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04~08)/동유럽 이야기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체코 : 두번째 텔츠 꼭 15개월만에 다시 찾은 텔츠. 그때처럼 체코 국경을 넘고도 1시간을 달려이 잔잔한 언덕에 올랐다. 파스텔빛 중세 건축물들이 봄 하늘과 여유롭게 어우러진다. 그 겨울엔 빗발처럼 쏟는 눈 때문에 아기자기한 성도, 마을을 둘러싼 호수도 차창으로만 흐릿하게 스치고 말았는데 이 봄엔 시간을 풀어내며 광장 밖의 풍경마저 가슴에 담아버린다. 성의 정원에서 웨딩 촬영 하는 신혼의 부부, 호숫가 목조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 낡디낡은 옛 길을 밟는 부자(父子), 평화 속을 거니는 마음이 있으니 천상이 바로 이곳일터. 체코 : 트레비츠를 위하여 더할 수 없이 푸른 하늘이 핑계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이트의 체코 편을 찾아 좀더 먼 '올로모우츠'는 뒤로 미루고 '트레비츠'란 이름의 생소한 곳으로 간다. 넓은 트레비츠의 중심 광장을 지나멀지 않은, 프로코피오 교회에 다다른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세계유산이라는데, 그 앞에 부착된 투어 안내와는 달리 입구는 굳게 잠겨있다 . 다시 광장으로 왔다. 유명 여행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맛있는 점심을 먹은 다음 성당에 딸린 탑을 올려다본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그 교회 내부에 발을 들여놓자 기도하던 어느 할머니가 손짓하며 우릴 부른다. 이름 모를 좁은 강을 건너 역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라는 유태인 지구로 눈을 돌린다. 아까 서성이기만 했던 프로코피.. 폴란드 4 : 빗속의 단꿈 어젯밤부터 몸 상태가 나빠진 작은밥돌이 아침 식사를 마다한다. 밤새 여러 번 들리던 '엄마' 소리에 약과 물수건을 챙기느라 잠을 설쳐 나도 노곤한 아침. 하는 수 없이 어른 둘만 아래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온 사이, 작은밥돌은 내내 화장실에 있었다고 하소연한다. 이를 어쩐담, 대신 아파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기만 한데. 체크아웃을 하고 승용차에 타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이 많이 흐리진 않으니 오래 내릴 비는 아니다. 도로 따라 펼쳐지는 폴란드 남부의 시골 풍경이 한가로워 보인다. 출발 30분 후, 주유소 삽. 오스트리아에선 동유럽 화폐를 환전할 수 없으니 남은 폴란드 돈을 다 쓰기로 했다. 비엔나를 떠나올 때보다 비엔나로 돌아가는 길이 더 짧게 느껴진다. 그새 긴 도로에 익숙해진 건지... 폴란드 3 : 잔학의 끝, 아우슈비츠 도로에 내리붓는 햇살이 여름의 그것 못지 않다. 비엘리츠카에서 다시 크라코프를 거쳐 서쪽으로 60여Km를 더 가야만 이를 수 있는 곳. 나치에 의해 이름마저도 '아우슈비츠'라 바뀌어버렸던 오시비엥침이다. 이번 여행 계획을 짜면서 처음엔 아우슈비츠를 포함하지 않았었다. 오스트리아에 남아있는 마우타우젠 강제수용소의 기억이 아직 너무도 또렷했기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고통과 회한의 역사를 되풀이하여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고 그 기억을 재생시켜 마우타우젠과 아우슈비츠를 비교 대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올랐다. 살아남기 위해 낮추고 숙이고 땅 속까지 꺼지던 주인공 '스필만'이 떠올랐다. 아우슈비츠엘 가야 했다 서쪽으로 아무리 가도 오시비엥침이란 이정표는 등장하지 않았다.. 폴란드 2 : 소금이 만든 미궁, 비엘리츠카 밤새 몸살과 사투를 했음에도, 새벽의 단잠 덕분에 작은밥돌의 아침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다. 조식 메뉴도, 식당 분위기도 괜찮다. 쫑알거리며 즐겁게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식당으로 들어온다. 아침 일찍 주차장을 확인한 바로는 어제 저녁보다 승용차 수가 훨씬 늘었음은 물론 관광버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오전 일정은 크라코프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준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다. 호텔 프론트에 문의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승용차를 움직였다. 크라코프에서 10km 떨어져 있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할슈타트처럼 오래 전부터 암염을 채굴해온 곳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자 폴란드의 가장 큰 관광자원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10km정도 이동했을즈음, 큰길에선 보이던 소금광산 표지판.. 폴란드 1 : 크라코프 가는 길 오늘도 새벽이랑 친구가 돼버렸다. 평소엔 끙끙거리는 아침 기상이지만, 여행 떠나는 날은 무조건 예외다. 점심 도시락과 음료, 컵라면과 과일에 다른 간식까지 챙기고 꾸리다보니 2시간이 그냥 지나가는데, 난 언제쯤 김밥, 유부초밥 이런 것 안 싸들고 우아하게 떠나보려나. 날이 좀 흐릴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아침 날씨만은 정말 좋다. 슬로바키아 쪽으로 차를 달려 한산한 국경을 넘어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기름을 넣은 뒤, 고속도로 통행권을 구입하러 주유소샵으로 들어가는 큰밥돌을 쫄랑쫄랑 따라갔는데, 샵에서 마주치는 슬로바키아 처자들의 자태가 하나같이 곱다. 오스트리아보다 물가가 싸다며 얼른 초코바 하나를 집는 작은밥돌. 한참을 달리다보니 고속도로가 끊기고, 기아자동차의 공장이 있는 '질리나'부터는 국도.. 헝가리 : 부다페스트와 함께한 토요일 올 3월엔 꼭 부다페스트에 가려 했었다. 몇 해 전 겨울, 잠시 들렀던 부다페스트는 시리도록 추웠던 기억밖에 없어, 내겐 늘 춥고 고단한 도시였다. 지리적으론 비엔나와 가까웠지만 그 고단한 기억 때문에 부다페스트는 여행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리곤 했다. 그랬던 부다페스트를 드디어 새봄맞이 첫 여행지로 정했는데, 3월 주말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래서 내린 결론. 3월엔 신들도 우리가 부다페스트 가는 것을 막는구나. 이런 곡절 끝에 예정했던 이틀 대신 당일치기로 부다페스트를 훑기로 했다. 4월, 그리고 토요일. 빈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240km 거리.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헝가리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30분 이상을 허비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쪽으론 국경 통.. 체코 : 체코의 겨울 선물 흐린 휴일, 체코 국경 넘어 또 1시간. 완만한 언덕 길에 눈이 날린다. 522m 언덕의 '텔츠' 광장엔 16세기에 지은 색색의 건물들이 오도카니 서 있다. 광장에 아무렇게나 뭉쳐 몰아놓은 눈덩이와 세찬 눈발 쏟아지는 잿빛 하늘은 감출 수 없는 텔츠의 겨울을 선연히 드러낸다. 논과 밭과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 김용택, '눈 오는 마을' 중에서 - 뿌연 눈발 속으로 호수 너머 텔츠 성과 성당이 아득하다. 오스트리아 들어오기 직전의 국경 마을 '슬라보니체'에서도 겨울 중턱을 구르는 눈뭉치들이 앞을 막는다. 흰빛 사그라들어 잿빛 도는 눈뭉치엔 어린 날 옆집 녀석의 선한 웃음이 맺혀있다. 남의 국경을 넘나들며 회상의 긴 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