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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13일 (목 ) : 벨렝의 하늘

Terreiro do Paco 지하철역 가는 길

새벽에 속이 부대껴 눈을 떴다. 약을 먹고 다시 잠들어 느즈막히 기상한 아침.

오늘은 오전에 올드트램 승차와 마트 쇼핑을 하고 오후엔 벨렝 지구를 둘러볼 예정이다.

Terreiro do Paco 지하철역에서 비바비아젱카드 1일권을 구입한 후 마르팀모니즈역으로 향한다.

 

멀리 보이는 상조르주 성
28번 트램

28번과 12번 트램 종점인 마르팀모니즈역 근처 트램 정류장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대열에 합류하여 꽤 기다리다 확인해 보니 우리 줄 앞쪽에 이어진 긴 줄이 더 있다.

이런 줄 알았으면 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어차피 기다렸기에 더 기다려 타기로 했으니 대기시간이 무려 1시간 15분.

 

28번이든 12번이든 상관없었으나 우리 차례에 멈춘 트램은 28번이다.

순서대로 오르다보니 선택지 없이 좌석은 오른쪽. 왼쪽이 더 좋은데 말이다. 서서 가는 사람도 꽤 있다.

 

28번 트램
카몽이스 광장

트램은 아슬아슬 좁은 골목길을 레일 따라 속도를 내면서 달린다.

트램 왼쪽 자리에 앉았으면 좀 나았을까. 오른편은 바싹 닿은 건물 외벽만 보이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냥 트램 노선 중간에서 잠시 타보고 말 걸, 긴 기다림을 미리 알았다면 종점-기점-에서의 트램 탑승을 시도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트램 승차 35분 후 골목 사이에 나타난 카몽이스 광장에서 하차했다.

포르투갈 시인인 카몽이스의 이름을 딴 이 광장엔 카몽이스 동상이 있고, 멋진 건축물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카몽이스 광장 옆 시아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트램에 승차했던 마르팀모니즈역으로 다시 움직인 이유는 콘티넨테 때문이다.  

알파마 쪽엔 산타아폴리니아 기차역의 핑구도스-가깝지 않고 작음-밖에 없어서 이 지역 콘티넨테에 들르기로 한 것이다.

 

지하철 시아두역
734번 미니버스

포르투 시민들이 드나들던 콘티넨테보다는 작긴 해도 아폴리니아역 핑구도스보다는 훨씬 괜찮다.

Continente에서 해산물과 과일 등을 알차게 구입한 다음, 숙소 가는 734번 미니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것은 버스인가 놀이기구인가. 급출발과 급정거에 무시무시한 속력까지, 염려스럽고 안전하지 않은 20분이었다.

포르투갈 버스들의 속도 경쟁은 과거 우리나라 난폭 운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연한 듯 다들 거침없이 몰아댄다.

 

샐러드와 올리브
연어구이
쇠고기 요리

파두박물관 앞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장 본 식품들을 숙소에 들여놓은 후 어제 갔던 레스토랑 야외에 오늘도 앉았다.

어제 주문하지 않은 샐러드를 청했고 연어구이와 쇠고기구이, 빵과 올리브, 물과 맥주가 서빙되었다.

빵은 물론 샐러드가 매우 좋았고 메인 음식들도 역시 훌륭한 맛이었다.

 

벨렝 지구로 우릴 데려다 줄 728번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다.

기다리던 버스는 만석인지 다른 이유인지 정류장을 통과해서 그냥 빨리 지나가 버렸다.

오후 3시, 배차 시간도 안 지키면서 무정차 통과라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이젠 다른 방법으로 벨렝까지 가는수밖에 없다.

금세 도착한 735번 버스에 올랐고 Sodre에서 15E 버스로 환승했다.

트램인 15E는 간혹 버스로 변경되어 트램길 따라 운행되기도 하나 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도원 성당
수도원 성당

벨렝 지구는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서 포르투갈은 인도 항로를 발견했고 무역을 통해 부유해지도-1세기반 가량-도 했다.

