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삶과 사랑 사이

레테

 

 

레테는 '망각의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세 가지 레테가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레테가 바로 저승 앞을 흐르는 레테. 그야말로 망각의 강이다.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은 다 사라진다.

또 하나의 레테는 잠의 신 동굴 속에 있다. 정적 뿐인 이곳엔 레테만이 흐른다.

마지막 레테. 망각의 강을 건너고도 이승의 기억을 뱉어내지 못한 영혼을 위한 레테의 의자다.

저승신 앞에 있는 이 의자에 앉으면 이승의 기억은 더이상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다.

 

살다보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든, 다른 사람이 안겨준 고통이든 온전하게 다 지우고 싶은데,

어느 순간 폭풍처럼 떠올라 머리 끝을 세운다.

나이 들수록 좀전 일은 잊기 일쑤면서, 지나간 일들은 왜 자꾸만 또렷이 되새겨지는지.

요즈음 가끔 이 마법 같은 '레테의 의자'가 필요할 때가 있나보다.

내 속의 기억들 중 품고 싶은 기억만 꺼내어놓고 이 마법 의자에 앉아봐도 좋을 것 같다.

아픈 기억은 그렇게 다 떠나보내고 아름다운 추억들만 다시 머리에 들인다면 어떨까.

크림소다빛 구름이 하늘을 살짝 장식하는 오후, 멀리 들리는 낡은 자동차 소리가 잠시 평온하다.

 

 

'사유 > 삶과 사랑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  (0) 2005.11.03
그대를 만나기 전에  (0) 2005.10.19
꽃밭의 독백  (0) 2005.09.15
장밋빛 인생  (0) 2005.09.10
가지 않은 길  (0) 200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