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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밀라노·베네치아

2. 5 (화) 후 : 운하와 운하 사이

100개가 넘는 섬과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베니스의 역사는 6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온 초기 정착민들은 토르첼로섬 등에 살기 시작했고, 인구가 점차 많아지면서 리알토섬이 중심이 되어

진흙으로 이루어진 섬들에 수없이 많은 나무 말뚝을 박은 후 나무로 기단을 얹은 다음 그 위에 돌을 쌓아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여의도 3배 크기인 베네치아는 일반적인 섬과는 달리 지반-갯벌-이 매우 약하고 퇴적층은 바다 위로 살짝만 올라와 있는 형태라서 

이러한 독특한 방법으로 준설되었다. 

 

아파트에 짐을 풀어놓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장보기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Punto Simply로 가는 중 만난 골목길엔 가끔 아니 요사이엔 꽤 자주 발생한다는 아쿠아 알타-바닷물의 범람-를

대비한 보행자용 임시 다리가 상비되어 있다.

작년 11월엔 베네치아의 75%가 물에 잠기는 최악의 아쿠아 알타가 발생했는데 동절기엔 생소하지 않은 현상이라 한다.

물론 겨우내 그러한 것도, 베치아 전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고 지대가 낮은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주로 발생한다고 한다.

 

라 페니체 극장

자연이 만든 운하를 따라 그리고 인간이 만든 다리를 건너 Punto Simply에 들러 물과 우유, 계란, 과일, 맥주 등을 구입하여

냉장고를 채운 후 산마르코 광장을 향한다.

베니스의 미로 같은 골목길 덕에 되다말다하는 구글맵을 켜고 골목과 운하를 따라 산마르코 광장까지 천천히 걷는다.

호텔과 레스토랑과 각종 샵들이 들어선 낡고 빛바랜 건물들 앞을 지나고, 1792년에 귀족이 아닌 일반 국민들의 오페라 관람을 위해

세워졌으나 수 차례 안타까운 화재를 겪은 La Fenice 극장의 역사를 듣는다.

 

산마르코 광장의 산마르코 성당과 종탑
산마르코 성당
시계탑

저녁 해가 넘실대는 산마르코 광장엔 산마르코 성당과 시계탑, 산마르코 종탑, 두칼레 궁전, 코레르 박물관-베네치아 역사, 문화,

회화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15년 전 여름엔 정말 많은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비둘기들이 광장을 밀어낼 듯 채우고 있었는데, 2월인 오늘은 인구 밀도가

아주 쾌적하다.

 

산마르코 광장과 카페 플로리안
카페 플로리안
카페 플로리안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싼 건물 회랑엔 유서 깊은 카페가 여럿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Florian이다.

1720년에 개업한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라는데, 오래된 간판과 출입문을 비롯한 외관은 물론 밖에서 보이는 내부의 고풍스러운 집기와

화려한 벽면 장식이 플로리안의 깊은 역사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카페 내부엔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자리를 꽤 채우고 있는데, 오후 늦은 시각-오후엔 카페인을 멀리해야 하는 분이 있음-이라

다음날에 입장을 약간 고려해 보기로 한 후 광장을 가로지른다.

해가 거의 떨어진 저녁이지만 패키지 여행객들이 광장 여기저기서 가이드와 함께 그들의 언어를 내뱉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탄식의 다리

산마르코 광장에서 바다를 향한 기둥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가 조형되어 있고

정박된 곤돌라 너머엔 멀리 산 조르조마조레 성당과 종탑이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앞에선 단체여행객들이 연신 그들만의 사진을 만들어내고,

우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탄식의 다리를 위한 사진을 만들어낸다.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샵에서 남편의 모자를 구입한 후 주변을 바라보니 어둠이 내리고 있다.

저녁 6시, 어둠 깔린 광장엔 인적도 흩어지고 회랑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눈에 보인다.

우린 가로등 불빛 침침한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너무 어두워서 살짝 무서운 골목길들을 짚어 숙소로 돌아왔다.

 

베네치아 본섬 곳곳엔 날개 달린 사자의 조형물이나 부조가 많다.

이곳 수호성인인 마르코를 여기저기 존치시켜 도시의 평화와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걸까.

불 밝힌 샵의 진열대에 가면과 유리공예품이 넘쳐나고 우린 이 도시에 발을 디딘 즐거움을 쏟아놓는다.

 

꿈결 같은 도시, 베니스에서의 첫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