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미술관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이동한다.
준비해온 자료를 살펴보니, 우리를 기다리는 작품들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1층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나란히 전시되어있는 3개의 조각상으로, 성프란체스코와 성카타리나 그리고 Fama 여신이다.
파마Fama-영어fame-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소문과 명성의 여신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소문을 의인화한 것이다.
카톨릭 성인들과 그리스로마신화 속 여신이 곁을 나누며 가지런히 놓여있으니 참 흥미롭다.
이 방대한 작품들을 모두 눈에 넣을 순 없으니 우린 선택을 해야 한다.
B4 전시실에서 조반니 벨리니가 그린 성히에로니스를 만난 후 B8 전시실에서는 베르니니가 만들어낸 라우렌시오를 만났다.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는 타오르는 불꽃에 놓인 석쇠 위에서 순교하는 라우렌시오-로렌초-를 섬세하게 조각한 작품이다.
C전시실들엔 반다이크,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루벤스, 베르니니, 라파엘로 등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자화상이 걸려있다.
다양한 회화 작품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라파엘로는 미소년같이 맑고 화사한 모습으로 스치는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고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조각가 베르니니는 어두운 배경 속에서 깊은 고뇌 어린 정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D4 전시실엔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의 화가 파르미자니노가 있다.
이상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그 끝자락에 나타난 마니에리스모는 왜곡, 변형, 과장, 기교의 끝판왕이다.
파르미자니노는 '목이 긴 성모'에서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길쭉하게 표현하여 비현실적인 비례를 보여준다.
아기예수는 성모 무릎에 떨어질 듯 걸쳐있고 눈 감은 모습인지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아픈 건지 매우 불안한 모습이며,
성모마리아의 발 아래에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두 개의 방석이 겹쳐 있다.
그림의 배경도 묘하다. 성모마리아의 오른쪽 뒤 공간은 실내로 보이는 왼쪽과 이어지지 않고, 멀리 기둥 하나가 그려져 있으며
기둥 앞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다.
'성모자와 성인들'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세례요한과 그의 아버지 사가랴 그리고 향유병을 들고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아기예수와 막달레나는 지나치게 창백한 모습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 그림의 배경에도 우뚝 솟은 기둥 하나와 고대 신전-제사장 사가랴 관련일지도-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나타난다.
D14 전시실에서는 폰토르모와 로소 피오렌티노를 만난다.
프랑스 카르투지오 수도원 식당을 장식했던 폰토르모의 '엠마오의 저녁식사'는 그곳 수도사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부활한 예수는 여행자 복장으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제자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가 빵을 나누며 축사를 하는 모습과 몸짓을 보고서야 그리스도임을 알아차린다.
예수 머리 위쪽에는 '섭리의 눈'-삼각형 안의 눈과 뻗어나가는 선. 세상을 보는 눈. 삼각형은 삼위일체를 의미함-이 있고
식탁에는 투명유리로 된 병과 잔 그리고 은빛 금속으로 된 접시와 주전자가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개와 고양이도 등장한다.
마니에리스모 화가 로소 피오렌티노는 '성요한'에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동작을 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표현했고
'성모자와 성인들' 속 인물들은 그 표정과 몸짓을 과장되고 기괴하게 그려놓았다.
'류트를 연주하는 천사'는 화가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천사가 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서정성과 상상력을 담아 표현하였다.
류트-16~18세기에 사용된 현악기-, 천사의 붉은 뺨과 금발머리, 아리따운 날개가 서로 멋진 조화를 이룬다.
코시모1세 초상화, 위대한 로렌초의 초상, 코시모 데 메디치 초상화는 왕조의 전당이라 이름 붙인 D15 전시실에 걸려있다.
코시모1세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동생인 로렌초의 증손자로, 코시모 데 메디치 가문의 대가 끊어진 후 토스카나대공국을 다스렸다.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위대한 로렌초의 초상'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사후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
로렌초를 교양있고 총명한 지도자로 묘사했으며 폰토르모의 '코시모 데 메디치 초상화'와 동일한 형태로 구상했다.
조반니 디 비치, 코시모 데 메디치, 로렌초 데 메디치로 이어진 메디치가를 빼놓고는 피렌체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은 신뢰 경영를 바탕으로 겸양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리더십을 발휘했고 인문학을 기초 삼아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예술가의 후원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 않았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사후 국부로 추앙되었다.
드디어 베네치아화파 화가들이 등장했다.
조반니 벨리니의 제자 조르조네의 '모세의 시련'과 '솔로몬의 심판'은 배경을 중시한 베네치아 회화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조르조네는 티치아노의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했는데, 최초로 캔버스-배 돛 만드는 천-에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르조네에 비해 '회화의 군주'라는 명성을 얻은 티치아노는 천수-88세쯤-를 누렸다.
