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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8월 17일 (토) : 산티시마 안눈치아타와 산조반니 세례당

새벽 5시가 넘어 눈뜬 토요일.

밤새 전기모기향이 작동했건만 다리엔 모기에게 뜯긴 자국들이 선명하다.

다른 집들도 창가에 소용돌이형 모기향을 켜놓은 걸 보면 모기가 많은 것은 이 숙소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침 일찍 아들과 톡을 하며 안부를 묻고, 된장찌개 성찬을 차려 식사를 했다.

납작복숭아와 아이스커피까지 챙겨먹고는 오전 8시 20분, 지난 이틀간 신었던 운동화 대신 높지 않은 통굽 샌들과 함께 나선다.

 

산티시마안눈치아타성당(입구.왼쪽)와 피렌체고아원(가운데)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산마르코 수도원 앞을 지나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에 도착했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과 피렌체 고아원이 자리해 있는 이 광장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부터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 4인 가족이 스냅사진을 찍는지 사진기사와 함께 아주 분주하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는 거룩한 수태고지라는 뜻이라,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은 단어 그대로 성스러운 수태고지 성당이다.

1250년경에 최초로 건립되었으며,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을 설계한 미켈로초가 15세기에 재건축했다고 한다.

성당 입구에 로지아처럼 생긴, 나르텍스-성당 현관.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공간-라기엔 좁은 포르티코로 발을 들여 놓았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서약의 회랑)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서약의 회랑)

입구에 들어서니 성당 건물로 바로 연결되지 않고 '서약의 회랑'이라 불리는 공간이 나온다.

예전엔 성당 앞쪽에 '아트리움'이라는 천장 없는 사각 정원이 지었고, 그 다음에 나르텍스Narthex와 성당을 건립했다.

안눈치아타 성당은 포르티코에 이어진, 지붕 있는 회랑을 통해 성당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예수의 탄생
성모 승천
방문

사면의 회랑엔 아치 기둥 안쪽마다 성서 속 주요 사건과 이야기를 담은 15-16세기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방문'은 성모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자 사촌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에피소드를 화사하게 묘사했는데,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태중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중앙제대
성삼위일체 성히에로니무스 채플

성당 신랑에 들어서는 순간, 수수한 외관과는 달리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내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쏟아졌다.

이 성당은 처음 일정엔 없었던 것이고 '안눈치아타'라는 이름 때문에 나중에 추가한 일정이라 사전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돔형 천장화 아래 중앙 제대 좌우엔 작은 십자가를 쥔 성필립보와 해골을 들고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 조각상이 서 있다.

 

수태고지 채플의 발다키노
발다키노의 수태고지

성당 출입문 안쪽 왼편엔 성당 이름처럼 수태고지 채플이 위치해 있으며 발다키노로 그곳을 감싸고 있다.

채플 안쪽 벽면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했음을 마리아에게 알리는 수태고지 그림이 있는데,

마리아보다 약간 낮게 자리한 가브리엘의 표정과 몸짓이 겸손하고 다소곳해 보인다.

 

피렌체고아원
피렌체고아원 : 베이비박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

9시가 넘은 시각, 햇살 내리쬐는 광장에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물인 피렌체 고아원은 브루넬레스키의 설계로 피렌체 견직 길드에서 설립하여 1445년에 개관했으며, 

1875년 폐관되어 현재 박물관과 시립유치원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안눈치아타광장에서부터 Via dei servi를 걸으면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두오모성당의 돔-쿠폴라-이 고운 형체를 드러낸다.

그 길의 끝에 이르러 두오모광장에 서면 입장 대기줄이 어마어마한 두오모성당 서쪽에 산조반니 세례당이 마주하고 있다.

 

Via dei servi
산조반니 세례당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서면 속세의 티끌를 씻기 위해 성수반-성수그릇-의 물로 성호를 긋는데, 이는 개인적인 세례다.

크리스트교-카톨릭-에서 세례는 영혼의 때를 씻어내는 의식이고, 신자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은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당이라는 곳은 세례 의식만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며 세례당이 없는 경우엔 성당 내부에 세례실을 두었다.

세례당과 세례실에는 예수의 세례 장면을 표현한 성화나 성상이 있고, 과거 실제 세례 의식에 사용하던 수조가 있다. 

 

산조반니 세례당은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의 이름을 딴 세례당이다. 

