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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6 두브로브닉·프라하·빈

7. 29 (금) 전 : 두브로브니크 가는 길

남편과는 6년만에 떠나는 유럽,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누웠으니 몸은 당연히 천근만근이다.

어제는 재건축조합사무실에 들러 동호수배정에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고, 집 청소와 빨래를 하고는 서울에 남아있을

아들녀석의 반찬거리를 챙기느라 몸이 둘이라도 모자란 날이었다.

퇴근하면 함께 짐을 싸자는 남편의 의견 덕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던지는 말, 오후에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고 다른 친구들은 내일 장례식장에 갈 예정인데

자신은 갈 수 없으니 마음이 편치 않단다. 내일은 비행기 타야 하는데 당근 못 가지, 그럼 지금 얼른 다녀오면 되잖아.

다시 집을 나섰던 남편은 11시반에 귀가했고 캐리어 점검까지 다 마치고 나니 무려 새벽 1시였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시각은 5시 35분.

여름 휴가의 성수기라 새벽인데도 버스 안에 승객들이 많고, 여의도에 다다르자 강한 빗줄기가 쏟아진다.

정체 없이 도착한 공항엔 핀에어 체크인데스크가 아직 오픈 전이다.

 

짧지 않은 행렬에 합류하여 7시 50분, 체크인을 하는데, 지정좌석요금(41열)이 미지불되었으니 요금을 내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지불도 하지 않은 좌석이 예약확정이 가능하냐고 따져물었더니 화면에 그렇게 뜨니 자기는 그렇게

할 뿐이고 요금을 지불한 것이 확실하다면 지정좌석의 요금을 지불했다는 증빙자료를 내놓으란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캐리어를 열고 서류를 찾는데, 서류들을 넣어둔 비닐파일이 보이질 않는다.

좌석요금지불 이메일 출력물을 비롯해 호텔바우처, 프라하행항공 예약확인서, 기차예약서 다 넣어두었는데, 어디 갔지.

짐싸면서 작은 캐리어를 하나 더 가져가려고 서류파일을 거기에 넣어두었었는데, 안 뺐나, 참...

귀국할 때 필요하리라 여겼던 그 작은 캐리어는 여행 중엔 짐만 될 것 같아 결국 가져오지 않았다.

 

이메일을 열어 직원에게 요금지불을 확인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너희 회사 오류이니 직접 확인하라고 했다.

직원은 여기저기 한참을 확인하더니 지불 확인되었다고 한다. 사과도 없다. 여기 엉망이군.

난 앞으로 절대 핀에어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큰소리로 다짐하며 탑승권을 받아들었다. 

 

인천공항
인천공항
핀에어

떠나는 사람은 많고 검색대는 복잡했다.

면세품인도장에 들러 화장품 몇 개를 받고는 탑승구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떠나기 전부터 속을 썩이던 핀에어는 출발하는 날까지 우리를 이래저래 짜증스럽게 한다.

어느 새 비가 그쳤다. 맑지는 않아도 살짝 갠 하늘이 다행스럽다.

 

핀에어 A350 41열
핀에어 A350 41열
핀에어 A350 41열

좌석지정요금-40유로*2- 지불확인 소동을 벌였던 우리의 좌석은 가운데열 중 41D와 41E 이다.

우리 오른편 좌석인 41H는 벽면에 요람설치가 가능한 자리였는데, 탑승하고 보니 요람 당첨이다. 

요람 사용이 24개월까지 가능하던가. 23개월령의 여자아기가 사용하기엔 요람은 많이 작았다.

23개월 정도의 아이라면, 우리라면, 요람으로는 불편해할 아이를 위해 한 자리를 더 예약했을 것이다.

 

아무튼 젊은 부부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41H와 41J 두 좌석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아이를 달래고, 기내용캐리어를 수차례

짐칸에 올렸다내렸다하며 부스럭거렸다. 아기가 탑승할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많이 불편했다.

41열 장점이 앞 공간이 넓다는 건데, 아이 무게 때문인지 벽면에 설치하지 못한 요람을 바닥에 두다보니 내 앞 공간의 반을

요람이 차지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41열은 비추다. 5만원을 더 지불할만한 가치가 없는 첫번째 이유다.

 

첫번째 기내식
첫번째 기내식

핀란드 맥주를 주문하고 식사를 하고 또 영화를 보며 기내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김치볶음밥과 떡갈비로 구성된 첫번째 기내식도, 파스타인 두번째 기내식도, 돌덩이 같은 아이스크림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영화 몇 편 중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는 평범했고,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는 뭉클한 영화였다.

 

핀에어 A350 41열
두번째 기내식

그리고 41열을 추천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

41DEF의 바로 앞엔 왼쪽과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다보니 주변엔 늘상 탑승객들이 많은 편이었다.

소음의 집결지라 늘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또, 41DEH 앞쪽에 약간 공간이 있는 걸 보고는 통로로 생각했는지 우리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다리 위를 넘어가고 심지어 아이가 자고 있을 땐 요람 위를 넘어가기도 했다.

통로가 아니라는 내 외침(?)을 듣고 넘어가지 않은 사람은 10여차례의 경우 중 한두 번에 불과했다.

이런 질서의식과 개념을 가진 탑승객과 함께라면 가운데열 41DEF는 절대 비추다.

 

헬싱키 공항
헬싱키 공항
헬싱키 공항

인천에서 9시간을 날아 도착한 헬싱키 공항. 이 자그마한 공항엔 6년만이다.

핀에어가 처음으로 서울에 취항한 2008년-빈에 살 때-과 뮌헨을 들러 빈엘 갔던 2010년에 이어 세번째다.

한쪽 구석의 긴 의자에 누워, 공항 와이파이로 아들과 톡을 하고 KBO리그의 야구를 본다.

지구 반대편 먼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영상을 보다니,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 참 좋다.

 

두브로브니크행 항공기
두브로브니크행 항공기

3시간의 대기시간을 지나 예정보다 15분을 넘겨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항공기가 이륙한다.

음료만 던져줄 뿐 기내식도 주지 않는 저비용항공스러운 핀에어 항공기엔 좌석이 반쯤만 채워져있다.

다시 3시간의 비행시간을 지나 눈 아래 바다를 낀 두브로브니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