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이 되나 했으나 그럴 리가, 새벽 3시반에 눈이 떠졌다.
일기예보를 고려하여 피렌체 일정을 변경하기로 하고, 된장찌개와 계란버섯구이 그리고 아이스커피와 납작복숭아로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모기가 쏘아붙인 흔적이 팔과 다리에 30군데쯤 되나 보다. 밤새 거실과 침실에 전기모기향을 켜놓았는데, 도대체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혈액형이 동일한데도 말이다.
오전 8시, 구시가로 향한다.
하늘엔 구름이 빼곡하고 두오모 광장엔 토요일인 어제보다 인파가 적어 한적하다.
관람객은 두오모성당에 입장할 수 없는 일요일이라, 매일 끝없던 성당 입장 대기줄이 전혀 없으니 그럴수밖에.
덥지 않은 일요일 아침, 오르산미켈레에 이르러 외관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본다.
오르산미켈레는 곡물 보관창고였으나 14세기 흑사병이 휘몰아쳤을 때 내부에 있던 성모 이콘이 기적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그리하여 1380년 피렌체 길드연합에서 교회로 개조하였고 외벽 벽감엔 14개 길드에서 세운 수호성인 조각상들이 있다.
외벽의 조각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기제작길드의 수호성인 성게오르기우스-성조지-다.
르네상스 조각의 선구자 도나텔로는 성게오르기우스 뿐만 아니라 리넨길드의 수호성인인 성마르코 조각상도 제작했다.
산조반니세례당 북문과 동문을 만든 기베르티는 직물상길드의 수호성인 세례 요한 청동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외벽을 채운 이 조형물들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오르산미켈레 2층에 소장되어 있다.
베키오궁전과 로지아 란치, 포세이돈 분수가 있는 시뇨리아 광장은 시민과 여행객들의 쉼터이다.
지금은 피렌체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궁전엔 유디트 청동상 그리고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석상이 그 앞을 지키고 있는데,
'다비드'만 미켈란젤로의 복제본이고 다른 두 조형물은 원본이라 한다.
포세이돈 분수 근처 광장 바닥에 있는 둥근 대리석 돌은 사보나폴라가 처형된 장소다.
이탈리아 도메니코회 수도사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뛰어난 언변과 설교로 피렌체 종교 개혁에 앞장 선다.
1494년 메디치가문 추방 후 개혁에 노력했으나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1498년 5월, 시뇨리아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베키오궁 맞은편의 로지아 란치는 역동적이고 멋스러운 조형물들의 야외 전시장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에피소드를 다룬 '사비나여인의 납치, 그리스로마신화를 끌어낸 '켄타로우스를 치는 헤라클레스'와 '메두사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벤베누토 첼리니 作)등 청동상과 조각상들이 대부분 원본이라는 점이 놀랍다.
시뇨리아광장에서 500m쯤 동쪽으로 이동하면 산타크로체 광장에 다다른다.
2023년 5월 친구들과 피렌체에 왔을 때,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젤라또가게엘 오가느라 행사 중인 광장 옆을 스치기만 했을 뿐
여러 번 여행 온 피렌체에서 산타크로체 광장을 제대로 걸어보는 건 처음이다.
산타크로체 광장엔 피렌체 두오모성당을 지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설계한 산타크로체 성당이 있다.
산타크로체 성당의 아름다운 파사드는 19세기에 완성되었으며 파사드의 맨 위 페디먼트엔 다윗의 별이 새겨져있다.
성당 내부엔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기베르티, 마키아벨리, 로시니의 묘가 있고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의 가묘도 설치되어있다고 한다.
하늘에선 구름이 걷혀 이제야 파란 본색이 드러나고, 아르노강을 향하는 걸음에 우피치 미술관이 다가왔다.
ㄷ자형 건물의 회랑 벽면엔 피렌체 르네상스를 부흥시키고 후원했던 코시모 데 메디치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대리석상이 있고,
건축물 기둥의 벽감마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우피치를 지나자마자 시선을 잡는 건 역시 베키오 다리다.
목조 다리와 석조 다리를 거쳐 지금의 베키오 다리를 건립한 때가 1345년이니, 이름처럼 거의 7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다리다.
귀금속샵 가득한 베키오다리를 건너니, 피렌체를 처음 여행했던 2007년 여름에 만난 디오니소스 청동상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오전 내내 구시가를 걸으며 느낀 점, 피렌체에 흑인과 남부아시아인들이 예전보다 부쩍 많아진 듯하다.
아르노강변을 걸어 서쪽으로 조금 움직여 산타트리니타 다리를 건넌다.
카라이아 다리 쪽 전망은 참으로 예쁜데 동쪽인 베키오 다리는 오전엔 역광이라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기온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쉬어야 할 낮 시간, 즉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다.
구글맵을 통해 숙소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을 찾았고 버스 시각까진 15분이 남았기에 근처 코나드에 후딱 다녀왔다.
그러나 다른 노선의 버스만 올 뿐 기다리는 버스는 결코 오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근처의 다른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여 2개의 노선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곳에서도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에 부착된 버스 운행 시각이 잘못된 건가. 운행이 변경되었나. 큰 도시의 대중교통이 이렇게 엉망이어도 되나.
코나드에서 산 바게트-그 와중에 맛있음-를 뜯어먹으며 버스 정류장을 옮겨가면서 거의 1시간을 기다렸나 보다.
먼저 도착한 11번 버스에 올라 몇 정거장 지나 숙소 근처에서 내렸고 200-300m쯤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피자와 케이크, 쿠키, 주스를 먹고 휴식하는 도중 오후 2시,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졌으나 오래지 않아 멈추었다.
나는 누워 쉬다가 잠이 들었고 남편만 여행지에서 먹으면 더욱 맛있는 라면으로 저녁을 챙겼다.
오후 8시 10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야경이지만 한번쯤은 만나야 할 밤의 두오모를 향해 또 숙소를 나섰다.
연주와 노래가 흐르는 산로렌초 광장을 지나서 다다른 두오모 광장,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다.
어제 못본 산조반니세례당의 북문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낸다.
공모전 우승자인 기베르티가 1403년부터 1424년까지 제작한 28개 패널-원본은 박물관-의 맨 아랫줄은 서방교회 4대 교부를,
아래에서 두번째 줄엔 4대 복음사가를 부조했다. 첫 줄에서 5번째 줄까지는 예수의 일생을 표현했는데, 아래쪽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1시간반 가량 천천히 구시가를 거닐었고, 숙소로 돌아와 빵과 요거트로 늦은 요기를 했다.
최고 기온 29도, 많이 덥지 않았기에 도보 여행하기 좋았던 오늘.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기온이라 한다.
내일은 아레초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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