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실시됐던 유럽 서머타임이 해제되는 날이 오늘이다. 덤으로 1시간을 거저 얻은 기분.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호텔 식당 사방에선 독일어가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독일어권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다.
아침 바다를 산책하고는 전날 다 못 고른 기념품을 사러 기념품점에 들렀다.
9시도 안 되는 시각인데 오픈한 가게가 있다. 머리 희끗한 여주인은 재빨리 영어를 뱉어가며 자기 물건들을 자랑한다.
당연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발견하는 법. 가게 주인의 상술에 휘말려 기분좋게 두 개나 고른 우리~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는데 직원이 영어와 독일어 중 편한 쪽을 묻는다. 흠, 그대는 둘 다 능통하단 말이지.
돌아나오는 호텔 주차장엔 오스트리아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가득하다.
이젠 비엔나에서 오파티아로 오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가야 한다. 슬로베니아를 넘어가 오스트리아로 진입해야 한다.
오파티아에서는 흐려보이던 하늘이 슬로베니아 시골길에선 푸르디 푸르다.
그런데 길을 달리다 보니, 아니 여기저기 표시되어있는 이정표들을 보니, 새로운 곳을 들르고 싶은 변덕이 생겼다.
그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로 가자고~ 원래 예정한 북쪽을 떨치고 서쪽으로 즉 이탈리아 북부로 냅다 달린다.
어, 베네치아 가는 쪽이네. 오스트리아에 살기 전인 재작년 여름 베네치아에서의 짧은 기억이 정말로 아쉬웠는데,
그 이름 쓰인 이정표만으로도 무척 반갑다.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1시간 남짓, 베네치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트리에스테가 있다.
주차장 위치를 알 수 없어 시내를 오락가락하는데 생각보다 크고 오래된 도시다.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인구 22여만 명의 항구 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다로 걸어가니 온통 축축하다.
바다에선 바다 냄새와 쓰레기 악취가 함께 풍겨와 얼굴에 축축한 주름을 만들어 버린다.
하늘도, 바다도, 건물도, 공기마저도 그리고 광장을 밟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늦가을 음울에 묻혀 있다.
트리에스테를 떨쳐내자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맑은 층을 이룬다.
멀리, 또 가까이 보이는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인 돌로미티가 이렇듯 웅장하면서도 곱다.
비엔나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는 저녁 비바람과 전투를 치렀다. 늦가을과 겨울의 짧은 태양마저 무섭게 탓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아스라할 뿐이다. 눈앞에는 아드리아해만 푸르도록 출렁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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