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행하면서 걷기는 좋아하지만, 계단과 언덕은 내게 치명적이기에 꽤 꺼린다.
그래서 좁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와 지오토의 종탑은 처음부터 내 계획에 없었다.
다들 지오토의 종탑에 간 사이, 조금 일찍 누리는 자유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한바퀴 둘러보면서 시작되었다.
피렌체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도시다.
두모오 성당에서 주변으로 난 도로 중 'Via del Servi'를 따라 걸으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이 나오는데,
그 초입이 바로 '냉정과 열정 사이'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곳이다.
기마상과 두오모 돔과 양편의 붉은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포스터 속 남녀 주인공,
누구든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보이는 두오모의 색과 선이 참 아름답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엔 브루넬레스키의 초기 건축물인 고아원 건물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는 10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한 천재들이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시기다.
피렌체가 중심이 된 르네상스는 은행업, 무역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화려한 꽃을 피웠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와 로렌초 데 메디치 등이 예술가들에게 후원한 금액은 현재 화폐 가치로 무려 66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두오모 성당 앞에는 두오모의 부속건물 같은 산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 칭송한, 10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세례당의 동쪽 문은 기베르티의 두번째 작품으로,
27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진품은 두오모 박물관에 있다.
기베르티의 첫번째 작품은 28개의 패널로 새긴 북쪽 문으로, 제작 기간은 20년이다.
이 첫번째 청동문의 제작자 선정을 위해 공모전을 열었는데, 최종 후보가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였다고 한다.
모두 20대 신예 금속조각가였던 두 사람 중 결국 기베르티가 낙점되었고 브루넬레스키는 공동작업자가 되었다.
공동작업만 맡아도 부와 명예가 보장된 당시였지만 브루넬레스키는 단번에 거절하고 로마로 떠난다.
로마에서 그는 고대 건축물을 측량하고 파헤치며 무려 17년 동안 건축을 공부했다.
피렌체로 돌아온 브루넬레스키는 건물과 지붕은 지었으나 돔은 올리지 못하고 있던 두오모 성당의 돔 건축가로
1417년, 우여곡절 끝에 선정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당시 기술로는 만들 수 없다던 거대한 돔은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완성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로마의 판테온과 형태는 물론 크기도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판테온의 돔은 최상단을 열어놓은 반면 두오모는 106m 쿠폴라를 올렸고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두오모 내부에 입장하는 것도 13년 만이다.
사람들은 적지 않았으나 차분하고 고요했으며, 천장화 중심 위편으로 쿠폴라의 안쪽이 보인다.
정해진 시간 없이 정한 장소 없이 쏘다니는 피렌체 구시가에서의 자유.
발끝이 끌리는 대로 길을 걸으면 밀라노에서도 봤던 Eataly가 나타나고 화장품샵 KIKO도 나타나 준다.
시뇨리아 광장을 둘러싼 피렌체스러운 건축물을 만나고 광장을 서성이는 수많은 표정을 만난다.
우피치 미술관 외관의 중앙에 자리한 무장한 군인들.
작년 밀라노에서도 자주 보던 모습인데, 경찰과는 달리 군인이 있는 광경은 왠지 무겁다.
우피치 기둥 사이사이에 새겨진 천재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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