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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프라터와 콘서트

비와 햇살이 번갈아 드나들던 5월 마지막 일요일.

2년 만의 프라터 공원 나들이.

큰밥돌은 절대 놀이기구를 타지 않겠다는 나를 잡고,

기어코 '크레이지마우스'인가 뭔가에 몸을 실었다.

저 아찔한 기구에 앉아있던 3분,

앞에 탄 두밥돌보다 뒷자리의 내 목소리가 더 컸음은 물론이다. 

 

신록은 푸르게 익어가고

봄 하늘도 푸르게 영글어간다.

.

공원을 거니는 꼬마 기차도, 영화 속 장면 같은 야외 카페도, 

모두 투명한 푸르름을 머금은 날.

 

작은밥돌 학교에서 열린, 종업을 코 앞에 둔 시점의

6월 첫째 화요일의 여름 콘서트.

특히 6학년 아이들 전체는

3개월 동안 음악시간에 갈고 닦은 솜씨를 선보인단다.

 

6학년 합창단의 자유로운(?) 합창과

9, 10학년 여러 연주팀의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연주에도

객석의 학부모들은 길고 힘찬 박수를 보낸다.

콘서트를 통한 결과보다

악기 연주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풍토다.

 

거의 마지막 순서에 나타난 6학년 관악 연주팀은

콘서트 안내장에도 적혔듯 완전무결한 초보 밴드다.

석 달 동안 트럼펫 들고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무대 맨 뒷줄에서 두 볼이 터져라 트럼펫을 부는 작은밥돌. 

불협화음에도 객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가려움증이 동반된 갑작스런 두드러기 증상으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콘서트에 불참하고 귀가한 큰밥돌,

다음날 오후엔 드디어 종합병원 신세를 졌다.

진료실에서 1시간 동안 왕따시만한 링거를 맞으니

거짓말처럼 피부가 맨들맨들진다.

 

작은밥돌은 쑥쑥 자라나고,

나는 놀이기구를 외면하고 싶은 나이가 되고,

큰밥돌에겐 두드러기에 시달리는 세월이 왔다.

이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거침없이 흘러만 간다.

 

< 2008. 5. 25 / 6.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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