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와는 달리 맑은 니스의 아침이다.
어젯밤 늦게 시작된 여행, 빈 공항에서 기계로 체크인을 하고 기내용 캐리어를 둘 공간이 없는 항공기-오스트리아
국적기임에도-를 타고 니스에 도착했다. 어제는 아침부터 비자 연장 신청과 병원 진료로 완전 정신없는 하루였기에,
기내에선 앞 좌석 아기의 계속되는 울음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단잠에 빠져버렸다.
공항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인 숙소까지의 택시요금은 무려 35유로.
니스공항 홈피에 안내된 요금과는 달리 미터기를 작동시키지 않은 채 기사 마음대로 책정한 요금이다.
여기도 이탈리아처럼 바가지 천국인가.
역시나 부엌 공간이 있는 호텔이라 아침 일찍 식사를 챙겼다.
여행할 땐 늘 그렇듯 텔레비전 만화 영화에 눈길을 주고 있는 작은밥돌.
내가 "말(프랑스어)이 참 이쁘지?"했더니 "저게 무슨 말이야, 토끼죠." 완전 동문서답, 아침부터 까르르 넘어간다.
거리 구경을 하며 20분을 천천히 걸어 니스빌 역에 도착했다.
빈으로 돌아갈 때 타게 될 공항버스 승차 위치를 확인한 후, 바로 샤갈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니스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선택한 샤갈 미술관까지의 도보 길이 만만치 않다.
예상보다 먼 거리에, 언덕 길까지. 지치기 시작할 무렵 출현해준 샤갈이 고맙기만 하다.
'색채의 마술사' 라 불리는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로, 유화와 판화,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무대 장식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했다. 환상감과 신비성을 융화시켜 동화의 세계나 고향 하늘, 하늘을 나는
연인을 주제 삼아 풍부한 색감을 드러낸 작품이 많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는 '천지창조' '낙원' '솔로몬의 노래' 등 성서와 관련된 그림을 비롯해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창(窓)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샤갈을 좋아하는 작은밥돌의 눈이 반짝거린다.
학교에서 배운 상식을 동원해서 큰밥돌에게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며 샤갈을 즐긴다.
작품들을 관람하는 도중, 일본 단체 여행객들이 전시실로 모여들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일본 여행객들은 많은 인원이라도 그다지 소란스럽지 않다.
샤갈 미술관의 일본 여행객들도 차분히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관람을 마치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샵에 들러 샤갈 그림이 담긴 엽서를 고르고 있는데, 샵 직원이 일본여행객들에게
일본어까지 구사하며 친절히 안내를 해준다. 일본어로 된 샤갈 작품 해설 책자가 있음도 물론이다. 부러울 따름.
버스를 타고 니스 구시가로 향한다.
아침과는 달리 어느 새 잔뜩 흐린 하늘. 마세나 광장 근처를 서성이다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시가와 한길을 사이에 두고 펼쳐져 있는 니스 바다.
10월말, 게다가 우중충한 날씨라 인적드문 바다를 떠올렸었는데,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늘은 잿빛인데 신기하게도 바다는 맑은 에머랄드빛이다.
바다는 성(城)으로 갈 때 다시 보기로 하고, 장이 열리는 샤레야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광장엔 식료품과 꽃을 파는 상점들이 자리해 있는데, 기웃기웃 구경하는 재미가 꽤 괜찮다.
니스에 유난히 많은 피자리아 중 하나를 골라 점심을 먹은 후, 성(城)으로 향한다.
성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성터만 남아있을 뿐이라 한다.
성터를 향해 걷는데, 아침부터 혹사한 다리가 아픔을 호소한다. 그래도 가야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성터 입구 쯤 되는 곳에서 멈춰서니 해안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터까지 오르지 않고, 그냥 이 지점에서 눈으로 사진으로도 열심히 바다를 찍고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 다니며 한번씩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멀지 않은 곳에 바다에 접한 니스 공항이 보인다.
어젯밤, 검은 바다 표면에 닿을 듯 착륙 비행하는 항공기 때문에 항공기가 바다로 빠지는 줄만 알았는데,
저렇듯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공항이었던 것이다.
다시 구시가로 들어와 아까 스쳤던 오페라극장을 지나면서 해변도로인 '영국인의 산책로'로 빠졌다.
3.5km에 이르는 이 도로는 200여년 전에 영국인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개발하며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숙소가 나오리라 했는데, 예보는 믿지 않고 아침 하늘만 믿었던 우리를 향해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도 피할 겸 커피 마실 카페를 찾다가 눈앞에 있는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바다가, 흐린 하늘이 무색하게 아름답다.
낮이 끝나기 전 돌아온 숙소에서 밥돌들은 차례로 단잠에 빠졌다.
저녁을 먹은 후, 슈퍼마켓을 찾아 이슬비에 젖은 거리를 거니는 마음이 산뜻하다.
잊을 수 없는 니스의 하루가 지고 있다.
< 2008. 10. 30.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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