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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선글라스 별곡

큰밥돌의 선글라스가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났다.

3월 초에 스키장 다녀온 후 행방을 감춘 큰밥돌의 10년된 선글라스.

스키장 갔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는데다가 평소에 뭘 흘리거나 잃어버리는 큰밥돌 성격이 아니었기에

분명 집구석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거라 확신하고 선글라스 수색에 들어가기를 며칠.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선글라스는 집구석 어디서도 출현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보다 햇살이 강하기 때문에 선글라스 없이 운전하거나 걸어다니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애용하는 진짜 이유는 선글라스 없이는 배겨낼 수 없는 강하디강한 햇살 때문인 것이다.

이미 햇살 뜨거운 5월, 행방불명된 선글라스를 이젠 정말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토요일, 집에서 가까운 쇼핑몰의 안경점으로 가서 동양인의 얼굴에도 어느 정도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고른 후,

도수 있는 렌즈로 교환할 수 있는지를 직원에게 물었다. 상담이 필요하니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

한참을 기다려 안경사와 상담을 마치면서 제시된 가격은 선글라스 70유로에 교환할 렌즈가 202유로, 무려 272유로다.

허걱, 한국 돈으로 44만원. 명품도 아니고 특수 렌즈도 아닌데,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가격이다.

 

유럽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또 그와 관련된 용품이 비싼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와, 정말.

울며겨자먹기로 렌즈 교환까지 주문을 하고나니 2주일 후에나 찾으러 오란다.

그러려니 했지만 이렇게 늦기까지, 우리나라 같으면 안경점이 완벽하게 망할 일이다.

 

글로리에테
아인슈패너

안경점을 나선 뒤, 오랜 만에 쉔브룬 궁전의 정원으로 봄을 맞으러 간다. 

이런이런, 날씨가 정말 선글라스 가격과는 다르게 환상이잖아.

정원 끝 언덕에 자리한 글로리에테의 야외 카페에 앉아 생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우와, 아인슈페너도 지나치게 환상이잖아~

 

쉔브룬
쉔브룬

토요일, 오후 늦게 돌아온 집.

제일 먼저 거실에 들어간 작은밥돌의 갑작스러운 한탄이 바깥까지 들렸다.

"아, 미치겠다."

"뭐야, 뭐, 무슨 일 났어?"

"아빠 선글라스, 여기 있어요, 여기."

 

거실장 위 작은 상자 안쪽에 숨어있던 선글라스가, 거짓말처럼 그 시커먼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아니아니, 이게 왜 여기 들어있었던 것이냐고.

이틀 후인 월요일 아침, 큰밥돌은 주문했던 선글라스 취소 요청을 했고, 다행히도 주문은 취소되었다.

큰밥돌 생애 가장 비싼 유럽산 선글라스를 한번 써보나했는데, 이 일을 아쉬워해야 하나, 기뻐해야 하나.

 

봄날의 베란다엔 붉은 꽃들이 유쾌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마치 이런 우리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 2008. 5. 3.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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