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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1 홍콩

8. 10 (수) 후 : 침사추이의 고온다습

여행 첫날, 체크인 후 잠시 쉬고 잔 우리는 오후 5시, 호텔을 나섰다.

홍콩 여행의 첫 탐험지는 홍콩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침사추이.

그런데, 헉, 숨이 막힌다. '초고온'은 아닌 것 같은데 '다습'의 차원은 서울과 한참 다르다. 다행히 내리던 비는 그쳤다. 

스타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시티투어 2층 버스를 만났다. 뚜껑없는 2층에 앉아있으면 오늘 같은 날, 괜찮을까.

 

거리엔 빨간 택시들의 물결을 이룬다.

빨간 색 물결을 보면서 홍콩도 역시 중국의 한 도시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스타페리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이어주는 배로, 홍콩섬엔 센트럴과 완차이에, 구룡반도에는 홍함과 침사추이에 선착장이 있다.

호텔은 완차이에 위치해 있고, 1997년 홍콩 반환식이 열린 홍콩컨벤션센터를 지나면 바로 스타페리 선착장이다.

 

스타페리 선착장: 완차이

옥토퍼스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스타페리 선착장에 들어서니 이미 페리가 대기해있다.

오래된 목선 같은 페리는 실내가 고풍스러워서 옛 홍콩 영화 속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할 땐 새 것보다 낡은 것이, 현대적인 것보다 고전적인 것이 여행지의 정취를 한껏 돋워준다.

 

배는 채 20분도 안 돼 침사추이에 도착한다.

빠른 속력으로 달린 것도 아닌데,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의 거리가 짧다보니 승선 시간이 정말 후딱이다.

완차이도 그러했지만, 홍콩의 최중심 번화가인 침사추이는 고층 빌딩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빌딩 숲 사이로 만남의 장소인 시계탑이 유럽적인 모습으로 서 있고, 좁은 바다 한가운데엔 중국풍 붉은 유람선이 떠 간다.

 

덥....다. 날도 흐린데, 뜨거운 것도 아닌데, 더운 이유는 습도 때문이다.

여름엔 90%가 넘는 습도를 머금고 있다는 걸 알고 홍콩여행을 실행했음에도 몸으로 직접 겪는 초고습도는 역시 힘들다.

습도가 높다고해서 습도에 밀릴 수는 없다. 도시를 가르는 바다라니, 꽤 근사하지 않은가.

 

스타의 거리

침사추이의 시계탑을 지나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이미 길은 사람들로 포화 상태다. 

늘 유럽 도시의 한적한 거리만 걷다가 손꼽히는 인구 밀도를 지닌 홍콩의 도심을 지나려니, 서울 한복판 같은 느낌이다.

 

해안 산책로를 지나면 바로 만나는 스타의 거리.

스타의 거리는 말 그대로 홍콩 영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영화 장비와 스태프의 모습을 한 동상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다.

스타의 거리에서 해안을 따라 늘어선 영화스러운 모습을 눈여겨보다보면 발 아래에서도 영화가 펼쳐진다.

홍콩 배우들의 이름과 핸드 프린팅이 있는 명판이 끝도 없이 우리를 반겨준다.

 

홍콩에도 스타벅스가 있네.

난 별다방, 콩다방엘 즐겨가는 편이 아니라서 이것들에 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한데, 야자수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별다방이라면 한번쯤 앉아볼만도 했다. 물론 들어가진 않았지만.

도로 위에 쓰여진 'Look Right (望左)'은 런던에서 보았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왠지 엄청나게 반갑다.

 

페닌슐라 호텔
1881 Heritage

침사추이 페리 선착장에서 동쪽으로 이동했기에 하버시티로 가기 위해선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북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습도 높은 날씨에 도저히 걸어갈 수는 없고 택시를 타기로 했으나 택시는 안 보이고.

오래 걷지 않았음에도 날씨 때문에 힘든 상황, 그러나 지하철도 없고 버스는 번호도, 노선도 모르고 선택은 걸어가는 방법뿐.

 

걷다보니 페닌슐라 호텔이 궁전처럼 보이고, 공연을 알리는 빈 필의 포스터도 괜히 위안이 된다.

한번쯤은 그 앞에 셋이 모여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던 1881 Heritage도 그냥 지난다. 그땐 정말 덥고 힘들어서.

1881 Heritage 앞을 지나 하버시티로 가는 도중, 우리가 한국인인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동남아 남자들이 한국말을 한다.

'짝퉁 있어요, 아가씨, 싸요...' 

 

하버시티
Crystal Jade

하버시티 3층엔 음식점 Crystal Jade가 있다. 여길 오려고 걷고 걸었던 것,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식당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우리가 20여분을 기다려 먹은 해산물, 쇠고기볶음, 완탕면 등이 아주 맛있다. 

 

식사 후, 하버시티 3층의 시티슈퍼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스타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선착장까진 아주 가깝다. 그런데, 배가 도착 후 고개를 들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홍콩 컨벤션센터는 보이지 않고  IFC몰만 버티고 있다. 페리 도착지는 완차이가 아닌 센트럴이었던 것이다.

 

침사추이에서 홍콩섬으로 가는 페리의 행선지는 완차이와 센트럴 두 곳이있는데, 우리는 센트럴 행 페리를 탄 것이다.

왜 행선지 확인을 안 하고 탄 거지? 그럼, 뭐, 택시를 타면 된다.

여긴 다행히 택시가 많으니까. 택시 기사에게 호텔 주소가 적힌 호텔 키를 보여주니 호텔 정문까지 모셔다 준다.

 

더위는 물론, 습도와도 질긴 싸움을 했더니 온 몸이 아주 노곤하다.

TV에선 낮처럼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방영되고있다. 아시아권이라 KBS World 채널이 종일 방영되는 것 같다.

창 밖엔 빅토리아 항구의 흐린 야경이, 하루 종일 쌓인 소금기와 물기를 털어낸 두 남자들처럼 나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