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바는 정말 복잡해
난카이선의 종착역인 난바역의 규모는 무시무시했다.
난카이선은 물론 긴테츠선과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에 쇼핑몰까지 뒤엉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도톤보리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선 난바 지하철역 14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14번 출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땅 위로 올라서기로 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때 눈 앞에 나타난 마루이 백화점.
도톤보리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갔지만 이후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
약도를 보고 확인하며 이동하다가, 두 번이나 길을 물어 도톤보리를 찾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두 개의 쇼핑 상점가를 쭉쭉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었다.
저녁 8시 20분 체크인, 유흥가 한복판에 있는 호텔 5층에 들었다.
작다작은 객실 안에 대충 짐을 던져두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다.
서울 출발 전부터 우린-아니 내맘대로- 오사카에서의 첫 음식은 오코노미야키로 정했다.
오사카 중심가에 즐비한 오코노미야키 전문음식점인 치보, 미즈노, 후게츠, 오카루 등 중 처음엔 오카루에 마음을 두었다가
호텔 근처에 위치해 있고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는 이유로, 또 맛에 대한 평도 꽤 괜찮다는 이유로 '오모니'(어머니)로 향했다.
# 오코노미야키의 정체
5-6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아담한 규모의 '오모니'에 들어서자 고음의 환영 인사를 쏟아놓은 훈남 직원들.
한국어 메뉴판-일본어를 대략 읽을 줄만 아는 남편과 읽을 줄은 모르고 주요음식명만 아는 나, 우린 결국 까막눈-을
요청한 후, 모둠 오코노미야키와 이카 야키소바를 주문했다. 물론 생맥주도 함께.
오모니 본점은 한인 거주 지역인 츠루하시에 있고 이곳 도톤보리에 있는 건 분점인데, 주인장이 한인이라 한다.
음식보다 삿포로 생맥주가 먼저 나왔다.
일본여행 카페에서는 삿포로, 산토리, 에비스, 기린, 아사히 등의 일본 생맥주 맛에 대해 극찬이 끊이지 않아서
사실 그 맛에 대해 기대를 했었는데 우리나라 생맥주보다는 시원하고 상쾌하며 깊은 맛이 나는 것 같긴 했으나,
이미 4년이나 유럽 생맥주의 깊디깊은 맛에 빠져 살던 우리에게 일본 생맥주 맛이 특별하진 않았다.
직원이 먼저 요리된 이카 야키소바를 뜨거운 철판 위에 놓아주며 테이블 한켠에 있는 양념들을 설명해 준다.
시치미, 가쓰오부시 등 너댓가지 양념을 취향에 따라 뿌려먹으라는 것.
바삭하고 고소한 야키소바에 이어 먹을만 했던 모둠 오코노미야키도 철판 위에 푸짐하게 내려놓는다.
배를 채웠으니, 늦은 밤까지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도톤보리 물줄기 주변을 쏘다녀보기로 했다.
호텔이 도톤보리의 최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호텔로 돌아갈 교통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바람 흠뻑 맞아보기로 한다.
사실 나는 규모 큰 도시 여행에서 호텔을 정할 때, 최중심가를 선호하지 않는다.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으며 볼거리와 먹거리가 모여있다는 장점이 많긴 하지만, 한편으론 시설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도시의 일상과 여유를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복작이는 도톤보리로 호텔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울로 돌아가는 항공기 시각 때문이었다.
아침 7시 35분발 항공기를 타기 위해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후, 제2터미널로 이동하여 6시 40분까지 탑승 수속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공항철도가 출발-첫차 5시 10분-하는 난바까지 새벽에 도보 이동 가능한 곳에 위치한 호텔이어야 했던 것이다.
# 도톤보리의 화려한 조명
이미 일본여행 카페에서 수없이 봐온 광경이었지만, 도톤보리의 간판들은 거대하고도 독특했다.
가게 특징을 살려 주력 물품이나 메뉴를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매우 강렬했다.
거리를 둘러보다가 물과 캔맥주를 사기 위해, 온갖 물품을 다 판매한다는는 '돈키호테'에 들렀다.
어찌나 한국인이 많은지, 또 어찌나 물품 진열대 사이의 공간이 좁은지, 계산대의 줄은 또 어찌나 긴지 깜짝 놀랐다.
한정된 물품만을 판매하는 편의점 말고는 대안-도톤보리를 벗어나면 마트와 시장이 있지만 시간적으로 불가능-이 없었기에,
이후 한두 번 더 '돈키호테'엘 가긴 했으나 정말 폐소공포증에 걸릴 것 같은 곳이었다.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로 배는 불렀지만 그래도 타코야키는 꼭 먹어야 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인쇄된 안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직원에게 한국어 몇 번을 찍어 가리키니 주문 완료.
부른 배 탓에 당장은 먹을 수 없었기에 파를 듬뿍 올린 타코야키는 포장 용기 속으로 들어갔다.
게 전문점 간판의 대형 게는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시선을 끌고, 또다른 타코야키 가게는 이미 폐점이다.
체인점인 '교자노오쇼'나 '오사카오쇼'의 야키 교자는 오사카를 떠날 때까지 먹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거대초밥 간판으로 눈길을 잡는 회전초밥의 원조 '겐로쿠스시'와 초밥 전문점인 '간코스시'도 도톤보리를 지킨다.
초밥을 좋아하는 나는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최소 두번은 초밥에 도전하리라 마음 먹었으나 짧은 여정엔 무리였다.
결국 오사카의 회전초밥을 먹어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신세카이에 본점이 있는 꼬치튀김 전문점 '다루마'의 험상궂은 아저씨나 라면가게인 '긴류라멘'의 거대한 푸른 용 간판은
즐거운 눈요깃거리였으나 여긴 뭐, 고깃집인가. 검은소 조형물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아놓은 것에는 즐거워할 수가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왜 그리 검은소가 딱하게 보였는지.
채식주의자도 아닌데 내 눈에 비친 소는 가엾기만 했다.
거리는 조금 소란했으나 커튼까지 친 작디작은 호텔 객실은 조용하다.
캔맥주와 타코야키-흔들고 다녀서 비주얼이 엉망이 되었지만-는 서로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밤이 든 오사카 도톤보리에도 별들이 쏟아지나보다.
눈이 스르르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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