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즈음, 한국으로부터 부재중전화가 와 있고, 얼굴도 모르는 통장이 거주사실 확인차 연락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뭐가 그리 바쁜지 미리미리 안하고 그냥 날아왔는지 참, 통장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늦게나마 소임을 마쳤다.
풀떼기를 잔뜩 올린 비빔국수에 오이무침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한 후 아이스커피와 환상적인 주커멜론을 즐겼다.
오전 9시 10분, U3을 타고 슈테판플라츠에 내리니 대성당 앞과 광장에 경찰이 잔뜩 배치되어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슈테판대성당에서 유명 건축가의 장례 미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상황이 오후 TV 뉴스에 보도되었다.
빈의 중심 성슈테판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독일기사단교회 Deutschordenskirche로 이동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곳은 12세기말 3차 십자군전쟁 때 결성된 독일 출신 로마카톨릭 종교기사단인 튜턴 기사단의 모교회이며,
이 건물엔 교회와 함께 기사단 본부와 재무부, 기록보관소 및 기사단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한다.
14세기에 건립된 이 성당은 성당 입구에 1781년 모차르트가 거주-3월16일부터 5월 2일까지-했었다는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성당 내부의 중앙 제대화에는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벽면은 튜턴기사단의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의 작은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성당 안, 크지 않은 내부인데도 정중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이젠 빈의 가장 오래된 시장이 있던 HoherMarkt 근처로 가 본다.
그라벤을 또 지나고 Durchgang HoherMarkt-호어마크트 통로-가 예쁘게 부조된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호어마크트가 아니다.
이상스럽게도 늘 그렇듯 호어마크트는 이번에도 패스한다.
앙커 보험회사의 두 건물을 잇는 다리를 장식하는 앙커시계(1911~1914) 앞, 사람들이 모여 시계만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고보니 11시, 매시 정각마다 인형이 나와 퍼포먼스를 한다고 했던가. 근데, 이미 지나버린 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앙커 시계는 매시 정각엔 역사적인 인물 1명만 나오고 정오엔 12명이 모두 등장한다고 하니, 제대로 보려면 정오여야 하나보다.
우리는 빈에 살 때도 이후 여행 왔을 때도 앙커시계를 본 적이 한두 번밖에 없기-관심 무-에 그저 지나다가 들른 셈이다.
1316년에 지은 빈 구시청사는 앙커시계 근처에 있다.
몇몇 사람만이 오가는 한적하고 좁은 거리에,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사한 모습으로 자리한 구시청사.
중앙 출입문 위엔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이자 상징인 쌍두독수리 그리고 왕관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양쪽 기둥에 성모자상이 있는 출입문을 들어서면 중정으로 이어진다.
빈의 옛 건물들은 앞에서 보면 일렬로만 이루어진 것 같지만, 대체로 중정을 둘러싼 사각형 건물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구시청사도 그렇고 19세기에 건립된 신시청사도 마찬가지이며, 근현대에 지은 건물이나 아파트도 동일한 양식인 경우가 많다.
쉔브룬옐로우보다 톤 다운된 구시청사 빛깔이 고급스럽고 예쁘다.
8월말일의 더위가 온몸을 휘감기 시작한 오전 11시반, 시원한 곳에서 쉬어야만 하는 시각이다.
빈의 다른 카페와는 달리 아이스커피 있는, 비엔나의 스타벅스에 와보기는 처음이다.
있었더라도 안 갔겠지만 스타벅스는 예전 빈에 살 땐 없었고, 201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2009년 귀국 이후 15년간 9번이나 빈을 오갔으나, 카페를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카페를 가게 된다면 가봐야 할 유서 깊은 곳이
많았기에 별 특징 없는 빈의 스타벅스에 갈 마음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덥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 매우 시원한 곳에서 아주 시원한 음료가 꼭 필요하다.
Schottengasse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크림 아이스커피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가니 카공족인지 디지털노마드인지 20대 들이 그득하다.
크림 아이스커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완벽한 수혈과 모자람 없는 휴식이었다.
스타벅스에서 30분쯤 쉰 우리는 1A 버스 타고 보티프 성당으로 향한다.
2022년 초가을 보티프 성당에 왔을 땐 외관과 내부가 온통 공사 중이었으나 이제 온전한 모습이다.
정면 파사드도 멋스럽고 성당 전체 외관도 굉장히 아름다우나 날씨 때문에 도저히 외관을 둘러볼 수는 없다.
보티프 성당은 1854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젊은 건축가 하인리히 폰 페르스텔에 의해 1879년 완공되었다.
신고딕양식의 우아한 보티프 성당은 외관의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공중부벽, 첨두아치볼트 및 내부의 높은 층고, 스테인드글라스,
다발기둥, 리브볼트, 첨두아치 등 기본 고딕에 세련된 근대 건축 기술과 장식이 접합된 건축물이다.
성당 중앙 통로와 그 주변에 방문객이 아주 많다.
설교대-강론대-엔 서방교회 4대 교부와 더불어, 정면 파사드에서처럼 살바토르 문디가 부조되어 있다.
손에 천구를 들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표현한 살바토르 문디는 세상을 구원하는 자 즉, 구세주를 뜻한다.
보티프 근처 BILLA에 들러 치즈셈멜, 치즈브롯, 피자빵, 도넛을 구입하여 1A 버스에 올랐고 슈테판에서 U3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빈 마트는 SPAR와 HOFERW지만 이곳 빵들은 매장에서 직접 굽는 경우가 많긴 해도 사실 별 맛은 없다.
마트 중에서 빵이 맛있는 곳은 바로 BILLA이다. Stroeck이나 Der Mann보다는 살짝 부족할 수 있으나 거의 대적할 만하다.
빵, 주스, 청포도로 점심을 먹은 후 영화 '크로스'를 1시간 가량 재생했으나 그 이상은 도저히 인내하고 볼 수가 없다.
실내에서도 더위-최고 34도-는 꺾이지 않고, 오후 5시 동네 SPAR에서 대구와 납작복숭아와 쌀-스시라이스-을 구입했다.
대구조림, 오이무침, 숙주무침으로 저녁 만찬을 챙긴 후 캐리어 파손 관련하여 KAL에서 온 이메일을 확인했다.
첫 이메일에 답장을 받은 후 3번이나 이메일을 더 보낸 후 뒤늦게 받은 연락인데, 보상한다면서도 무례한 언사를 보냈다.
그 언짢은 추측성 내용에 근거를 제시하여 상세히 반박하였고 보상 동의서를 보냈다.
빈에서 맞는 8월 마지막 밤.
서울을 지키는 두 녀석이 어제처럼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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