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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8월 19일 (월) : 아레초, 인생은 아름다워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역

오전 5시반, 서늘한 아침에 눈을 떴다. 

북엇국과 멸치볶음, 고추참치 등과 케이크, 쿠키, 커피로 아침식사를 챙긴 후 8시, 산타마리아노벨라역으로 향한다.

SMN역 발매기에서 아레초 가는 티켓을 발급한 다음, 내일 입장할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외관을 둘러보았다.

 

아레초 기차역
기차역 앞 귀도 다레초 조각상
귀도 다레초에 대하여

돌아온 기차역, 9시 조금 넘어 피렌체를 출발한 기차는 10시 6분, Arrezzo에 도착했다.

살짝 흐리지만 예상대로 덥지 않은 날씨, 어제처럼 오늘 최고 기온도 29도로 예보되어 있다.

맑지 않은 날임을 알면서도 아레초 당일치기를 오늘로 결정한 이유는 높지 않은 기온 때문이다.

시에나와 피사, 아씨시를 다녀온 경험이 있기에 지난 금,토요일처럼 뜨거운 평일이라면 굳이 피렌체 근교 여행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레초역이 참 간결하고 단아하다.

역 앞 넓지 않은 광장 중앙에서는 음계를 만든 귀도 다레초-귀도 모나코-의 석상이 오가는 여행객을 지켜보고 있다.

 

산프란체스코 성당
산프란체스코 성당
산프란체스코 성당

여행 시작 전엔 더운 날씨로 인해 아레초 여행을 확정할 수 없었기에 아레초에 대한 예습은 거의 하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피아차 그란데 Piazza Grande로 가는 길, 예기치 않게 산프란체스코 성당에 이르렀는데 꽤 비싼 입장료가 책정되어 있다. 

입구에서 바라본 성당은 바실리카식 피어-벽-와 평평하고 높은 목재 천장, 로마네스크식 아치, 고딕 첨두아치가 혼재되어 있다.

성당 내부 프레스코화는 복원이 되지 않은 채 훼손되어 있고 측랑은 신랑의 왼편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다.

 

피아차 그란데 Piazza Grande

드디어 아레초의 최중심 피아차 그란데에 다다랐다.

피아차 그란데라는 이름과는 달리 크진 않지만, 살짝 경사진 광장은 성당과 박물관과 궁전 등 오래된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운치를 더한다.

13세기 초에 건립되고 16세기에 개조된 이 광장, 시에나 캄포광장 못지 않게 정말 예쁘다.

 

피아차 그란데(왼쪽은 성당, 중앙은 박물관)
피아차 그란데
광장 주변 건물 벽면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아레초는 1997년에 개봉된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지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수상했고 감독이자 남주인 로베르토 베니니와 여주가 실제 부부이기도 하다.

피아차 그란데를 중심으로 재미있고 코믹하게 시작되는 영화는, 중반부터는 무거운 주제를 부성애와 짙은 감동으로 녹여냈다.

광장을 보고 있으니 '인생은 아름다워' ost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듯하다. 

 

또한 피아차 그란데에서는 중세에서 시작된 마상 시합-Giostra del Saracino-을 재현하는 행사가 있다.

매년 6월과 9월에 2차례 열리며, 호두나무나 단풍나무로 만든 트로피를 두고 각 지역이 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피아차 그란데
피아차 그란데
피아차 그란데 : 카페 바사리

광장이 잘 바라보이는 카페 바사리에 앉았다.

아레초 태생의 화가이며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건축가로서의 흔적을 많이 남겼으며 '미술가 열전(1550)'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200여명에 이르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기록했다. 

카페 바사리가 자리한 궁전과 회랑도 조르조 바사리가 만들었다.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궁전과 회랑
회랑 기둥의 조르조 바사리 부조
페트라르카의 집

이 크지 않은 도시에 조르조 바사리가 살았던 카사 바사리도 있고 13세기 시인인 페트라르카의 집도 있다.

내부 전시실은 입장하지 않고 안쪽 작은 정원까지만 들어가보았는데, 외관이나 정원은 그저 평범하고 소박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정립한 귀도 다레초-귀도 모나코-의 집엔 창 위 외벽에 귀여운 악보가 부착되어 있다.

