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지은 밥이 질어, 오전 7시반에 먹은 아침 메뉴는 볶음밥이다.
오전 9시 10분, 상트막스로 가기 위해 숙소에서 150m 떨어진 버스정류장 가는 길, 숙소 근처에 트램 선로가 나있는 건물이 있다.
1층부터는 주택이고, 층고 높은 0층 출입문으로 연결된 선로가 있어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트램박물관-올드트램 차고 같은-이다.
이 동네는 도로에 트램 선로는 있으나 현재 운행하는 트램 노선은 없다.
버스 운행시각에 맞춰 도착한 77A 버스를 타고 74A 버스로 갈아탄 후 상트막스 묘지에 도착했다.
난 이곳에, 혼자 빈에 왔던 2015년 여름 이후 9년 만의 재방문이고 남편은 처음 와 본다.
상트막스 묘지의 정문 꼭대기엔 십자가가 설치되어있고 그 아래 상단엔 ‘다윗의 별’이 정문 안팎에 새겨져 있다.
이는 육각형 별모양으로 악마를 퇴치한다는 표시이며, 중세엔 카톨릭교도들도 사탄 퇴치의 목적으로 육각별을 사용했다고 한다.
9년 전, 온통 어둡고 흐린 이곳을 걸으면서 허무와 덧없음이 밀려와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11구에 위치한, 아름답게 단장된 공원 같은 중앙 묘지에 비해 관리 부실이 아님에도 상트막스는 참 음울했었다.
날씨는 여름인데, 오늘 상트막스에는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 말고는 한두 명의 인적만 있을 뿐, 8월말 평일 오전의 묘지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중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교회 주변에 묘지를 갖추었고 16세기 말에는 묘지를 성벽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18세기엔 빈 Gürtel-구시가보다 외곽 경계-의 바깥쪽에 묘지를 만들었는데 상트막스 묘지는 1784년에 조성되어 1874년까지 사용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빈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1874년 빈에서 먼 외곽 지역인 짐머링에 중앙묘지Zentralfriedhof를 조성하였고,
시내 공동묘지에 있던 저명 인사들의 묘는 중앙묘지로 옮겨졌다.
18~19세기 빈 유명인들이 지금도 영면 중인 상트막스 묘지는 비더마이어 시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19세기에 널리 퍼졌던 비더마이어 양식은 화려함과 장식을 완전히 배제한 채 실용성과 단순함을 따랐다.
상트막스 묘지가 알려진 이유는 모차르트 덕분이다.
그렇지만 1791년 12월, 모차르트는 이곳에 매장되었으나 당시 중류가정 관습대로 공동(4~5구)으로 묻힌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모차르트 묘가 따로 있었으나 추후 이장할 때 모차르트 유해를 다른 유해들과 함께 재매장했다는 설도 있다.
모차르트 유해가 없기에 사람들은 가묘를 만들어 기념비를 세웠고 작은 꽃밭으로 장식하여 그를 기렸다.
모차르트 가묘 부근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누군가의 슬픈 과거가 현재로 맞닿아 다른 이의 미래로 이어질 듯한 묘하고 야릇한 분위기가 번지는 듯하다.
이런 울적한 분위기 때문에 예전처럼 이번에도, 묘지의 갈래길을 따라 걷거나 좁은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
상트막스를 뒤로 하고 정문을 향해 터벅거리며 걷는 길.
천사가 응시하고 있는 어느 묘비에 '이별은 우리의 운명, 재회(만남) 우리의 희망'이라 쓰여 있다.
유한한 생명체인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말, 이제 다신 볼 수 없다는 말, 저승에서라도 다음 생에서라도 꼭 만나고 싶다는 말,
참으로 슬프디 슬픈 말이다.
상트막스와의 짦은 만남을 마친 후 묘지를 나와 버스를 갈아타고 숙소로 간다.
예전 같지는 않다-빈 젊은 층과 난민 등이 원인-고 하지만 빈의 질서 의식은 여전하다.
횡단보도 앞 인도에 서 있으면, 지나는 거의 모든 차량이 운행을 멈추고 보행자의 안전 보행을 천천히 기다린다.
인구 구성이 달라지고 그 성향도 변화하고 있지만 선진국의 기존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빵과 주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우리의 느긋한 점심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휴식과 낮잠이 이어지던 오후 5시, 기온이 무려 34도다.
더위가 사라지지 않은 오후 7시, 아침에 본 숙소 근처 선로의 종착지인 슈트라센반뮤지엄을 지나 피자리아로 간다.
발길 닿는 거리엔 어제처럼 퇴근하는 피아커-2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하고, 마차 뒤 승용차는 느릿한 마차를 아무 소음 없이 따른다.
주문한 피자를 조금 기다려 받아 돌아가는 거리에 어제 본 1칸짜리 구형 트램이 다시 나타났다.
작년-2023년-까지는 존재했던 올드트램이 올해는 대중교통에서 완전히 사라졌는데 올드트램을 이벤트용으로 사용하고 있나 보다.
알아보니 올드트램은 트램카라는 이름으로 12~500명의 소규모 모임부터 대규모 회의까지 개별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음식 제공은 물론 요청시 라이브 연주도 해주고 원하는 노선에 따른 가이드투어 등도 맞춤형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트램카는 2023년 가을에 뷔르츠부르크에서 보았던 파티 트램과 같은 용도의 이벤트 트램인 것이다.
기막힌 마르게리타 피자, 훈제연어, 감자샐러드를 저녁 탁자 위에 올렸다.
숙제처럼 마무리를 해야 하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마지막 두 회,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아슬아슬한 대본이다.
9월이 코앞이건만, 뜻하지 않게 더위 체험 여행이 되고 있다.
서울에 두고온 이쁜 녀석들이 유난히 그리운 날이다.
'표류 > 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1일 (일) : 첫 일요일, 뮤지엄데이 (1) | 2025.01.23 |
---|---|
8월 31일 (토) : 구시가 거니는 즐거움 (0) | 2025.01.22 |
8월 29일 (목) : 처음 만난 빈 뮤지엄 (0) | 2025.01.18 |
8월 28일 (수) : 빈 국회의사당 앞에서 (0) | 2025.01.15 |
8월 27일 (화) : 빈의 구시가 성당 (0) | 2025.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