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동유럽 이야기

폴란드 2 : 소금이 만든 미궁, 비엘리츠카

밤새 몸살과 사투를 했음에도, 새벽의 단잠 덕분에 작은밥돌의 아침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다.

조식 메뉴도, 식당 분위기도 괜찮다. 쫑알거리며 즐겁게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식당으로 들어온다.

아침 일찍 주차장을 확인한 바로는 어제 저녁보다 승용차 수가 훨씬 늘었음은 물론 관광버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오전 일정은 크라코프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준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다.

호텔 프론트에 문의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승용차를 움직였다. 크라코프에서 10km 떨어져 있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할슈타트처럼 오래 전부터 암염을 채굴해온 곳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자 폴란드의 가장 큰 관광자원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10km정도 이동했을즈음, 큰길에선 보이던 소금광산 표지판이 골목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던 중, 마침 인도를 걷고 있는 반백의 폴란드 아저씨가 있어서 차를 멈추고 소금광산을 물으니

알 수 없는 폴란드어만 잔뜩 내뱉다 말고는 갑자기 차 뒷자리에 올라타 버린다. 금광산 앞까지 직접 안내해 주겠다는

몸짓인데, 밤새 술을 펐는지 술로 아침식사를 한 건지 맥주 냄새가 폴폴 진동을 한다.

어쨌거나 도와준 알콜 아저씨를 향해 고마움의 인사를 띄우고 주차장에 안착했다.

 

8시 30분밖에 안 된 시각인데도, 매표소 안팎엔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깊은 지하에 위치한 소금광산 내부엔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가이드와 함께 입장해야 한다.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 중 10시에 시작하는 영어 가이드투어를 선택하여 티켓을 끊었다.

그래도 입장까진 1시간도 더 남아있다.

 

킹가공주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 다시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광부 유니폼을 입은 가이드 아저씨가 '잉글리쉬투어'를 외치며 사람들을 모은다. 10시, 드디어 입장이다.

매표소 내부의 작은 문을 통해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데, 나무 계단(380개)이 수없이 많다.

계단의 오른편 나무벽엔 하강하는 와중에 바쁘게 써 내려간 낙서 또한 수없이 많다. 

특히나 압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한글 낙서들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너무도 부끄럽게 했다.  

 

차가운 지하 바람을 가르며 20분 정도 내려갔을까. 계단이 끝나고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난다.

벽과 천장에 들러붙어 있는 하얀 결정을 찍어 먹어보니 진짜 소금이다. 정말로 짜다.

오스트리아 소금도 다 암염이지만 식용으로 판매되는 소금은 정제된 것이기에 실제 광산 벽면의 소금만큼 짜지는 않다.

 

광산 내부 지하 130m 지점의 이곳저곳에 소금으로 만든 조각상들이 보였다.

소금광산을 발견한 킹가공주의 전설을 듣고, 60년을 지하광산에서 지내다 눈이 퇴화해 맹인이 된 광부의 슬픈 이야기도 듣는다.

우리가 관람한 부분만도 어마어마한 공간이었는데, 이는 전체 광산의 1%에 해당하는 정도라 하니 전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가만 보니 영어 가이드 투어를 하는 한국인 가족이 우리 말고도 두 가족이나 더 있다.

 

레일과 말을 이용한 소금 운반 과정, 지하수 정제 과정에 대한 해설에 이어 등장한 곳은 소금광산의 백미인 '성당'이다. 

조각상과 부조는 물론 바닥과 샹들리에까지 모조리 소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를 만드느라

지하에서 생애를 바친 광부들-예술가들-의 희생이 안타까웠다. 

아름다운 부조인 최후의 만찬에도, 경건한 교황의 조각상에도 그들의 노고가 배어있다. 

 

성당
최후의 만찬

성당을 지나면 오래 전에 이 소금광산을 다녀갔던 독일의 작가 괴테의 조각상이 서 있다.

괴테는 거대하고 오묘한 이 지하 공간에서 영적인 감흥에 흥건히 빠질 수 있었을까. 

그건 그렇고, 아이고 다리야. 계단을 내려와 걷고 서기를 여러 번, 도보 행렬과 어둠에 지치기 직전이다.

 

교황
괴테

레스토랑과 연주회장과 기념품 샵을 거쳐,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빛의 세계로 올라왔다.

길지 않았던 2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햇빛이 그리웠나보다.

환한 하늘이 올려다 보이니 이제 살 것 같다. 점심을 들고 오후엔 좀더 멀리 움직인다.

 

< 2007. 5. 27.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