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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생의 한가운데

이별, 너를 보내다

제주 애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 건 녀석이 떠나기 2주 전이었다.

서너 달, 아니 어쩌면 한두 달밖에 견디지 못할 몸 상태였으니까.

위중한 질환-어쩌면 수의사 오진일 수도-이 아니었음에도 녀석의 몸과 정신은 점점 야위어갔다.

 

이른 이별을 예감했던 걸까. 떠나기 사흘 전, 나는 거실 바닥에 요를 깔았다.

밤에도 또 낮에도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움직임이 차츰 둔화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금세라도 떠날 듯 잠만 자는 녀석을 깨워 물과 미음을 먹이면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날 새벽 2시, 녀석을 안아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안개 짙은 새벽 6시반, 녀석은 자던 자리에서 40-50cm 떨어진 바닥에 홀로 누워있었다.

왜 거기 있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어.

녀석의 심장이 갑자기 고요해진 건, 녀석을 요 위로 옮긴 다음 눈에 덮인 투명 막을 닦아준 직후였다. 

14년 2개월 15일, 길지 않은 삶을 마치고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아지별로 떠나버렸다.

 

그날 오후, 넋을 반쯤 놓은 상태로 찾은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한 줌도 안되는 재로 돌아온 녀석.

사춘기부터 함께 자란 녀석을 보내면서 아들은 내내 눈물을 쏟았다.

녀석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집, 녀석의 물건들은 모두 다 남아있는데 녀석만 없었다. 오열했다.

그제야 녀석이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날마다 자책감과 상실감, 슬픔과 그리움이 뒤죽박죽 되어 밀려왔다. 눈물만 쏟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많이 아프지 않고 떠났잖아. 더 있었으면 진짜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을텐데 다행인 거야.

착하고 똑똑했던 녀석, 함께 사는 동안 네가 준 행복과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다니.

엄마의 껌딱지였던, 늘 아빠 곁에서 잠자던, 형아바라기였던 우리 예쁜 막내 녀석. 

 

삶의 기차는 여러 역을 경유하면서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기에, 우리 막내는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으니 내려 떠난 것이라 한다. 

자연의 섭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자책감과 상실감에 눈물 흘리고 심연 같은 그리움에 슬픔을 쏟는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녀석이 준 행복을 떠올리며 잔잔한 그리움 속에서 미소 지을 수 있을까. 

폭풍 같은 이 슬픔이, 안온한 그리움이 되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12월초, 제주 애월 (상실감과 그리움을 달래려 10년만에 찾은 제주)

https://stelala.tistory.com/15919940

'요 이쁜 녀석, 지인의 동물병원에서 태어난 생후 4개월짜리 강아지가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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