인파 넘치는 이곳엔 중국인이 유난히 많고 독일어도 꽤 많이 들린다.

 

벨렝 지구의 첫 일정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마뉴엘 양식은 16세기에 수십 년간 항해도구, 밧줄, 산호, 조개 등으로 건축물을 장식한 포르투갈의 건축 양식으로,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부속 성당이 모두 마뉴엘 양식이라 한다.

 

우린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입장할 생각이 없었기에 리스보아 카드-입장료 무료 및 할인, 교통 무료-를 구입하지 않았다.

포르투갈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할 땐 입장 계획이 있었으나 이 수도원의 상세한 영상을 여러 번 접한 후엔 계획을 변경했다. 

마뉴엘 양식은 포르투갈 고유의 건축 양식이 아닌 고딕에 장식적 요소만 덧붙인 것이고, 조각이나 부조도 정교하지 않았다.

게다가 타 수도원과는 달리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수도원의 모습이란 것이 회랑과 중정이 전부였다.

아름답지 않은 건축물은 아니었으나 보고 싶은 건축물의 형태는 아니었기에 패스하기로 한 것이다.

 

직접 외관으로 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규모가 매우 크다.

평지에 건립되었기에 주변 공원은 물론 다른 건축물들과도 근사한 조화를 이룬다.

첨탑과 아치, 첨두아치가 어우러진 성당은 무료 입장이 가능했고 잠시 줄-길었으면 패스-을 서서 입장했다.

내부의 천장과 기둥은 마뉴엘 장식으로 덮여있고, 고딕 양식의 특성인 스테인드글라스와 볼트, 신랑과 측랑이 잘 드러난다. 

입구 쪽에 바스쿠다가마-리스본 판테온에 묘 있다 함-와 카몽이스의 석묘도 위치해 있는데 진짜 무덤인지는 모르겠다.

 

파스테이스드발렝
파스테이스드발렝
파스테이스드발렝

벨렝에 오니 왠지 마음이 급해진다. 해야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다음은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원조인 파스테이스드발렝에 가서 Nata 먹기.

두 곳에 대열이 있었고 그 중 짧은 줄에 섰으며, 신축된 실내에 앉아 Abatanado 2잔과 Nata 4개를 주문했다.

아곳 나타는 패스트리가 바삭거리기보다는 단단하고 딱딱한 식감이라 우리 입엔 파브라카다나타가 더 알맞은 맛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기념비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파스테이스드발렝에서 멀지 않은 발견기념비는 테주강변에 서 있다.

발견기념비는 범선을 본따 만든 기념비로, 탐험대의 항해를 후원한 엔리케 왕자 사후 500년인 1960년에 건립되었고,

뱃머리 맨 앞이 엔리케 왕자, 그 뒤 바스쿠다가마 등을 비롯해 30명의 인물들이 대양을 향해 나아갈 듯 조형되어 있다.

기념비 근처 광장 바닥에 그려진 세계지도엔 대항해시대의 항해 시기가 일지처럼 새겨져 있다.

 

말도 안되게 파란 하늘, 날씨가 모든 것을 다한 날.

코메르시우스 광장에선 멀리 보이던 4월 25일 다리와 예수상이 벨렝에서는 친근하게 가깝다.

 

테주강
벨렝탑

발견기념비에서 테주강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금세 벨렝탑이 보인다.

테주강 위에 세워진 벨렝탑은 선박을 통관하던 곳이고 대항해시대에는 선원들이 왕을 알현하던 장소였으며, 스페인 지배 시기에는

정치범과 독립운동가들을 가두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테주강에 일렁이는 파도는 벨렝탑에 닿아 끝없이 부딪치고 있다. 

 

벨렝탑 앞에서 15E 트램에 승차한 후 버스를 2번 더 타고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 9시, 잔치국수에 맥주와 와인을 곁들이며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를 음미하듯 감상한다. 

오늘 만난 리스본의 올드트램, 리스본의 시아두, 리스본의 테주강, 리스본의 벨렝...

시간이 흐르면 우린 어느 리스본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가장 많이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