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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런던

10. 3 (화) 후 : 즐거운 셜록홈즈

테이트모던을 벗어난 시각이 오후 1시였고, 밀레니엄교를 건너 세인트폴 성당 앞까지 이르는 데도 시간이 꽤 흘렀을 거다.

이미 점심 때가 슬슬 지나고 있는 시각, 세인트폴 앞에서 11번 버스에 올랐다.

 

세인트폴 성당

버스 2층에서 내다보는 거리는 정취가 다르다.

보행자와 차들은 내려다 보이고 건물이나 문화와는 같은 눈높이에서 그것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2006년 성탄 연휴 여행시엔 시종일관 버스의 2층 맨 앞좌석만 즐겼었다.

그런데, 이번엔 연휴였던 그때와는 교통 상황이 많이 달랐다.

넓지 않은 도로에 교통 체증이 너무나 심해서, 트라팔가 근처에서 환승한 6번 버스에서도 우린 다시 내려야 했다.

 

THE GOLDEN HIND
THE GOLDEN HIND

버스를 내려 Charing Cross역에서 튜브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THE GOLDEN HIND의 점심식사 시간-브레이크

타임 있음-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하철 전광판에 10월 5일의 튜브 파업을 알리는 문구가 떠 있다.

앗, 느닷없이 여행 중에 웬일이래, 이따가 꼭 반드시 잊지 말고 확인 요망.

Bond Street역에 내려 5분 정도 움직이면 100년 전통의 피시앤칩스 식당인 THE GOLDEN HIND로 입장할 수 있다.

 

THE GOLDEN HIND
THE GOLDEN HIND
THE GOLDEN HIND

점심 피크를 지난 때라 식당 내부가 붐비지 않아 오히려 더 좋다.

우리와 백인 할배들, 그리고 홀로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아랍여인이 전부.

피시-대구-의 크기와 사이드인 칩스를 함께 주문하고 나니 오래지 않아 영국의 대표 음식 피시앤칩스가 탁자 위에 차려진다.

음, 맛있는 걸, 생선도 담백하고 튀김옷도 맛나고 게다가 곁들인 맥주까지 꽤 일품이다.  

 

King`s Cross역

교통 체증은 여전했지만 우리의 선택은 또 버스다.

10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King`s Cross역, 뭐 그다지 즐기지도 않는 해리포터의 흔적을 찾으러 온 모양이다.

사실 셜록홈즈 흔적을 찾으러 가는 도중에 잠시 스쳐 들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별 준비도, 별 생각도 없이 킹스크로스역-기차역, 지하철역 다 있음-에서 9 3/4문을 찾았다.

여긴가 저긴가 하다 그냥 돌아서 오는 길에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 2006년 성탄 연휴 때 기차 운행을 하지 않아서

King`s Cross 기차역 가는 방향이 막혀있었지.

그때 역무원이 9 3/4문은 그쪽에 있다고 했었다. 아들녀석이 직접 물어봤던 것을 이제야 기억하다니.

암튼 이미 우린 King`s Cross역을 빠져나왔고 9 3/4문은 다음에 런던 또 오게 되면 가든지 하기로.

 

우리의 여행 방식은 이번처럼 이러하다.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 다음에 놓치면 또 그 다음으로 기회를 넘긴다.

언젠가 다음에 이 도시를, 이 동네를 다시 찾을 여지와 핑계와 당위성을 다소곳이 남겨두는 것이다.

어차피 여행은 마음 먹은 대로 다 실천하기는 불가능하니까. 2/3만 이뤄져도, 아니 반만 계획대로 돼도 괜찮은 여행인 거다. 

 

셜록홈즈 박물관과 샵
셜록홈즈 박물관과 허드슨 레스토랑
셜록홈즈 샵

Baker Street역 근처에는 가상의 주소-소설 속 주소-인 베이커스트리트 221b에 셜록홈즈 박물관과 샵이 자리해 있다.

박물관 입구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있고 박물관 오른편에는 전엔 없었던, 셜록홈즈의 하숙집 주인인 허드슨 부인의 이름을 딴

허드슨 레스토랑-식사 가능한 식당은 아닌 듯-이 생겼다.

내가 추리소설 '셜록홈즈'의 광팬이긴 했지만 역시나 우린 11년 전처럼 2층 박물관 대신 1층의 샵만 들르기로 했다.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듯한 샵엔 홈즈의 흔적이 벅차도록 가득했다.

 

Pret a Manger
Pret a Manger

홈즈 뮤지엄 근처에 있는 카페 체인점인 프레타망제에 들었다.

플랫화이트 커피를 앞에 두고, 차도 1차선에 새겨진 'Look Right'를 바라보며 평범한 런던 거리를 눈에 담는다.

이 가을,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런던 한복판 커피샵에서의 평온하고 행복한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호텔 근처 거리

프레타망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밥 전문점인 itsu에 들러 저녁거리인 초밥 도시락을 챙겼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각과 맞물려 튜브는 엄청나게 붐빈다.

런던 인구는 800만명이 넘고 런던 중심의 어마어마한 주거비로 인해 외곽이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출 퇴근시간 튜브의 번잡함은 당연한 것일 거다. 

 

아까 확인한 바대로 숙소 근처 지하철역 전광판에도 모레 5일의 지하철 총파업이 예고돼 있다. 파업하더라도 길은 있겠지.

즐거운 생각으로 17,000보를 다닌 하루. 내일은 분명 더 크고 더 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