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수 없이 푸른 하늘이 핑계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이트의 체코 편을 찾아
좀더 먼 '올로모우츠'는 뒤로 미루고 '트레비츠'란 이름의 생소한 곳으로 간다.
넓은 트레비츠의 중심 광장을 지나멀지 않은, 프로코피오 교회에 다다른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세계유산이라는데,
그 앞에 부착된 투어 안내와는 달리 입구는 굳게 잠겨있다
.
다시 광장으로 왔다.
유명 여행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맛있는 점심을 먹은 다음
성당에 딸린 탑을 올려다본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그 교회 내부에 발을 들여놓자 기도하던 어느 할머니가 손짓하며 우릴 부른다.
이름 모를 좁은 강을 건너 역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라는 유태인 지구로 눈을 돌린다.
아까 서성이기만 했던 프로코피오 교회가 보인다.
유태인들만의 게토가 오늘따라 더욱 서글프다.
배척 당해 한 곳에서 모여 살 수밖에 없었던 쓰린 비애.
어느 낡은 주택에서 개짖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어린 유태인 소년이 나온다.
일요일인데도 창틀에 페인트 칠을 하는 아저씨를 본듯 만듯 울 작은밥돌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삶이 이렇듯 어릴 적 지녔던 기상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낡디낡아 귀퉁이와 외벽이 떨어져 나간 집들을 헤치는 길에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오른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찾은 프로코피오 교회.
아까는 잠겨있던 교회 입구에 젊은 여인이 문고리를 잡고 있다.
얼른 인포에서 영어 설명서를 받아 가이드 투어에 끼었지만,
체코어로 진행되는 내용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듯한 노부부를 위해 독일어로도 설명을 해준다.
큰밥돌이 질문을 했지만 영어 소통은 어려운지 가이드가 난감해한다.
그저 13세기 건립을 알려주고 있는 영어 설명서만 들여다볼 뿐.
교회 내부의 독특함은 설명 없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교회와 성 앞에 조성된 정원도 이쁘고, 화장실 앞조차도 운치 있다.
기념품점에서 엽서를 사들고 나오다보니 네 아이의 엄마가 씩씩하게 아치 문을 지나고 있다.
차에 오르기 위해 돌아온 광장 앞에 지금은 갤러리와 인포센터로 쓰이는,
16세기에 지어졌다는 르네상스 양식의 페인트하우스가 내 눈을 쓸어준다.
오늘 하루도 이 외벽처럼 소박하지만 고운 색으로 기억될 것 같다.
< 2007. 9.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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