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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12일 (목) : 비 내리는 뷔르츠부르크

잔뜩 흐린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아침이다.

9시 40분, 일기예보를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는 우산을 챙겨 트램정류장으로 간다.

오늘도 어제처럼 발매기에서 1일권플러스(2인) 교통카드를 구입했고 트램에 올라 Dom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노이뮌스터성당(오른쪽)과 거리

트램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대성당 근처의 붉은 건축물은 노이뮌스터성당으로, 그 역사는 8세기에 시작된다.

주교의 순교 장소에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11세기에는 노이뮌스터수도원-19세기 페쇄-이, 14세기에는 노이뮌스터성당이 세워졌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고, 1945년에 전쟁의 폭격과 화재로 손상되어 이후 재건되었다.

이곳 내부도 꽤 현대적인 느낌이었는데 2차 대전 후 복구된 건축물이라, 역시 완벽한 복원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마리엔플라츠의 마리엔카펠레(마리아성당)
마리엔플라츠
마리엔카펠레의 제대화 : 예수의 탄생, 수태고지(가운데), 동방박사의 경배

대성당과 노이뮌스터에서 멀지 않은, 넓은 마리엔플라츠엔 14세기에 건립된 마리엔카펠레-마리아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 노이뮌스터의 보조성당인 마리엔카펠레는 일반적인 고딕 성당과는 달리 외관이 붉은색과 흰색으로 채색되어있다.

성당 출입문의 아치볼트 주변과 외부의 조각상들만 황토빛으로, 복구 전 원래 색상이 남아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뷔르츠부르크 궁전으로 이동한다.

 

뷔르츠부르크궁전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는 왕자 주교의 거주지로, 60년에 걸쳐 건축된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다.

이곳엔 360개의 방이 있고 현재는 40개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차분한 빛깔의 외관에 비해 궁전 내부 입구는 화려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중앙 계단은 거대하고 웅장했으며 천장엔 600㎡-181평-의 어마어마한, 세상에서 가장 큰 일체형 천장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18세기 베네치아 화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는 전 세계로 떠오르는 태양을 주제로 삼아 천장화를 그렸다고 한다. 

 

화이트홀
임페리얼홀

궁전 1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화이트홀은 흰색과 옅은 회청색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 조각과 부조를 덧붙였다.

천장은 갑옷과 무기, 전쟁의신 아레스 등이 장식되어 있는데, 화이트홀의 원래 용도가 왕자 주교의 경비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 로마를 배경 삼은 회화와 그리스로마신들의 조각상들로 호화롭게 꾸민 임페리얼홀은 금 장식을 활용하여 화려함을 더했고

커다란 타원형 돔 천장 아래 이중으로 창을 내어 빛이 한가득 쏟아지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쭈욱 이어지는 남의 집 구경.

다른 궁전과 차별화되는 점은 많은 방들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테피스트리였는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테피스트리가

꽤 있어서 이채로웠다. 궁전마다 다들 한둘씩 있는 거울의 방도 있으나 크기는 작은 편이었다.

 

1945넌 3월,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초토화된 뷔르츠부르크

독일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뷔르츠부르크 역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구시가지의 90%가 파괴되었다.

뷔르츠부르크 궁전도 중심부와 임페리얼홀과 화이트홀만이 폭격을 피해 보존되었고 상당 부분 파괴되어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쳤는데, 

전쟁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방도 있다.

또다시 이어지는 방들은 뮌헨 레지덴츠와도 비슷한 분위기, 18세기 가구와 어우러져 호화롭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몇 개의 방은 회화 전시실. 절로 와 하는 소리가 나오고, 갑자기 근사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주로 16~18세기 베네치아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 회화의 전성기를 이끈 '회화의 군주' 티치아노의

작품이 있고 '가나의 혼인잔치'로 유명한 파울로 베로네세의 회화는 여러 작품이 걸려 있었다.

 

티치아노,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베로네세, Caritas

이런 즐거움이라니, 너무 좋은데,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회화 전시실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회화 전시실에서 가까운 궁정 교회-성당-에 들어서니 천장과 사면이 금빛으로 치장되어 굉장히 화려했다.

이곳도 감탄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는데, 넓지 않은 공간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장식하여 공간미와 예술미가 두드러진다.

 

2시간 가량 궁전 내부에 머문 후 정원으로 나갔더니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푸른 정원은 보았으나 오후의 고단함 때문에 오늘로 미뤘던 정원 위쪽을 가보려는데, 비가 심히 방해를 한다.

사람이 거의 없는 정원, 비가 계속 내리니 이제 그만 둘러보기로 했다.

 

한 것도 별로 없는데 힘들고 지치고 더 걸을 기운도 없다.

궁전 앞 버스정류장에서 운좋게도, 배차 간격 긴 9번 미니버스에 10분 만에 승차했고 트램으로 환승했다.

그리고는 숙소로 들어가던 중 오늘도 역시 NORMA에 들러 빵, 우유, 포도, 프랑켄와인을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2시 50분, 늦은 점심은 환상적인 맛의 너구리다.

 

비는 그쳤으나 여전히 흐린 오후 6시, 트램을 타고 구시가 Dom 정류장에 이르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저녁 마실에 나선 이유는 독일 Tchibo 커피. 우린 작은 치보 매장에서 커피캡슐과 커피원두를 구입했다.

동네에도 구시가에도 아랍계 얼굴이 많다. 나갈 때와 달리 귀가하는 트램엔 퇴근하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커피용품판매점 치보
동네 별약국

맨날 술이야, 맨날 술인가.

남편은 와인, 난 맥주를 골랐고 치즈와 오징어튀김과 포도가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가을은 어느새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