D23 전시실, 이곳도 관람객이 많았는데 특히 단체투어객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서 사진을 찍었다.
이 전시실엔 우피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와 나란히 걸려 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우르비노 공작인 구이도발도2세 델라로베레가 당시 12살인 줄리아 바라노와의 결혼기념으로 주문한 작품이다.
비너스의 오른손에는 즐거움의 상징이자 여신의 상징인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는데 발칙한 자세와 도도한 눈빛이 인상적이며
침대 발치의 잠자고 있는 강아지는 결혼 생활의 충실함과 순종을 상징한다.
베네치아화파 중 메이저인 듯 마이너스러운 다작 화가 틴토레토는 D25전시실에 있다.
시선을 잡은 것은 그리스신화의 에피소드를 다룬 '레다와 백조' 그리고 구약성서 이야기인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이다.
그리스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는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레다에게 접근-늘 그러하듯-하였고 레다는 2개의 알을 낳는데,
각각의 알에서 태어난 쌍둥이 중 하나가 바로 트로이의 헬레나이다.
티치아노 제자인 베로네세의 그림들은 '성 유스티나의 순교'를 비롯하여 D26에 많이 걸려있다.
유스티나는 네로황제 때 가슴에 칼을 맞아 순교했는데, 그림 속 아라비아상인과 흑인은 16세기 베네치아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보여준다.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나 성품은 악마스러운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E전시실에 모여 있다.
'이삭의 희생'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함으로써 순종을 시험한 구약성서 내용을 담았다.
화가는 이 이야기의 결정적인 장면을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늙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하느님이 보낸 천사가
그를 막으며 아들 대신 제물로 바칠 양을 가리킨다. 카라바조는 천사를 아브라함 옆에 배치하여 인간처럼 친밀하게 그렸다.
강렬한 표정의 '메두사'는 나무방패 위에 그린 입체적 회화로, 수많은 뱀으로 구성된 머리카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그리스신화 속 디오니소스인 '바쿠스'는 빈민들의 고단한 삶을 표현한 그림이다.
상한 과일, 술병과 술잔, 지친 듯 모호한 표정 그리고 손에 든 검은 리본-소년 남창-, 다 애틋하고 절절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디트도 성화의 인기 소재다.
유대 산악도시에 살던 유디트는 아시리아 군대가 침략하자, 치장을 하고 아시리아군에 들어가 환심을 산 후 연회를 즐긴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와 단둘이 남게 된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하여 잠든 틈을 타서 시녀와 함께 그의 목을 벤다.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아버지 오라치오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의 동료화가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되고 분노한 아버지의 고발로 법정에 서게 된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 가해자 얼굴을 홀로페르네스의 모습으로 묘사했기에 비장하고 전사적인
유디트로 표현한데 비해, 루벤스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속 유디트는 우아하고 화사하다.
우피치에서 시간을 보낸지 4시간이 훌쩍 넘었다.
수많은 작품을 보기엔 사실 부족한 시간이었고, 게다가 정말 감상하고 싶었던 몇 작품-조반니 벨리니 '신성한 우화', 마리오토
알베르티넬리 '방문', 로렌초 로토 '수산나와 장로들'-은 출타 중이거나 찾지 못해 놓치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다.
디저트가게 폼피에서 티라미수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여름 햇살은 뜨겁고 거리를 채운 인파는 엄청나다.
숙소로 돌아와 검은빵과 치즈, 주스, 티라미수를 챙겨먹은 후 잠들었는데, 선풍기론 이겨내지 못하는 더위에 잠이 깨고 말았다.
예전에 왔던 8월 중순의 피렌체는 뜨겁지 않았는데, 확실히 지구는 아프고 곳곳이 기후 위기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으나 우리가 원한 '메뉴 델라 비스테카'는 주문할 수 없었다.
주인장은 도축장에 문제가 생겨 쇠고기를 납품 받지 못했고 쇠고기를 제외한 음식만 주문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다른 식당을 찾는 대신 이곳에서 다른 음식을 주문했고, 특별하진 않으나 괜찮은 맛이었다.
어제 갔던 까르푸 대신 오늘은 Pam으로 가보았다.
까르푸와 팜, 물가가 비슷했는데 이쪽이 피렌체 중심 관광지 쪽이라 그런지 마트 물가가 저렴하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창문을 열어 서늘해진 바람을 맞으며 남은 날들의 일정을 헤아렸다.
그런데 모기가 많다는 리뷰를 미리 보았기에, 모기향 훈증기와 매트를 준비-숙소에도 비치됨-해 와서 실내에 켜두었으나
여름이 더워진 것만큼 피렌체 모기들도 강인해졌나 보다.
피렌체 모기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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