1401년에 공모전을 개최하여 작가를 선정한 북쪽 청동문은 브루넬레스키를 누른 우승자 기베르티가 20여년간 제작했고,

성직자가 신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 들어가는 산조반니세례당 남쪽 문은 안드레아 파사노가 1336년에 완성했다.

산조반니세례당 세 출입문의 원본은 두오모오페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세례당에 부착된 문들은 모두 복제본이다.

 

산조반니 세례당 남문에는 세례자 요한의 일생이 담겨 있다.

왼쪽 문과 오른쪽 문은 모두 28개 판넬로 구성되어 있으며 맨 윗줄부터 5번째 줄까지는 세례 요한의 삶을 새겨 넣었다.

세례 요한의 삶은 왼쪽 문 1번째 줄-순서:좌우-부터 5번째 줄까지 읽은 후 오른쪽 문 1번째로 옮겨가 5번째 줄까지 감상하면 되고

이어서 양쪽 문의 아래편 6-7번째 줄에 있는, 의인화하여 새겨넣은 덕목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된다.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왼쪽 1,2,3번째 줄)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왼쪽 4,5번째 줄)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왼쪽 6,7번째 줄)

남문의 왼쪽 문 1번째 줄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던 제사장 사가랴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는 장면-왼편-과

자식의 탄생을 불신한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는 장면-오른편-이 표현되었다.

2번째 줄은 마리아가 사가랴 아내이자 사촌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예수와 요한의 태중 만남이 이뤄지는 모습-왼편-과

세례 요한의 탄생-오른편-을, 3번째 줄은 세례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는 장면-왼편-과 사막에서의 어린 세례 요한-오른편-을 부조했다.

 

4번째 줄은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에게 설교하는 모습-왼편-과 사람들에게 예수라는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장면-오른편-을,

5번째 줄 패널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왼편-과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오른편-을 부조했으며,

6-7번째 줄에는 시계 방향으로 희망, 믿음, 절제, 강건을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오른쪽 1,2,3번째 줄)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오른쪽 4,5번째 줄)
산조반니세례당 남문 (오른쪽 6,7번째 줄)

남문의 오른쪽 문 1번째 줄에는 세례 요한이 이복동생 아내인 헤로디아를 취한 헤롯왕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장면-왼편-과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는 장면-오른편-이 표현되었다.

2번째 줄은 성인들이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을 방문하는 모습-왼편-과 한편, 예수가 절름발이 환자를 치유하는 장면-오른편-을,

3번째 줄은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추는 장면-왼편-과 살로메의 청에 의해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는 모습-오른편-을 부조했다.

 

4번째 줄은 세례 요한의 목을 헤롯왕에게 가져가는 모습-왼편-과 헤로디아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보여주는 장면-오른편-을,

5번째 줄은 성인들이 죽임 당한 세례 요한의 시신을 옮기는 모습-왼편-과 세례 요한의 장례식 장면-오른편-을 부조했으며,

6-7번째 줄 패널에는 시계 방향으로 자비, 겸손, 신중, 정의의 덕목을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새겨 넣었다.

 

동쪽 문 위 조각상 : 예수의 세례 (원본은 박물관에)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순서는 위쪽 왼편부터(위왼-위오른-아래왼-아래오른/ 1,2열)

두오모 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세례당 문은 화려하고 섬세하기 이를데없는 동쪽 문이다.

산조반니 세례당의 북문 제작을 마친 로렌초 기베르티가 10개의 패널에 구약성서 이야기를 담아 1425년부터 1452년까지 제작했다.

 

1열 왼편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다.

아담과 이브의 창조, 선악과를 먹는 이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표현했다.

허구적 픽션 속에 구약이 창작되던 시기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과 부계 사회의 특징이 드러난다. 

1열 오른편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농부인 형 카인과 양치기 동생 아벨을 묘사했으며 아벨의 제물을 질투하는 카인의 모습과

카인이 아벨을 몽둥이로 쳐서 죽이는 모습을 부조했다.

 

2열 왼편은 '노아' 이야기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 후 노아의 자식들의 모습 및 최초로 포도주를 만든 노아가 술 취한 장면을 새겼다.

2열 오른편의 주제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삭의 출생과 이삭의 희생을 다뤘다.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 (3열 왼편)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야곱의 아들 요셉 (3열 오른편)

3열 왼편 패널의 이야기는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다.

이삭의 장자 에서-쌍둥이 형-는 털이 많고 야곱-쌍둥이 동생-은 털이 없는 체질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먼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리려 하자 야곱은 양털옷으로 에서처럼 꾸며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다.

