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조식 메뉴는 어제 나슈막 근처 아시아식품점에서 구입한 진라면이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한국 음식을 꽤 많이 챙겨왔으나 여행 일자가 열흘 남은 지금, 어찌된 일인지 남은 게 거의 없다.
10시 20분, 향하는 곳은 사흘 전 가려다 실패한 오토바그너 성당. 우린 그리로 가는 최적의 루트를 알아냈다.
S45로 오타크링까지 이동한 후, 버스 46B를 타고 10여분 뒤 정류장에 내리면 친절하게도 Otto Wagner Kirche라 쓰인 표지판이 있다.
그 작은 표지판을 따라가니, 상상도 하지 못한 드넓은 자연이 갑작스레 활짝 펼쳐졌다.
이 멋진 자연 위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은 세차게 부는 바람에 맞춰 꼬리가 긴 연을 높이 날리고 있었다.
넓은 초원에 이어 나타난 숲길을 따라 걸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형상과 색감을 지닌 Otto Wagner Kirche가 출현한다.
깊지 않은 숲으로 둘러싸인 오토바그너 성당은 사흘 전 그 앞까지 갔던 오토바그너 병원의 북쪽에 자리해 있다.
코로나19 이전엔 병원을 통과해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병원과 성당은 서로 오갈 수 없이 펜스로 막혀있다.
근데 여기 왠지 낯설지 않은데, 언제 온 적이 있나.
확인해 보니 빈에 살 때 와 본 기억이 있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한인 부부의 딸 결혼식 때 왔던 곳이다.
한국어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을 뿐 한국말은 구사하지 못하는 그녀는 오스트리아 남자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구름은 바람 따라 날리며 하늘을 채색하고 있다.
하늘 아래 신록 속에서 발견한 유겐트슈틸-아르누보- 건축물은 황금빛 호화로움과 새로운 개성을 피운다.
오토 바그너가 건립한 칼스플라츠역사나 히칭의 호프파빌리온보다 더 세련되고 독특하며 화려하다.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빙 둘러본 다음,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기는 소방서까지 멋지다니까.
버스로 2정거장을 움직이면 빌헬름베르크에 자리잡은 슐로스 호텔이 있다.
귀족이나 왕족 그 누군가의 소박한 궁전이었던 이곳에서 바라보는 빈 전망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호텔 앞 정원과 산책길은 또 얼마나 예쁘고 근사한지, 하루 이틀쯤 묵어도 괜찮을 호텔이다.
일요일인데도 오타크링역 Anker는 영업 중이다. 판매원인 중년남자가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숙소로 돌아와 치즈쎔멜과 치즈빵, 포도, 우유를 먹으면서 오후엔 어딜 갈까 하는데 비가 쏟아진다.
오후 5시, U3 Herrengasse역 옆 미노리텐 성당에 들었다.
여기 아주 오랜만이지. 6시 미사 준비 중이라 고딕 양식의 내부에선 오르간 연주자의 연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노리텐 성당 내부엔 이탈리아와 관련된 그림들-이탈리안을 위한 성당이 아닐지-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린 프레스코화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제본이 그것이다.
성당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은은히 빛나는 '최후의 만찬'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에선 없던, 태평 세월이 도약하듯 흘러 지나고 있다.
휴일의 저녁 식탁엔 라자냐와 모차렐라와 감자샐러드가 기다린다.
창 밖에는 맑고 서늘한 밤 바람이 불고 있었다.
'표류 > 2022 빈'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20일 (화) : 낮이나 밤이나 (0) | 2023.02.17 |
---|---|
9월 19일 (월) : 비엔나 서쪽 동네 (0) | 2023.02.17 |
9월 17일 (토) : 빈의 가을 바람 (0) | 2023.02.06 |
9월 16일 (금) : 도나우강변에서 (0) | 2023.02.06 |
9월 15일 (목) : 오토 바그너의 그림자 (0) | 2023.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