 

귀도 다레초(또는 귀도 모나코)의 집
아레초 대성당 맞은편 : 시청인 듯

구시가의 또다른 중심, 아레초 대성당은 수많은 계단 위 지면에 솟아올라 위치해 있다.

13세기부터 건립된 대성당은 외벽으로 난 창과 정면 파사드 세 출입문의 첨두아치볼트가 고딕 초기 양식을 보여준다.

 

아레초 대성당
아레초 대성당
아레초 대성당

굵은 다발 기둥을 기준으로 신랑과 측랑이 나뉘어져 있는 대성당, 입구에 들어서니 감미로운 플룻 연주가 울려퍼진다.

여성 연주자가 자아내는 고운 선율은 우리가 성당에 머무는 내내 꿈결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대성당은 단단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 내부가 프레스코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아레초 대성당 : 측랑
아레초 대성당의 측랑 : 마리아 막달레나, 1459
아레초 대성당의 세례실 : 그리스도의 세례

대성당을 나와 비탈길을 오르내리고 거리를 걸으면서 점심식사 할 식당을 찾아보는데, 마땅한 데가 없다.

아레초 구시가 레스토랑은 월요일이 휴무인 곳이 많았다.

 

12시 40분, 영업 중인 레스토랑의 야외에 앉았다.

서버는 꽤 바빠보였고 주문까지 10분, 음식을 받기까지는 20분이 더 걸렸다.

우린 대기 없이 착석했으나 식사를 하는 동안 골목에 긴 줄이 늘어섰다. 조금만 늦었어도 대기열에 합류할 뻔했다.

 

13세기 초반에 지어진, 어느 한쪽이 부서진 듯한 형태의 도메니코 성당은 파사드 출입문이 단 하나다.

작아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상당한 공간감을 보여주고 있으나 벽면의 성화들은 온전한 게 거의 없었다.

중앙 제대 위쪽의 거대한 십자가는 조토의 스승인 치마부에가 제작한 것이라 한다.

 

도메니코 성당
도메니코 성당
도메니코 성당 중앙 제대 위 : 치마부에 십자가

이제 기차역으로 돌아갈 시각이다.

역으로 가기 위해 아레초 성벽 따라 성문을 통과하려는데 성문 한가운데에 무시무시한 괴물 '키메라' 청동상이 있다.

아레초의 '키메라'는 몸통에 사자 머리가 붙어있고 등 위엔 또하나의 염소 머리 그리고 꼬리엔 뱀의 머리가 나 있다. 

키메라는 부상을 입었는지 왼쪽 다리와 염소 목에서 연신 피가 흐르고 있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키마이라'로 등장한다.

 

https://stelala.tistory.com/10614294

뤼키아에 출몰한 괴물 키마이라는 머리는 사자와 산양을 합친 것과 비슷했고 꼬리는 용을 닮았다.

이 괴물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기에 왕은 이를 퇴치할 용사를 구했다.

그러나 키마이라가 뿜어대는 불길 때문에 용사들은 키마이라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타 죽었다. 그때 나타난 영웅 벨레로폰.

아내와 벨레로폰 사이를 의심한 뤼키아왕의 사위가 뤼키아왕에게 벨레로폰을 죽여달라는 편지와 함께 그를 보낸 것이다. 벨레로폰은

뤼키아왕으로부터 키마이라를 없애라는 청을 받고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황금 고삐를 얻어 천마 페가소스를 지휘하여 키마이라를 물리친다.

 

아레초의 키메라 : 65cm*120cm (세로*가로)
아레초 성벽

아레초역에서 오후 3시 39분 출발하는 열차 2층에 탑승했고 오후 4시 50분 SMN역에 이르렀다.

숙소 근처 Pam에 들러 쇠고기, 대구, 요거트, 납작복숭아 등을 구입하여 오후 5시반 숙소에 도착했다.

낡디낡아 시간이 흐를수록 앞툭튀가 되는 세탁기를 돌려두고 쇠고기와 버섯구이, 검은빵과 올리브에 맥주를 곁들였다.

 

피렌체의 한여름이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