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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1 홍콩

8. 10 (수) 전 : 홍콩으로 비상하다

오늘 홍콩으로 떠나는 항공기의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10분이고, 내 기상 시각은 새벽 3시 30분이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러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조금 빨리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전날엔 여행 준비의 마지막 마무리를 하느라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기에 새벽 기상을 맞는 몸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너무 졸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일어나 짐보따리를 확인하고 우리집 막내녀석의 물건들도 잔뜩 챙긴 후 집을 나섰다.

 

승용차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나의 친정, 아들녀석의 외가이며, 바로 우리 막내녀석을 맡길 곳이다.

우리 막내녀석이란 이제 막 1살이 된 우리집 강아지로, 작년 12월에 우리집으로 입양 와서 가족이 되었다.

엄마가 만들어놓으신 호박죽을 맛있게 먹은 후 막내를 맡기고 공항으로 향한다.

저만 남겨두고 떠나버리는 이 사태를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인천공항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장기주차장에 남편의 승용차를 세우고, 여객터미널로 들어선다.

이제 7시, 너무 서둘렀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휴가 막바지라 그런지 공항은 상당히 한산하다.

오랜만에 타는 국적기, KAL데스크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아까 먹은 호박죽은 어디로.

 

공항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검색대로 가니 아까와는 달리 사람들이 빽빽하다.

출국심사까지 마친 후 남은 임무는 인터넷 면세점에서 주문해둔 물건을 찾는 일이었다.

S면세점 인도장으로 가다가 본 다른 면세점 인도장은 완전 북새통이어서 크게 놀랐는데, 내가 간 곳은 복잡하지 않았다.

내가 면세점 인도장에 다녀오는 사이, 푹 잘 쉬고 있는 두 남자.

 

이제 무빙워크에 올라 탑승구로 향한다.

이곳에 서서 좌우를 호위하고 있는 면세점들을 보며 탑승구 번호를 헤아릴 때면 떠나는 설렘으로 늘 가슴이 뿌듯하다.

 

엄마께 전화를 드리고 항공기에 탑승하니 생각과는 달리 군데군데 좌석이 비어있다.

출발 10분을 앞두고 이륙 준비를 한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는데도 빈 좌석이 눈에 띈다.

특히나 우리 앞쪽엔 한 열의 4좌석은 완전히 비어있다. 출발 시각이 훨씬 지나도 뜨지 않는 항공기.

 

잠시 후 아라비아와 말레이지아계 사람들 7-8명이 한꺼번에 기내로 들어오더니 우르르 좌석을 찾아 앉는다.

이건 뭐. 시간 안 지킨 저 사람들 기다리느라 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했단 말이지.

예정 시각을 30분이나 넘겨서야 항공기는 겨우 이륙을 한다.

 

우리 셋의 좌석은 비행기 날개 쪽이긴 하지만 시야를 살짝 가릴 뿐 소음이 심하진 않았다.

비빔밥 기내식도 맛있고 후식으로 주는 치즈케이크맛 아이스크림이 썩 맛나다.

출발은 지연되었지만 예정 시각에 맞춰 홍콩 공항에 도착했다.

 

3시간이란 비행시간은 무얼 할 수도 없이 짧다.

2시간짜리 영화도 다 못 봤는데 벌써 도착해버렸다. 기내 창 너머 첵랍콕 공항엔 반갑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홍콩에 닿은 시각은 현지 시각으로 12시 50분. 홍콩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1시간, 홍콩이 더 천천히 간다.

그로부터 입국 심사에 걸린 시간은 40분 이상, 얼마나 줄이 긴 지 입국 심사 전에 이미 지쳐버렸다.

게다가 심사원들의 무섭도록 굳은 표정은 또 얼마나 불편하고 거북한지.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다보니 우리 캐리어는 몇 안 남은 다른 캐리어들과 함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홍콩공항

아무튼 캐리어까지 찾았으니 이젠 홍콩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옥토퍼스 카드는 우리나라 T-money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증금 50HKD 포함 최소 150HKD부터 구입 가능하고

50HKD 단위로 금액을 추가로 충전할 수 있다.

공항 출구를 나오기 전, 어른용으로 200HKD씩, 3개를 충전, 구입-청소년 카드는 없단다-했다.

비가 내리고 있는 홍콩의 기온은 27도, 공항 밖으로 나오니 습도가 높아 체감 온도는 훨씬 높은 듯하다.

 

홍콩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은 철도와 버스가 있는데, 우린 공항버스로 이동한다.

홍콩 공항 내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쉽게 공항 버스 타는 곳에 닿는다.

우리가 타야 할 A12버스는 우리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앞에 멈춰선다. 무슨 좋은 징조람.

 

런던처럼 2층 버스다.

반가운 마음에 2층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그냥 1층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호텔로 가는 중 비는 더 거세진다.

 

런던과 같은 2층 버스지만 런던과는 달리 엄청나게 속력을 내는 버스, 비가 내리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윈도우브러쉬도 제대로 작동시키지도 않은 채 버스는 빗속을 질주한다. 여기도 안전불감증인가.

불안한 가운데, 창밖을 보니 차선이 우리와는 반대다. 런던처럼, 운전기사는 차의 오른편에 앉아있다.

 

홍콩 버스 홈페이지의 안내대로 6번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친절하게도 버스 내 전광판엔 정류장의 번호와 지역이 표시된다.

정류장에 내려 준비해온 지도를 보고, 홍콩 섬의 완차이에 위치한 호텔은 바로 찾았지만, 체크인에 걸리는 시간이 꽤 길다. 

투숙객 정보도 일일이 기재하고 유럽엔 있지 않은 호텔 디파짓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3시, 객실로 들어가니 우리가 예약한 방은 트리플룸인데, 침대가 두 개다.

트리플룸은 처음부터 트리플룸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더블룸에 엑스트라베드를 추가해주는 경우가 많다.

데스크에 문의하니 깜빡했다고 한다. 곧이어 들이닥친 엑스트라베드.

 

호텔 전망

예상대로 객실은 작았지만, 전망은 생각보다 아주 좋다.

빅토리아 항구가 보이고, 구룡 반도의 최중심 침사추이 정경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경 넘느라 힘들었던 육신을 일단 쉬기로 했다. 흐린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