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말과 11월초, 이즈음은 오스트리아 공휴일이 두 번이나 있고, 각급 학교에선 짧은 가을방학에 해당되는 시기다.
브뤼헤를 다녀오기로 한 10월 마지막 일요일인 오늘은 유럽 서머타임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1시간을 벌고 일어난 아침 하늘은 다행히 맑은 편이다.
여름 아닌 계절에 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날씨다.
여름에야 대체로 일기가 좋은 편이고 비가 내리더라도 짧게 소나기처럼 내리는데 비해, 봄이나 가을 특히 가을에 쏘다닐 땐
흐리고 을씨년스러우며 비가 내리는 경우도 많다.
7시, 일찍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객실이 많은 호텔이라 그런지 이미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마음에 드는 자리 잡기도 쉽지 않은데, 하이톤으로 여기저기서 들리는 친숙한 언어. 한국어가 심히 부산스럽다.
중앙역으로 가는 아침 산책길이 즐겁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나란히 쓰인 이정표가 재미나고, 초콜렛 박물관 앞 예술적인 간판은 미소를 짓게 한다.
또 그랑플라스을 지난다. 어느 레스토랑에선 젊은 친구가 청소를 하며 부지런한 아침을 열고 있다.
요리조리 사진을 찍느라 밥돌들로부터 뒤쳐진 탓에 마구 뛰어가려는 찰나, 20대 커플이 내게 카메라를 맡긴다.
브뤼셀 중앙역의 티켓 창구 앞에 줄이 꽤 길다.
바로 우리 앞에 서있는 할머니가,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듯 여러 번 뒤돌아 쳐다본다.
주말 할인티켓으로 주세요~
미리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주말에 벨기에 국내를 기차로 왕복할 경우엔 45% 할인되는 티켓이 있다고 했다.
창구에 문의해서 알아보니 정말로 이 티켓 있다.
브뤼헤로 가는 하늘이 흐려지고 있고 기차 유리창 밖으론 한적한 풍경이 이어진다.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편이 아니라 그런지 고층아파트가 여러 차례 눈에 띈다.
브뤼셀 중앙역에서 본 타임테이블엔 브뤼헤까진 1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쓰여있지만, 실제론 1시간반이 걸렸다.
도중에 겐트에서 좀 오래 멈춰있긴 했지만 특별히 서행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드디어 브뤼헤와 만난다. 역에서 내려 마르크트 광장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날이 흐려도 여행객은 참 많다. 근데, 유럽에서도 예쁜 도시로 손꼽히는 브뤼헤라지만 여기 너무 예쁘다.
아기자기한 거리, 아름다운 건물, 근사한 운하, 보는 것마다 그림처럼 예쁘다.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
광장은 멋들어진 건물들로 둘러싸여,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자, 그럼 꺼내볼까. 이번 벨기에 여행엔 큰맘 먹고 카메라 삼각대를 챙겼다.
물론 그다지 큰 삼각대는 아니지만, 여행 짐을 싸다가 가방에 자리 차지한다는 이유로 늘 빼놓고 가져오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삼각대의 첫 실험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책임 담당자는 작은밥돌.
능숙한 솜씨로 삼각대 다리를 쭉쭉 꺼내 빼고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은 후 '10초후 촬영'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이미 촬영 자세로 서 있는 우리 곁으로 깔깔거리며 뛰어온다.
광장 곳곳을 배경으로 뛰어다니며 또 엄청나게 깔깔거리며 가족사진을 찍는 재미가 아주 괜찮다.
.
맑고 따스한 날엔 브뤼헤에 자전거 행렬이 많다고 한다.
아까 역 앞에도 자전거 대여소가 있더니 이 광장 한쪽에도 자전거들이 가득 모여있다.
흐리고 바람도 많은 날이라 움직이는 자전거는 많지 않았지만, 광장을 가르며 날아갈듯 달리는 소녀들의 낯빛이 화사하다.
이제 저기 좀 올라갈까. 종탑 앞에 멈췄다.
13-15세기에 건립된 이곳의 높이는 88m, 366개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한다.
늘상 높은 곳 올라가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 우리지만, 남들 다 가는 에펠탑도, 피렌체 두오모도 다 거부했었지만
이번만은 올라가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핑곗거리를 찾은 끝에 도전 포기다.
잘 생긴 청년이 지키는 상점에서 기념품을 산 후, 시청사가 있는 광장에 위치한 성혈 예배당으로 이동한다.
이곳엔 12세기에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의 입장 시각은 유난히 엄격했다.
그렇다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다시 마르크트 광장으로 돌아와 어느 레스토랑에 들었다.
마늘빵과 함께, 점심에 제공되는 간단한 코스 요리를 고르고 보니 또 홍합요리가 들어있다.
퍽도 열심히 먹어대는 우리, 대낮부터 체리 맥주도 한 잔 들이켜 주고.
풍차 언덕으로 가는 도중, 운하에 또 보트가 떠간다.
구명보트처럼 빽빽하게 들러 붙어있는 모양새가 맘에 안 들긴 했지만, 또 탈 뜻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보트 승선을 결정해야 할 마지막 순간, 우린 보트를 겐트와 바꾸었다.
보트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또 보트를 타는 딱 그시간만큼 브뤼셀로 돌아가는 길에 겐트엘 들르기로 한 것이다.
아이고, 다리야. 지도상으론 이 길이 맞거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나가는 노부부에게 풍차 언덕을 물었다.
우리가 네덜란드만의 풍물이라고 생각하는 풍차의 원조는 브뤼헤를 포함한 플랑드르 지방이다.
드디어 운하와 함께 첫번째 풍차가 등장해 주었다.
풍차야, 무지하게 반갑다. 네 덕분에 내가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거든.
우리의 작은밥돌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풍차 옆에 서길 거부한다.
그러던 녀석이 두번째 풍차 언덕엔 신나게 오르더니 온몸을 꽁꽁 여미고는 한바탕 굴러내리겠다고 한다.
이 나지막한 언덕마다엔 풍차 4기가 있다고 하는데, 두번째 풍차까지만 만나보고 돌아서기로 했다.
다행히 풍차 언덕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물론 친절하게도 버스 운행시각표까지. 버스를 기다린지 10분, 깔끔한 새 버스가 우리 앞에 선다.
이제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브뤼헤 기차역으로 돌아간다.
< 2007. 10. 28.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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