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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동유럽 이야기

크로아티아 2 : 리예카의 가을꽃

늘 새벽부터 부산 떨던 아침이 여행지에선 역시 느슨하다.

깔끔하게 차려진 맛있는 아침을 먹고 올려다본 하늘은 어제보다 한결 청명하다. 이젠 버스 타러 가야지.  

호텔 직원이 적어준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에 오르며 행선지를 확인하니 아니란다.

건너편에서 타야 한다며 친절히 알려주는 버스 차장(?) 아저씨.

 

비엔나에도 있는 ㄱ자로 꺾어지는 굴절 버스다.

아침이라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있어 얼른 골라잡아 안착하니 버스는 해안으로만 달린다.

오른쪽 시야에 들어오는 멀고먼 바다가 끝이 없다.

 

30분을 달려 다다른 곳은 오파티아보다 큰 항구 도시 리예카다.

대로 가까이엔 선착장이 길게 이어지고 그곳엔 큰 배들이 그득하다. 이곳에도 해변이 있을 듯한데...

 

밝은 톤은 아니어도 한길의 건물들은 중세를 벗어나지 않았다.

옛 모습과 현대가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어느 지역이든 그들이 공유하는 건 다르지 않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 그런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못 미치는, 윤택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은 환하다.

그들보다 소득 높은 체코나 헝가리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니 서유럽 사람들 못지 않게 시원스레 환하다.

1990년대 초, 내전으로 힘겨운 고비를 수없이 넘어선 이후 지니게 된 고귀한 자유 때문일까, 긍정적인 민족성 때문일까.

 

광장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도 그들처럼 말간 빛을 낸다. 

로마 시대 문인 오래된 돌 무리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낡은 건물 창 밖으로 널어놓은 빨래들은 손에 잡힐 듯 정답다.

 

과일과 야채가 있고 잡화도 판매하는, 리예카 중심가 재래시장에서 가장 많은 것은 꽃이었다.

세월은 늦가을 길목을 서성이고 있어도 소망을 안고 사랑을 품 듯 그들은 꽃을 가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그들은 가을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