 

3열 오른편은 '야곱의 아들 요셉' 이야기다.

배다른 형들의 질투로 요셉은 우물에 빠질 뻔-오른쪽 위-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간다.

애굽 총리가 된 요셉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곡식를 빌려가던 배다른 형들의 짐에 은잔을 숨긴 후 도둑 누명-왼쪽 아래-을 씌운다.

요셉은 과거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제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다시 가족-왼쪽 위-에게 돌아온다.

1443년 정치적으로 추방된 코시모 데 메디치가 피렌체로 귀환 후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승리를 빗댄 장면이라 한다.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모세 (4열 오른편)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여호수아 (4열 오른편)

4열 왼편 패널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세'다.

왼쪽엔 홍해를, 오른쪽 위에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모습을 부조했고, 아래엔 성상숭배를 하며 동요하는 유대인들을 새겼다.

4열 오른편 패널 이야기는 '여호수아'로, 모세의 사후 후계자 여호수아가 유대인을 이끌고 제리코성을 함락시키는 이야기를 담았다.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다윗 (5열 왼편)
산조반니세례당 동문 : 솔로몬왕과 시바여왕의 만남 (5열 오른편)

최하단인 5열 왼편은 '다윗' 이야기로, 다윗이 돌팔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 목을 베는 장면을 표현했으며 5편 오른편 패널의 주제는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만남'으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동방에서 찾아온 시바 여왕을 묘사했다.

1439년 피렌체공의회에서 로마카톨릭교회와 그리스정교회의 만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새겨넣은 장면이라 한다.

 

산타마리아델피오레 대성당(두오모성당)
조토의 종탑

산타마리아델피오레 대성당 주변엔 사람들이 엄청나게 운집해있고, 쿠폴라와 종탑 입장줄보다 긴 대기줄은 무료입장인 대성당 줄이다.

두오모성당엔 작년 5월은 물론 피렌체에 올 때마다 입장했는데, 이렇게나 긴 대기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이른 아침이든 오후든 상관없이 최소한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듯, 이러한 대기는 절대 사양이라 성당 내부 입장은 포기다.

 

산타마리아델피오레 대성당, 즉 피렌체 두오모성당의 꽃은 쿠폴라-돔-다.

새 성당 건립이 완성된 후 150년만에야 올린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400만개의 벽돌을 헤링본 패턴-장력 이용-으로 쌓아올렸다.

돔의 내벽과 외벽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 무게를 줄였고 현재 쿠폴라를 오르는 계단이 놓여있는 그 공간 폭은 1.4m다.

많은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돔을 완공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그후 설계도와 드로잉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한다.

 

대성당은 화려한 외관-사실 현재의 정면 파사드도 1887년에야 완성-에 비해 내부는 실망스러울 만큼 상당히 소박한데,

다른 성당과는 달리 귀족과 부자들의 기부와 후원을 받지 않고 피렌체 시민들의 헌금으로만 건립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오모성당엔 그 흔한(?) 유력 가문의 예배당이나 묘가 없고, 피렌체에 공헌이 있는 인물과 성직자의 묘만 자리해 있다.

 

과거 팬데믹 시대의 흔적

오전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과거 팬데믹 시대-페스트-의 흔적인 비대면 와인 판매 창구를 마주했다.

라볶이로 점심을 먹고 쉬다보니 기온 오르는 것이 온몸으로 체감된다. 에어컨 없는 숙소의 오후 4시는 여전히 33도다.

오후 5시 20분, 피렌체 버스티켓을 미리 사두기 위해 타바키 여러 곳을 찾았으나 구글맵 안내와는 달리 모조리 문을 닫았다.

다행히 문 연 타바키가 있어 문의하니 산마르코수도원 앞 발매기에서 구입하란다. 낡은 기계에서 교통티켓 6장을 구입했다.

 

이제 저녁 피자를 사러 피자리아로 향한다.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오픈 시각과 다르면 어쩌나 하면서 도착한 식당은 다행히 열려 있다.

풍기프로슈토 피자와 토마토소스 없는 치즈마르게리타를 포장했고 pam에 들러 오렌지주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맛있는 치맥이고, 깊이 얕고 낡은 세탁기는 최선을 다해 제 할 일을 한다.

예상보다 더운 피렌체, 시간을 견디는 지혜를 불러내야 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