레판토 해전은 1571년, 그리스 레판토 근해에서 신성동맹-기독교동맹-과
오스만제국이 맞붙은 전투로, 오스만의 유럽 진출을 저지한 해전이다. 지금도 이 전투를 소재로 한 회화가 많이 남아있다.
산타 마리아막달레나 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12사도 프레스코화다.
신랑과 측랑을 나누는 기둥들 중 양쪽 6개 기둥의 앞뒷면에 12사도를 하나하나 도상과 함께 그려놓았다.
붉은 옷을 입은 잘 생긴 성요한-위쪽사진. 장수함-과 천국의 열쇠를 높이 든 성베드로-위쪽- 그리고 자신의 살가죽과 작은 칼을 든
성바르톨로메오, 자신이 순교한 X자 십자가를 잡고 있는 성안드레아, 조개껍데기를 붙인 채 지팡이와 자루를 쥐고 있는 성야고보
-산티아고- 등 모든 사도들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신자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오가는 성당 안, 이제 이곳을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비가 그치질 않는다.
바는 약해지는 듯하다가 폭우가 되기를 여러 번 반복했고, 뜻하지 않게 성당에 갇혀 버린 형국이 되었다.
성당에 머문 지 1시간반이 넘어가고 빗발이 약해진 틈을 타 성당을 벗어났으나, 다시 거세지는 빗줄기 때문에 가던 길을
두 번이나 멈추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산이 있어도 신발과 바지가 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 중 늘 날씨가 좋을 수는 없으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드는 폭우는 최악이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라면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누워 휴식하며 비가 그치기를 바랐다.
거짓말처럼 비가 완전히 그쳐버린 오후 5시 20분, 이제 세비야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으로 간다.
매주 수요일은 세비야 투우장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오늘은 오후 5시반-매월 입장시각 다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우리가 투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그다지 길지 않은 대기줄에 합류했으나 그 줄은 입장줄이 아니고 입장 티켓을 나눠주는 줄이었다.
티켓을 배부하는 창구 직원은 국적과 인원 수를 묻고는 티켓을 건네주었는데, 티켓에 인쇄된 입장시각은 오후 7시반이다.



투우장 입장까지 남은 1시간 동안은 과달키비르 운하에서 멋스러운 야경을 즐겨주면 된다.
'황금의 탑'이라 명명된 유래 여럿 중 진실은, 운하에 비치는 탑의 빛깔이 황금색이라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엔 티켓 시각보다 이른 7시15분에 입장했는데, 사실 우리는 투우장에 처음 온 것이 아니다.
2008년 6월, 식구 셋이 마드리드에서 투우를 관람했었고, 인간의 졸렬함과 잔인성에 화가 났으며 동물 학대에 마음이 아팠다.
https://stelala.tistory.com/15478234


야구장처럼 둥글게 이어지는 투우장 복도엔 여러 전시실이 있고 그곳엔 투우 홍보 포스터, 투우 그림, 투우사들의 옷과 장비,
박제된 소, 박제된 소의 머리, 투우장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투우를 찬성하지 않는 생각과는 별개로, 오래된 옛 투우 포스터들이 참 예뻤다.



복도로부터 이어진 투우장 관중석에 불빛이 쏟아지고 있다.
관중석 중 일부만 개방했으나 투우장 전체를 조망하기엔 모자람이 없고, 밤이라 정확하게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낮에 보았던 마드리드 투우장이 규모가 더 크고 조형적으로도 더 아름다웠다.


투우장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갑자기 나타 가게가 나타났다.
남편 의견에 따라 나타를 구입했는데, 맛이 없진 않았으나 리스본의 맛에는 못 미친다.



이어서, 이번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튀김 가게다.
해산물튀김 맛집을 검색했을 때 고려했던 곳은 아니었으나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문 후, 종이 고깔에 담아 종이접시(?)에 쏟아준 깔라마리튀김을 먼저 먹고 있으니 이내 대구튀김도 쏟아부어주었다.


내내 시원치 않던 왼쪽 발목이 오늘은 아무렇지 않다.
며칠 전부터 발 가장자리가 아프다던 남편이 오늘은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한다.
세월이 고지하는 육신의 형편.
뭐 어떠리, 오늘처럼 그저 즐길 뿐.
시간은 어차피 우리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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