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요, 볼 거 하나도 없어요.', '거긴 유럽이 아니예요. 위험하니 가지 마세요.'
유럽여행 카페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초보 회원이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도시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여행 루트에 고민이 생겼을때 어렵게 꺼낸 질문에,
여행 경험자인 다른 회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볼 것 없어요'라고.
다른 대륙에 비해 유럽은 나라별로, 도시별로 또 시대별로 문화와 예술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에서는 고대를 느끼고, 파리에선 박물관과 미술관에 취하고 런던에선 역사와 뮤지컬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누구나 손꼽는 아주 유명한 여행지가 아닌 곳을 들를 때의 마음가짐이다.
그곳이 가진 특색과 문화, 삶을 살피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곳인가를 따진다.
사진으로 잘 남길 수 있는 곳인가, 귀국한 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곳인가를 먼저 챙긴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곳, 요란하고 지저분한 곳은 여행 순위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다.
회원 대다수가 경험과 성찰이 적은 20대라 툭툭 던지듯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쇼핑을 오래하지 못한다.
쇼핑해야 할 품목이 식료품 같은 생활 필수품이라도 마찬가지다.
장보기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아파오고, 1시간반이면 온몸에 열이 나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그런데, 여행할 땐 그 행태가 180도 달라진다. 조금도 쉬지 않고 2-3시간 정도 걸어도 전혀 끄떡없다.
휴식 후 또다시 이어지는 2-3시간 쯤의 도보 역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버스나 트램을 타고서는 절대 찾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여행을 좋아하고 즐긴다.
지금껏 여러 도시와 마을을 여행하면서 싫거나 불만족스러웠던 여행지는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곳을 향하고 그곳에 머무른다는 자체만으로도 항상 신나고 즐거웠다.
예술이 있어 기뻤고, 역사가 있어 재미났고, 사람과 삶이 있어 행복했다.
위험해서 가지 않는다는 나폴리, 에게해로 가기 위한 경유지일 뿐이라는 아테네까지도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유럽의 한 도시에 살면서도 내게 유럽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나는 오늘도 미지의 장소를 향해 마음을 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