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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15일 (일) : 집으로 가는 길

숙소 거실에서

어제 저녁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히터 밸브를 열어두었는데 밤새 히터가 가동되었는지 아주 따끈한 아침이다.

라면을 끓이고 남은 피자와 요거트, 우유, 커피까지 다 몸 속에 들여놓으니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 정리가 끝났다.

오늘은 독일을 떠나는 날이고 한국행 항공기를 타는 날. 아침 8시반, 캐리어를 챙기기 시작했다.

 

동네 포도밭

떠나기엔 아쉬울만치 너무나 화창하게 맑은 날이다.

오전 10시, 이곳을 떠나는 날에야 현지인들 사는 동네 구경에 나섰다.

마을 성당 쪽으로 가려다가 경사진 길을 따라 1-2블럭 올라가니 오, 예상치 못한 드넓은 포도밭이 등장했다.

 

동네 포도밭

하늘과 맞닿은 이 공간을 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트이고 마음이 트인다. 

포도밭 중앙의 두어 곳엔 경작 주체나 위탁 업체로 보이는 작은 인식표가 부착되어 있는데, 구시가 종합병원과 트램 광고판에서 본

와인 명칭과 동일한 것으로, 각각 Juliusspital율리우스슈피탈과 Buergerspital뷔르거슈피탈이라 쓰여 있다.

대열을 이룬 푸르른 포도밭 위로 새들은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다. 

 

동네 성당

고딕 양식의 동네 성당에 들어가니, 11시 미사를 준비 중인지 내부에 몇 사람이 있다.

내부를 대략 둘러보고 나오는데 선물처럼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 다시 들어가 선율에 마음을 기대었다.

성당 바깥엔 미사에 참석하러 오는 동네 사람들이 행렬이 도드라지고, 근처 초등학교 마당엔 낙엽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다.

 

초등학교

숙소로 돌아와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처리하고 오전 11시, 마감 맞춘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 근처 트램정류장엔 3개의 노선이 있는데 운행시간표를 확인하니 헉, 일요일엔 그중 하나만 운행한단다.

트램 도착까지 대기시간 20분, 중앙역까지 걸어가도 20분. 캐리어 있고 시간 넘치는 우리의 선택은 당연 트램이다.

 

뷔르츠부르크 중앙역 맥도날드로 가서 공항 가는 기차 안에서 먹을 햄버거를 포장했다.

서울에선 1년에 한두 번밖에 안 먹는 햄버거-평소 싫어하지않음-를, 여행 중엔 도시 이동시에 서너 번은 먹게 된다.

기차에 오를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탑승하기까지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실외 플랫폼은 쌀쌀하고 소나기가 한 차례 퍼붓기도 했으나, 사람 구경하다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가버린다.

 

휴일을 맞은 ICE 열차엔 예상대로 승객이 많다.

우리가 예약한 좌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나, 우리 좌석임을 말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준다.

이번 여행에서 예약한 독일 열차 중 유일하게 좌석을 지정 예약-예약비 1인 4.9유로-했는데, 좌석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많은 승객 속에서

거의 없는 빈 좌석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기에, 결론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오후 2시 20분, Frankfurt am Main Flughafen Fernbahnhof-공항 장거리기차역-에 도착했고, 스카이라인을 타고 2터미널로 이동했다.

 

프랑크푸르트공항 에어프레미아 체크인카운터
프랑크푸르트공항 면세구역

2터미널 에어프레미아 체크인카운터 앞에 대기줄이 길다. 

항공기 출발까지는 3시간반 이상 남아있었으나 벌써 수속 중이다.

프레미아 42-프리미엄이코노미-카운터 앞엔 10명도 안되는 사람들만 서 있으니 금세 체크인 완료다.

 

자동출국심사 창구가 닫혀 있었으나 출국심사도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우린 같은 줄에 서있다가 남편만 다른 줄로 옮겼는데, 남편 전전에 심사 받던 백인여자 차례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영어가 서툰 백인 중년여인은 체류기간에 문제가 있는 듯했는데, 담당경찰관은 옆 경찰과 대화를 하고 자리를 비운 채 왔다갔다하면서

남편 줄은 올스톱 상태가 되었다. 난 이미 심사가 끝났고, 결국 남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가 서 있던 줄로 이동해서 출국심사를 마쳤다.

 

프랑크푸르트공항의 검색대는 예전 비엔나 공항처럼 탑승구 직전에 있다고 한다.

출국심사를 먼저 한 다음 면세점이 있고 항공기 탑승 전의 마지막 순서가 검색대인 것이다.

협소한 면세구역에서 프랑켄와인을 구입한 후 긴 의자에서 한참 휴식하다가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각,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런데 직원이 이어서 탑승권까지 확인하더니 다다른 곳은 탑승할 바로 그 게이트 앞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몇몇 탑승구를 묶어 그 앞에서 검색을 하는 게 아니라 검색대 통과하면 딱 해당 탑승구 앞이니 어디 가지도 못하고 갇혀버린 형국이다.

주변엔 여행 인솔자와 함께 있는 탑승객들이 많았는데, 다들 패키지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웰컴드링크
프랑크푸르트 공항

프레미아42 승객 먼저 탑승을 하고 거의 만석인 항공기는 20분 늦게 출발했다.

오늘 기차 타고 대기한 것 말고는 한 게 하나도 없는데 고단함이 온몸으로 쏟아진다.

 

오후 7시반에 고른 첫번째 기내식인 쇠고기스튜와 매시드포테이토는 괜찮았으나 미니셈멜은 눅눅했다.

그리고 살짝 빈약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기내 엔터테인먼트가 출국하던 9월과는 달라져 완전히 바뀌어 있다.

난 최강야구를 20분쯤 보다가 너무 졸려 잠에 빠졌고, 중간열 할아버지의 무수한 가래기침소리에 여러 번 깼으나 또 곧 잠들었다.

난기류에도 깨지 않고 기내에서 숙면을 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기내식 : 저녁
기내식 : 아침

깊은 밤을 날아 한국 시각 10월 16일 오전 11시. 아침식사로 난 새우죽을, 남편은 스크램블을 골랐다.

다시 최강야구-집에서 이미 다 본 것이지만-를 보기 위해 10분을 버텼으나 이미 시차 부적응이 심각하다.

잠은 대책없이 계속 쏟아지고, 항공기가 인천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물색없이 쭉 자고만 있었다.

봄 여행 때와 달리 종이 입국심사가 폐지되었고 프레미아42라 캐리어도 제일 먼저 나와주니 모든 것이 좋다.

 

4주 동안 기쁘고 즐거운 여행을 했다.

서울을 잘 지키고 서로를 잘 지켜준 아들들에게 얼른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오늘 서울 최고기온은 19도, 무르익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