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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오스트리아 기억

뵈아터 호수에 빠지다

클라겐푸르트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오스트리아 남쪽 도시이다.

정확한 주5일 근무에, 연간 5주일의 휴가를 제대로 챙겨쓰는 이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큰밥돌의 토요 휴무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될까.

몇 주를 기다리다 드디어 떠난다, 클라겐푸르트로.

 

클라겐푸르트
비룡분수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km다.

그러나 시속 140-160km로 달려대는 승용차들이 부지기수.

고속 차량 공포증이 있는 나는, 100km 이상의 속도엔 못 견뎌하는데,

햇볕에 쪼여 조는 사이에 얼른 속도 위반을 하는 큰 밥돌.

 

3시간 후 클라겐푸르트다. 

노이에광장엔 마리아테레지아 동상과 이 도시의 트레이드마크인 비룡 분수가 있다.

쌀쌀한 기온 때문인지 분수 물줄기는 완전멈춤 상태이고

광장 노천 카페는 햇볕을 받으며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로 적당히 붐빈다.

 

시청 옆에는 1594년에 지어진 란트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는데,

과거엔 무기저장고와 관공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란트하우스 내 레스토랑이 무척 유명한 맛집이라는데, 그냥 통과다.

 

음악이 흐르는 알테광장엔 카페와 상점들이 모여있고 중앙엔 기념비도 있고,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모습이라 할까.

거리를 뒤로 하고 이젠 뵈아터제로 간다.

 

뵈아터호수는 클라겐푸르트에 인접해 있는, 가늘고 긴 타원모양의 초대형 호수다.

6-7분을 달리자 어마어마한 물밭이 나타나고 호수를 낀 여러 개의 마을이 이어진다.

 

그 중 꽤 크다 싶은 마을을 골라 숙소를 정하려 했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다.

남편이 한 호텔로 문의하러 간 사이에 바라본 호수의 맑은 물빛은 잘츠카머구트 같다.

가물거리며 보이는 호수 저편이 많이 멀어보인다.

 

친절한 호텔 직원의 안내대로 찾아간 좀더 큰 옆동네의 중심가엔 관광안내소가 있다.

관광 안내소의 소개(컴)로 고른 별 세 개짜리 펜지온.

가을이라 별 쓸 일은 없지만, 아리따운 정원에는 귀여운 풀장까지 갖추고 있다.

 

짐을 들여놓고 호숫가로 산책을 갔다. 그새 바람이 서늘해졌다.

늦지 않은 시각인데도 벌써 어둠이 들기 시작한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카지노만 북적거리며 빛나고 문 닫은 상점들도 많다.

 

이곳에도 커다란 중국 음식점이 있다.

음식점의 화려한 실내를 많은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밤바람이 11월처럼 매섭다.

 

다음날 새벽, 감기 몸살을 호소하며 기호가 눈을 떴다.

자주 아프지는 않는 아이인데, 어제 호숫가 바람이 차가웠나보다.

어젯밤 식당에서 혼자 와인잔을 들던 주인아저씨가 일요일 아침을 맞아준다.

좋아하는 셈멜을 반 개밖에 먹지 못하는 기호.

 

눈을 붙이겠다는 기호를 숙소에 잠시 남긴 채, 아침 호숫가를 걸었다.

어느 집 앞에 10살쯤 된 소년이 강아지와 함께 거닐고 있다.

하늘도, 호수도 흐린 날이다.

 

그렇게 호수의 아침만 맞고 비엔나로 돌아온 오후,

무겁던 기호 눈빛이 빛나고 있다. 제법 의젓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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