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12일 (수) : 가장 오래된 동네

숙소 거실창에서 본 바깥

여행지가 바뀌어서인지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맑고 푸른 아침, 어제 저녁과 똑같은 메뉴의 한식을 챙겨먹고 알파마 지역을 걸어볼 예정이다.

그런데 가파른 숙소 계단을 3층-우리식으론 4층-까지 오르내리기가 참 걱정스럽다.

이젠 계단에서 넘어지면 큰일 나는 나이라, 우린 난간 손잡이를 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간다.

 

알파마 지역
리스본 대성당
알파마의 비탈 도로

10시, 숙소를 나와 알파마 지역을 마음 가는 대로 걷는다.

걷다보면 알파마의 가파른 언덕과 끝없는 계단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펼쳐진다.

1147년 건립된, 딱 봐도 외관이 로마네스크 양식인 리스본 대성당은 지금 공사 중이다.

 

1755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이었기에 성당마다 미사가 진행되던 시각, 리스본에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다.

리히터 규모 9에 해당하는 어마무시한 지진, 10m 넘는 해일까지 발생시킨 이 리스본 대지진으로 도시 건물의 85% 이상이 파괴되었고

당시 리스본 시민 중 6만명-정확하지 않음-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참혹했던 지진에도 견고한 암반 덕분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알파마는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언덕 꼭대기 조르주성과 테주강 사이의 언덕에 사람들은 집을 짓기 시작했고, 리스본 대성당도 지진에 무너지지 않았다.

 

산투안토니우 성당
산투안토니우 성당
산투안토니우 성당

리스본 대성당이 대지진에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우린 그저 대성당 앞을 지나기만 한다.

참담한 역사를 지켜보았을 대성당이 왠지 안스럽고 대견하였으나 내부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외관이 너무 평범하고 굳세보이기만 해서인지, 두어번 경험해본 포르투 성당들로 그 안을 미루어 짐작했기 때문인지 암튼 이후에도

리스본 대성당은 오다가다 스치기만 하는 성당이 되었다.

 

대성당 근처에 아름다운 산투안토니우 성당이 등장했다.

리스본 수호성인 안토니오의 생가에 건립되었다는 이곳은 뛰어난 곡선미가 돋보이며 아줄레주 장식도 멋지다.

성당 샵에서 남편은 성당 주교가 정성껏 축성을 올린, 맑고 투명한 묵주를 받아들었다.

 

코메르시우 광장과 개선문
코메르시우 광장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테주강은 강이라고 부르기엔 엄청나게 넓은 강폭을 지니고 있다.

테주강에 접한 드넓은 광장은 '무역'이란 뜻의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광장 앞 테주강 돌계단이 상인들이 오가던 부두였다고 한다.

코메르시우 광장은 원래 궁전이 있던 자리인데 1755년 대지진과 해일로 궁전이 파괴된 후 도시 계획에 의해 광장이 되었고,

광장 북쪽엔  11m 높이의 여섯개 기둥 위에 바스쿠다가마 등이 조각된 개선문이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 테주강
테주강 : 부두의 흔적
테주강

오, 테주강에 오니 알파마엔 없는 갈매기가 있다.

너무 멀어 강 건너편이 잘 보이지 않는 테주강은 바다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 내음도, 보이는 광경도 딱 대서양 길목이다. 

 

테주강의 정취에 취한 사이, 흰구름이 잿빛 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테주강변을 따라 걸어 숙소 근처 알파마 지구 초입에 자리한 레스토랑의 야외에 앉았다.

 

숙소 근처 레스토랑
생선구이과 오징어구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하는 현지 분위기 그대로인 식당이다.

아주 깔끔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알파마 지역과 맞춤형으로 아주 잘 어울린다.

영어로 소통 가능한 서버에게 맥주와 생선구이, 오징어구이를 주문했는데, 곧 만석이 되고 대기줄도 생겼다.

메인 요리는 물론 맥주는 물론 빵과 곁들여진 감자도 다 맛있다. 꾸미지 않은 맛, 리스본의 맛이다.

 

마을 빨래터
숙소 공동출입문

잠시 쉬려 숙소로 가는 길, 골목에 있는 동네 공동 빨래터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포트투갈어를 내뱉는 젊은 여자 가이드가 너덧 명의 여행객 앞에서 애절한 멜로디를 쏟아낸다. 파두였을까.

 

숙소 건물의 공동현관 왼쪽엔 테이블을 펼쳐놓은 채 오가는 여행자를 향해 '진지냐'를 외치는 할머니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콜릿잔이나 일반잔에 진저주-체리주-를 판매하는 것이다.

리스본 거리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우린 거리에서 잔술을 마시진 않았다. 

 

알파마 지구
포르타스두솔 전망대
포르타스두솔 전망대

알파마 숙소 앞 골목길은 워낙 좁아서 말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퍼진다.

휴식 중에도 끊이지 않는 음성들, 그래도 밤엔 떠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 소란하지 않다.

 

오후 3시, 알파마의 계단들을 올라 포르타스 두솔 전망대와 산타루치아 전망대에 섰다.

날씨가 썩 좋은 편이 아닌데도, 여행 성수기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흐린 하늘 아래, 주황 지붕과 바다 같은 테주강이 근사한 광경을 자아낸다. 하늘이 파랬다면 더 좋았겠지.

포르투보다 리스본이 더 좋다는 남편, 나도 마찬가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달리 리스본 대성당 앞으로다.

포르투처럼 트램과 버스들이 심한 매연을 내뿜고, 포르투와 다르게 리스본엔 흑인들이 정말 많다.

리스본이 중심이 된 포르투갈 대항해시대 노예 무역의 흔적이다.

 

위산 역류로 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계속돼서 여러 번 약을 복용했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는 평온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