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주일째, 이제야 시차 적응이 되나 보다.
게다가 어제 많이 걷지 않은 덕분에, 가뿐하고 쾌적한 아침이다.
오늘 행선지는 수정궁 정원-Jardins do Palácio de Cristal-으로, 숙소로부터 2.2km 거리다.
걷기엔 조금 멀었기에 지하철 볼량역 발매기에서 안단테 카드를 충전 후 200번 버스에 올랐다.
승객 몇 없는 시내버스는 넓지 않은 도로 위를 엄청난 속력으로 달린다.
교통 질서 준수 여부는 선진 시민의 기준 중 하나인데, 이 나라는 보행자도 운전자도 기준점에서 모두 탈락이다.
금세 도착한 수정궁 정원.
여행 기간 내내 맑던 날씨가 아쉽게도 딱 흐리다.
정원 정문에 들어서니 바로 포르투갈 국민맥주 슈퍼복-아마 스폰서-의 이름을 딴 아레나가 나타나 준다.
산책 중인 사람들이 거의 포르투 시민들로 보이는 정원, 여기 참 차분하고 한적하다.
이곳저곳 옮겨다닌다는 'Porto'라 쓰인 조형물, 요즘 여기서 쉬고 있었구나.
반가운 Porto는 수정궁 정원 한 켠을 기분 좋은 파랑으로 돋우고 있었다.
정원 곳곳을 여러 마리의 공작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몇 십 년 만에 보는 이 수컷들은 누군가를 부르는 듯 씩씩하면서도 애절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화려한 날개를 펼친 채 걸어다니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스의 번뜩이는 눈들은 지구에 사는 공작의 날개에 내려앉아 빛나는 유혹이 되었다.
여기도 예외 없이 갈매기 녀석들이 서식하고 있다.
구름이 걷혔다면 더 예쁠 도우루강. 수정궁 정원이 담은 강변도 참 멋지다.
수수하면서도 가꾼 이들의 정성이 가득한 이곳을 산책하는 내내 심신이 편안하다.
소란스럽지 않은 사람들, 나무와 꽃, 그리고 암수 공작, 갈매기, 오리, 닭 등이 휴식 같은 조화를 만들고 있다.
수정궁 정원으로 올 때와는 달리 303번 버스에 올랐다.
볼량역 아닌 Agosto역 쪽에 위치한, 우리가 사랑해 마지 않는 Continente를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Continente 야외테이블 쪽 집들이 이렇게 근사했나. 어느 새 갠 하늘, 에스프레소-포르투갈에선 Cafe-가 참 맛있다.
늘 그랬듯 신기한 눈으로 Continente에 수북히 쌓인 바칼라우-염장 대구-를 바라본다.
바칼라우는 포르투갈인들이 즐기는 식재료로, 수백 가지 조리법이 있다고 한다.
우린 바칼라우로 만든 음식을 두어 번밖에 먹지 않았으나 우리 입맛엔 바칼라우보다는 그냥 대구가 더 맛있고 좋다.
콘티넨테의 냉동식품 진열장에서 문어와 새우를 고르고, 오렌지와 미니바게트도 구입했다.
늦은 오후, 산타카타리나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상점에서 깔끔한 에스프레소잔 세트를 구입했다.
포르투에 온 후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에스프레소 잔 정도는 공수해줘야 한다.
포르투 도착 후 거의 매일, 숙소로 돌아오는 이 순간에도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포르투 건물과 주택 형태다.
건물 폭이 어떤 도시보다 좁은 것은 물론이고 건물에 부여된 번지 또한 독특하다. 한 건물에 번지 수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다.
유럽 많은 도시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홀수열, 한쪽은 짝수열로 번지를 매기는데 포르투는 숫자가 고르게 이어지지 않고,
예를 들어 115,119,123,127 또는 46,48,54,58 이런 식으로 중간중간 숫자가 푹푹 빠지기 일쑤다.
중간에 빠져서 사라진 번지 수는 건물 안쪽에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창문 1개가 1집인 경우가 많다 보니 건물의 폭이 엄청나게 좁고, 깊이는 끝없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이 나라는 어느 특정 시기에 건물 보유세를, 도로에 맞닿은 면적이나 길이로 매겼던 것일까.
문어와 새우를 버터에 굽고, 양송이버섯과 올리브를 곁들였다.
포트와인이 잘 어울리는, 포르투의 마지막 밤이다.
'표류 > 2023 포르투·리스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12일 (수) : 가장 오래된 동네 (0) | 2023.07.26 |
---|---|
4월 11일 (화) : 리스본 가는 길 (0) | 2023.07.20 |
4월 9일 (일) : 포르투의 휴일 (0) | 2023.07.19 |
4월 8일 (토) : 히베이라와 가이아 사이 (0) | 2023.07.18 |
4월 7일 (금) : 포르투 속 포르투 (0) | 2023.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